썩 기대에는 미치지는 못한.
추석 당일이다. 아무 데도 가지 않는 긴 연휴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좀 덜 붐비는 때라 조용히 와보고 싶던 카페에 와서 글을 남긴다. 마침 비도 부슬부슬 오고, 사람들이 적당히 있고, 딱 좋은 분위기이다. (어제 갔던 카페에서는 손님이 나 하나라 전세 낸 것 같아 좋은 것 같으면서도 한편 또 너무 썰렁해서 별로이기도. 뭐든지 적당한 게 중요해-)
9월에는 총 12편의 영화를 보았고, 1편의 영화를 재관람하였다. <대부 I>이 롯데시네마에서 재개봉을 하였기 때문. 매우 어릴 적에 DVD로 전편을 보고 엄청 감명받았던 영화인데, 이렇게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오다니. <대부 I>의 상영관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옛날 영화를 이 많은 사람들과 영화관에서 함께 관람한다는 데에서 묘한 무언의 유대감을 느꼈다.
12편이면 다른 달보다는 좀 적게 본 편인데. 안타깝게도 딱히 내 마음을 울리는 작품도 그만큼 덜했던 달이어서 좀 아쉬움이 있다. 뭐, 애초에 작품을 잘못 선정한 나의 탓이겠지.
글로리아 벨 (세바스찬 렐리오, 2018)
이혼한 어느 50대 여성 글로리아(줄리앤 무어)는 가끔 클럽에서 춤을 추며 남자를 만나곤 한다. 그녀의 자녀들은 그녀에게 무심하다. 그러다가 클럽에서 만난 어느 이혼남 아놀드(존 터투로)와 연인이 되지만, 아놀드에게 여전히 정신적,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두 딸과 그런 그들을 떨쳐내지 못하고 계속 돌봐주는 아놀드 때문에 글로리아는 절망한다. 결국 글로리아는 아놀드를 떠나고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며 자아를 찾아간다.
보는 내내 '아 나 분명 이 영화 본 것 같은데... 근데 줄리앤 무어가 나온 게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스토리가 익숙하지?' 싶었는데, 알고 봤더니 이 감독이 동일한 내용의 본인 영화 <글로리아>를 리메이크한 것이었던 것. (웬만해선 진짜 영화 두 번 안 보는데... 나의 기억력 때문에 이렇게 동일한 내용의 영화를 두 번 보고 말았다. 영화의 거의 똑같아서 진짜 영화 두 번 본 느낌...)
전에 <글로리아>를 볼 때도 느꼈지만, 이 영화를 보면 진짜 '가족이 뭔가' 싶긴 하다. 내 자식인데 나한테는 관심도 없고, 오히려 귀찮아하고, 아니면 필요할 때만 성가시게 찾아대는... 물론 모든 가족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결국 인간은 온전히 자신으로 내면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가장 안정적인 것 같은데, 인간은 외로우니 자꾸 누군가를 찾고, 누구한테 기대려 하고, 그러다가 그 누군가가 나의 기대치에 못 미칠 때 밀려오는 좌절감과 실망감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결국, 애초에 기대치가 없어야 해, 기대치가...
슈퍼소닉 (맷 화이트 크로스, 2016)
브릿팝 열풍을 일으킨 대표 밴드, 오아시스의 탄생과 전성기 시절을 그려낸 다큐멘터리 영화. 이 역시 내 최애 아티스트 장기하가 GV를 한다고 하여 달려가서 보았다.
오아시스의 음악을 들어보긴 들어봤지만, 사실 그 멤버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엄연히 내 세대 밴드도 아니니. 하지만 이런 음악 다큐멘터리를 보면, 정말 그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게 된다. 그냥 관람객으로서 나도 소름이 돋는달까. 토킹헤즈의 데이빗 번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세상은 넓고 정말 타고난 천재들은 많다.
그리고 갤러거 형제 왜 이렇게 매력 돋는지.. 물론 실력이 뒷받침된 자신감과 오만함이겠지만, 그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더라. 특히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할 말 다 하는 노엘. 리암은 그렇게 간지 나게 생긴 줄 이번에 처음 알았네. 무대를 휘젓고 다니면 온갖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데이빗 번과 달리 리암은 마이크에 딱 붙어 노래만 하는데, 역시 생긴 게 그래서 그런가... 그냥 그 자체로 간지.
이 영화는 그 밴드 결성부터, 내부 균열로 인한 해체까지 언급한다. 작년인가 이 형제가 다시 재결합한다고 하여 엄청나게 화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드디어 이번 달 내한하는데, 지금 그들의 모습은 어떨런지.
이 영화 보고 한동안 오아시스 음악만 들었다. 뭔가 딱 그 90년대 감성이 있다니까.
토니 타키타니 (이치카와 준, 2004)
원작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 소설이라고 한다. 어느 외로운 한 중년의 남자 토니(오가타 이세이)가, 직장에서 만난 여성 에이코(미야자와 리에)와 결혼하고 드디어 행복을 찾은 듯하였지만, 쇼핑 중독의 에이코는 옷 쇼핑에 집착하다가 결국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이후 토니는 아내가 남긴 옷을 입고 집안일을 해줄 여비서(미야자와 리에; 1인 2역이다)를 구하지만, 결국은 이게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옷과 유품을 처분하며 고독 속에 남게 된다.
대충 스토리만 보고 재밌을 것 같아 보게 된 영화인데... 솔직히 재미는 없다. 행복과 상실, 고독에 대한 탐구를 잘 그렸다는 평이 대체적인 것 같은데, 그냥 우울한 사람들이 나와 우울의 끝으로 치닫는 이야기이다. 이 모든 과정을 굉장히 미니멀하게 그려낸다. (아니 그래도 무언가 서사가 좀 있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에이코는 왜 그렇게 쇼핑에 집착을 했을까. 토니와의 결혼 전과, 후에 그녀의 쇼핑 집착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럼 토니와의 결혼 후에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러니까 결국, 그녀의 계속되는 쇼핑중독은 그냥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내면의 공허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럼 결국 내가 위에 <글로리아 벨>을 보며 느낀 포인트로 다시 돌아온다. 결국 내 내면이 바로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가 없다. 남에게 기대는 것만큼 불안하고 불확실한 것이 없다.
자칫 느리고 잔잔하게 전개되어 재미는 좀 없다. 분위기도 우울하고. 그나마 영화가 한 시간 반 안팎이라 다행이지.. 음악은 좋더라. 역시나 류이치 사카모토였네.
퍼펙트 블루 (곤 사토시, 1997)
어느 아이돌 그룸 챰의 가장 인기 많던 멤버였던 미마가 그룹에서 탈퇴하고 배우로 전향하면서 벌어지는 심리 스릴러다. 자신의 이미지 변신에 대한 자아와 극성팬의 반발로 내/외부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결국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미마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계속 보게 되면서 혼란을 겪게 되고, 주변에서 계속 일어나는 살인사건으로 공포와 불안에 빠지게 된다. 이 영화는 미디어 속 자신의 정체성과 본인의 진짜 자아를 두고 벌어지는 개인의 혼란과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투쟁을 그린다.
상당히 선정적이고 정신적으로 혼미해지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은 이제 잘 보지 않는데(이제 너무 애들용 같아서), 이건 정말 "성인용" 애니메이션이었다. 보고 나서도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이었는지 정확히 구분되지 않던 그 혼란의 경험...
이 글을 쓰다 보니 친구가 예전에 언급했던 것이 문득 떠올랐는데, 크리스토퍼 놀란과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곤 사토시의 영화로부터 강한 영향...(이라는 워딩은 사실 아니었고 "베꼈다는 것")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 찾아보니 놀란의 <인셉션>은 곤 사토시의 <파프리카>로부터, 아로토프스키의 <블랙스완> 은 <퍼펙트 블루>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들이 있는 것 같다. 놀란은 표절 의혹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아로노프스키도 <블랙 스완>에 대해서는 곤 작품을 오마주 한 것을 부인했다고. 하지만 그는 심지어 <퍼펙트 블루>의 일부 장면에 대한 저작권을 사들였고 <레퀴엠 포 드림>에서 곤 감독 작품들을 오마주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일본문화가 서양권에 이렇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건 정말 대단하긴 해...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2025)
아... 나의 최대 기대작이었으나 보고 나서 정말 실망을 금치 못했던 올해의 작품, 바로 이 영화다. 보고 나서 내 기대치에 대한 그 배신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 소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액스>까지 보며 즐길 준비를 다 해놨는데... 대체 각색을 왜 그렇게...?
소설 <액스>는 정말 몰입해서 읽었다. 90년대 작품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현시대에서도 충분히 공감될 만한 이야기로 생각했고(역시나 박찬욱도 당시 컴퓨터 도입에 의한 노동환경의 변화를 현시대의 AI로 대체했다), 작가가 덤덤하면서도 정확한 필력으로 매 순간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관통하며 표현해, 완전 몰입할 수 있었다. (게다가 주인공이 살인을 하는 장면은 예상외로 너무 잔인해서 '이거 완전 박찬욱 스타일이네... 이걸 또 어떻게 표현하려나~' 기대까지 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영화는 이러한 인물들의 감정선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으며(물론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 것은 논외로 하고, 시나리오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서사는 누락되었다.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태도가 처절하게 생계를 걱정하는 가장치고는 너무나도 순한 맛이었다. 게다가 알 수 없이 과한 연출. 예를 들어, 조용필의 <고추잠자리>와 김창완의 <그래 걷자>. 이런 장치들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작품은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차라리 내가 원작을 읽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봤더라면 좀 더 나았을까? 역시나, 너무 큰 기대는 독이 될 뿐이다.
인터넷에서 누군가 이번 영화는 아래처럼 만들었어야 했다고 쓴 글이 떠다니는데, 보자마자 너무 웃겨서 저장해 두었다. (원작 출처가 어딘지는 모르겠다. ㅠ)
아래는 내가 원작 소설 <액스>에서 특히 공감되었던 구절 몇 가지.
"2백 년 전,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세상에서 죽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것만큼은 거스를 수 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요즘은 세상이 그저 변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대변동이다. 끊임없는 대변동. 우리는 하이드로 변하는 과정의 지킬 박사에게 붙어사는 벼룩이나 다름없다." (p. 87)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환경을 바꿀 수 없다. 이것은 내게 주어진 패다.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그 패를 남들보다 현명하게 쓰도록 노력할 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p.87)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뒤처리였다. 하지만 몇 년 전이었다면 이런 방법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직장에 다니면서 정상적이고 변화 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을 때. 그 당시, 그러니까 내가 해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나는 무척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이런 일에 대해서는 더 그랬다. 그때 이런 일을 당했다면 아마 법과 사회를 믿고 묵묵히 결과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빌리는 한 건이 아닌, 네 건의 절도 사건의 피의자가 되어 징역형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보석은 꿈도 못 꾸었을 것이고.
나는 빌리를 위해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다. 나를 지켜줄 사람은 세상에 오직 나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p.201)
"물론 나는 괜찮다고 했다. 우리는 벽에 못을 박고, 액자를 걸었다.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사람 속은 정말 알 수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아무리 상대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해도. 그 그림의 어떤 점이 마저리의 시선을 잡아끌었는지 영원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런 건 아무것도 상관없다. 바로 그게 교훈이다. 복제품의 표면은 평평하다. 진품이 아니라는 게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하지만 이 제품의 주제는 넘실대는 바다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의 요동. 우리 사랑도 마찬가지다. 겉만 봐서는 그 싶은 속을 헤아릴 수 없다. 마저리의 속을 깊이 들여다볼 수 없다 해도 상관없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중요한 건 그뿐이다. 아내를 더 깊이 알아보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아내가 나를 속속들이 알려한다면? 그건 달가울까?" (p.231)
"'경쟁을 피할 순 없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선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덧붙였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가 상대보다 조금 낫기를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p.255)
더 파더 (플로리안 젤러, 2020)
치매를 앓는 노인 안소니(안소니 홉킨스)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점차 사라지는 자신의 기억을 붙잡으며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안소니는 점점 더 혼란에 빠진다. 결국 요양원으로 가게 되는 안소니는 자신이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어린아이처럼 두려워하고 절망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양들의 침묵>이나 다른 안소니 홉킨스 나온 영화를 봤을 때도 그냥 별생각 없이 봤었는데, 이 영화에서 안소니 홉킨스의 열연에 정말 감동했다. 치매 환자 연기를 어찌나 그렇게 잘하는지, 그가 겪는 혼란과 절망, 그로부터 오는 분노까지 모든 게 보는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마지막에 어린아이처럼 두려워하는 그 모습까지... 고통을 받는 것은 안소니뿐만이 아니다. 그를 돌보는 딸 앤(올리비아 콜맨)까지 처절하게 슬프다. (치매가 이렇게 본인과 주변인들을 힘들게 합니다... ㅠ) 지극히도 먹먹하고 현실적이었던 이야기.
하 늙는 것 정말 싫다. 신체적이던, 정신적이던, 이렇게 고통받다 가는 것은 너무 서글픈 일이다.
(어쩌다 보니) 리아 세이두의 영화 두 편... <어느 하녀의 일기> 그리고 <007 스펙터>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난 리아 세이두를 매우 애정한다. 그녀의 외모와 분위기는 너무나도 아름다우니까.
그래서 딱히 볼 게 없을 때 그녀가 나오는 영화 두 편을 보았다. 브누와 쟉꼬의 <어느 하녀의 일기>와 샘 멘데즈의 <007 스펙터>.
별 말 안 하겠다... ㅠ 둘 다 킬링타임으로도 안 되는 영화였다...
<어느 하녀의 일기>는 정말 뭣도 없는 스토리... 007 스펙터는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는 첩보물이었다. (샘 멘데즈 감독이었다니... 믿기지가 않음.) 아니 보통 액션, 첩보물 영화의 구성이 아무리 뻔해도 그 아는 맛에서 오는 통쾌함이나 스릴로 그런 영화를 보는 것인데, 이건 진짜 뭐 아무것도 없더라...
레아 세이두의 영화들은 진짜 모 아니면 도인 듯... 단지 "그녀를 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하는 영화들이 꽤 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