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Queer (2024)

나도 나를 어쩔 수 없는

by HeeHee

영화는 종합예술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 준 영화가 올해 국내 개봉작 중 현재까지 세 편정도인데, 바로 <퀴어>, <씨너스: 죄인들>, 그리고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이다. 이 중 루카 구아다니노의 <퀴어>는 가장 강렬한 비주얼과 실험적 서사를 보여주었다. 사실 <퀴어>는 스토리 측면에서 후반부의 꽤나 난해한 급전개에 호불호가 세게 갈리는데, 나도 그 후반부 때문에 살짝 아쉽긴 했지만 적어도 창의적인 시도에서 꽤 참신했던 것 같다.


이건 오롯이 내가 이 영화를 기억하고 싶어 남기는 기록. (나머지 두 영화도 언젠가 따로 기록을 남겨야지.)


이 영화의 배경은 멕시코시티(하지만 촬영은 전적으로 세트장에서 이루어졌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이 영화는 약물 중독으로 멕시코시티로 도주한 주인공, 작가 윌리엄 리(다니엘 크레이그)가 젊고 아름다운(!) 한 청년, 유진 앨러튼(드류 스타키)에게 집착하며 다소 일방적이고 서툰 사랑을 하는 내용을 그린다.


그러니까 이 영화도 루카 구아다니노의 대표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처럼 퀴어를 다룬다. 하지만 두 영화의 결은 좀 다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좀 더 잔잔하고 섬세한 감정선을 다루었다면, <퀴어>는 다소 일방적이고, 거칠다. 감정이 좀 더 날 것의 느낌인데, 이게 정말 사랑인지, 아니면 단순 욕정에 의한 상대방에 대한 갈망인지 그 경계가 다소 모호하다.


진짜 구아다니노의 미감은 알아줘야 한다. 영화 초반부 유진의 등장씬은 정말 비주얼 황홀경, 압도적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대체 어디서 또 저렇게 아름다운 청년을 데려온 것인지? (추후 드류 스타키의 사진들을 찾아보니 이건 영화 제작자들의 기가 막힌 스타일링으로 완성된 이미지였음을... 물론 기본적으로도 잘생기긴 했다.) 그래, 같은 남자인 리가 반하는 것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주요 씬마다 삽입된 음악도 너무 좋다. 유진의 등장씬은 너바나의 <Come As You Are>이 삽입되었는데, 이 씬은 정말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다.


(잠깐 이야기가 새지만, 좋은 영화는 정말 영화관에서 큰 스크린으로 봐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것이, 집에 와서 유튜브로 같은 장면을 봐도 영화관에서 느낀 감동보다 훨씬 덜하다... ㅠㅠ)

유진의 등장씬... 그야말로 최고... 출처: YouTube

<퀴어>의 원작은 윌리엄 S. 버로스의 미완성 동명소설이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이 작품을 처음 접한 10대 때부터 이 작품을 영화화 하기로 마음먹고 드디어 제작에 성공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그 이미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결국 그 원작까지 읽어버렸다. 원작은 영화에서 다루는 3부가 없다. 원작에서는 영화 3부에서 다루는 "야헤"라는 텔레파시를 가능케 한다는 식물을 찾는 여정이 아예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구아다니노는 이 영화의 3부를 아예 재창조한 것이다. (사실 여기서부터 좀 논란이 있다... 영화가 로맨스에서 갑자기 바디호러에 가까운 판타지로 넘어가기 때문...)


원작을 읽고 놀랐던 것은, 영화가 어쨌든 그 3부 전까지는 소설의 틀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간다는 것. (박찬욱도 차라리 <액스>의 틀을 거의 유지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왜 그렇게 각색이 되었을까...) 그래서일까,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개인적인 생각을 읽을 수 없으니 오롯이 내가 추측하거나 해석해야만 했던 어떠한 인물들의 행동에 대해 소설에서 그러한 행동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앨러튼은 어느 날 리에게 차갑게 돌변한다. 리는 그런 앨러튼을 바라보며 슬퍼한다. 리는 어쩔 줄을 모른다. 리가 어떻게든 앨러튼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해도, 앨러튼은 시종일관 차갑고 리를 의도적으로 피한다. 이 시퀀스에서 나는 '그래, 뭐, 사람 마음 변하는 거 한순간이지. 특히 애정관계에서는. 뭔가 앨러튼이 이러는 이유가 있겠지.'라고 어림짐작만 하였는데, 소설에서는 이렇게 앨러튼의 마음을 대변한다.


아마도 앨러튼은, 그간 알게 모르게 리 때문에 본인이 억압되고 있다는 감정이 어느 순간 폭발한 것일 거다.

After that, Lee met Allerton every day at five in the Ship Ahoy. Allerton was accustomed to choose his friends from people older than himself, and he looked forward to meeting Lee. Lee had conversation routines that Allerton had never heard. But Allerton felt at time oppressed by Lee, as though Lee's presence shut off everything else. He thought he was seeing too much of Lee.

Allerton disliked commitments and had never been in love or had a close friend. He was forced to ask himself "What does he want from me?" It did not occur to him that Lee was queer, as he associated queerness with at least some degree of overt effeminacy. Allerton was intelligent and suprisingly perceptive for a person so self-centered, but his experience was limited. He decided finally that Lee valued him as audience. (p. 50)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리와 유진. 출처 YouTube

아래는 차갑게 돌변한 앨러튼이 리의 저녁식사 제안을 거절한 후 리가 느끼는 감정이다.

Lee was depressed and shattered. The warmth and laughter of Saturday night was lost, and he did not know why. In any relation of love or friendship, Lee attemped to establish contact on the non-verbal level of intuition, a silent exchange of thought and feeling. Now Allerton had abruptly shut off contact, and Lee felt a physical pain, as though a part of himself tentatively stretched out toward the other had been severed, and he was looking at the bleeding stump in shock and disbelief. (p. 50)
자신에게 무심한 유진을 바라만 보는 리. 출처: YouTube
Allerton was nervous and irritable, drumming on the table and looking around. He did not himself understand why Lee annoyed him. (p.50)
He forced himself to look at the facts. Allerton was not queer enough to make a reciprocal relations possible. Lee's affection irritated him. Like many people who have nothing to do, he was very resentful of any claims on his time. He had no close friends. He disliked definite appointments. He did not like to feel that anybody expected anything from him. He wanted, as far as possible, to live without external pressure. Allerton resented Lee's action in paying to recover the camera. He felt he was "being sucked in on a phony deal" and that an obligation he did not want had been thrust upon him. (p. 52)
Allerton did not recognize friends who made six-hundred-peso gifts, nor could he feel comfortable exploiting Lee. He made no attempt to clarify the situation. He did not want to see the contradcition involved in resenting a favor which he accepted. Lee found that he could tune in on Allerton's viewpoint, though the process caused him pain, since it involved seeing the extent of Allerton's indifference. "I liked him and I wanted him to like me," Lee thought. "I wasn't trying to buy anything." (p.52)
혼자 다시 약을 하며 쓸쓸해하는 리. 출처: YouTube

그러니까, 리는 앨러튼을 정말 좋아하고, 단지 자기가 좋아하는 만큼 앨러튼도 자기를 좋아해 줬으면 했던 것인데, 앨러튼은 그런 그가 부담스러운 거다. 하지만 이 와중에 앨러튼도 혼란스럽다. 리의 호의는 받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은 그것에 상응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앨러튼은 리의 과한 호의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자유"를 잃는 것이라고 느끼는 것 같고, 사실 앨러튼은 돈보다도 자유가 중요한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지금 이 구절들을 다시 읽다 보니, 다니엘 크레이그와 드류 스타키, 이 두 배우가 얼마나 연기를 잘했던 것인지 새삼 다시 깨닫는다. 텍스트로만 구체적으로 설명되었던 리와 앨러튼의 생각, 감정이 영화에서 그들의 표정, 분위기를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었기 때문.)


그나저나 영화평 중에 다 늙은 할아버지가 젊은 남자한테 치근덕대는 더러운 이야기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정확히 이런 평을 예측이라도 한 듯 작가는 소설 끝 코멘터리에서 약물 중독자의 감정변화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일단 작가는 실제로도 약물 중독자였고, 리도 본인이 투영된 캐릭터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일단 약에 중독된 사람들은 어느 순간 폭발할 것 같은 성욕에 휩싸였다가 어느 순간 가라앉는다며, 그건 본인도 어떻게 주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독자가 알지 못하는 한, 주인공 리가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는 싸이코처럼 보일 것이라고 친히(!) 설명을 덧붙인다.


마지막으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이들의 패션이다. 현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이 <챌린저스>에 이어 또 한 번 구아다니노와 함께했다. 앨러튼의 완벽한 피지컬에 조나단 앤더슨의 우아한 의상들이 얹어지니 보는 내내 눈이 즐겁더라... 핏이 정말 기가 막히다. 역시 옷걸이가 중요해, 옷걸이가...

common.jpeg
모든 이미지 출처는 네이버 영화 또는 블로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9월의 영화 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