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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Jul 08. 2020

[한국사로 본 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국가정체성의 상징

공공재로서의 뮤지엄museum

1. 우리나라 박물관의 상징적 대표, 국립중앙박물관

지난 번에는 우리나라 주요 박물관의 출발을 근현대사 속에서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의 박물관들도 서구와 마찬가지로 국가 주도에서 자본 주도의 사립박물관으로, 양적으로 질적으로 다양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음을 확인했다면,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최정복 건축전문사진작가가 찍은 국립중앙박물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박물관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아마도 대부분이 국립중앙박물관이라 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자 국립박물관 전체를 관장하고 그 방향을 결정하는 박물관체계의 가장 상위의 국립 기관으로 세계에서도 역시 6대 박물관 안에 드는 규모를 자랑하는 박물관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역할과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나라 박물관의 역할과 의미를 살펴보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2.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 한국정부의 역사

국립중앙박물관 연표를 한 눈에 보기 편하도록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위의 연표에서 보다시피,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 순종 주도의 제실박물관에서 출발했지만 일제에서 관리한 조선총독부박물관과 나뉘어 운영되다가 전쟁과 물자부족, 경제적인 문제로 부산, 남산, 덕수궁과 경복궁을 전전하게 된다. 이후 69년에야 국립박물관으로 통합이 되었고 이후 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서 위상을 갖추고 2005년이 되어서야 현재의 자리, 용산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기록은 그대로 조선의 몰락과 일제의 침략, 식민지배와 해방 그리고 전쟁과 경제난 이후 산업화와 발전상까지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 근대화라는 명목의 일제통치의 정당화 도구
처음에는 국가 주도의 제실박물관으로 출발했지만 결국 일제의 통제 하에 놓였고 일본의 식민지 박물관의 하나로서 운영되었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생기면서 소장품이 재분류되고 이왕가미술관으로 격하되어 삼국시대 이래 미술품들과 조선의 고화, 근대미술품들을 소장하게 되었고 조선총독부박물관은 고고미술계통의 박물관으로 총독부에서 유물들을 발굴조사, 소장하게 된다.

제실박물관과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전경


일제는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박물관을 식민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도구이자 교육의 장으로 활용했다. 특히 조선총독부박물관은 1915년 열린 산업박람회인 ‘시정오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의 결과물이었다. 이미 소개했듯이 서구의 국가들이 박물관을 설립하고 제국주의적인 확장의 일환으로 박람회를 개최하고 결과물로 박물관을 설립, 운영했다면 우리나라는 그들의 과정을 답습하고자 했던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해 박물관을 통해서 제국주의적인 지배를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일제가 1915년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장에 대한 배치도. 당시 전시관에는 미술관, 음악관, 연예관, 철도관 등이 개설. 일제는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조선의 법궁이었던 경복궁 건물의 1/3을 헐어냈다.

당시 박람회 전시장에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


조선물산공진회는 160만명의 관람객이 찾았고 신민지로 전락한 조선의 근대모습과 일본의 지배권력을 조선인들에게 갂인시키고 열등한 조선문화와 일본 자본주의를 학습하는 장소로 활용된다(김인덕, 조선총독부박물관 전시에 대한 소고). 특히 조선물산공진회의 포스터는 전근대의 상징으로 사용된 경복궁의 경회루와 식민 경영의 성과를 과시하는 근대적 모습의 전시회장, 어개춤을 추는 조선기생의 모습으로 식민통치 아래 조선의 현실을 희화적으로 재현하는 모습으로 당시 식민지배하의 조선의 현실을 극명히 보여준다(이보아, 박물관 경영과 마케팅). 이후 박물관이 건립되고는 더더욱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식민지배가 타당함을 보여주는 식민통치 이데올로기의 시각적, 역사적 근거로 전시를 구성하고 선전하게 된다(최석영, 한국박물관 100년 역사 진단&대안).

조선물산공진회 보고서에 게재된 개회사내용, 서울역사박물관자료

Poster of the Joseon Products Show 1916년 일제 조선총독부의 공진회보고서(共進會報告書) 게재된 포스터사진


4. 박물관, 정체성을 형성하고 말살할 수 있는 공간

케이플러라는 학자는 박물관은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말살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박물관은 과거의 유물을 볼 수 있는 공간일 뿐 아니라 수많은 유물 가운데에서도 선별해서 전시를 하는 문화적인 기준을 볼 수 있는 공간이고 나아가서는 문화적인 기준을 결정하는 가치판단의 기준을 볼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특히나 국가 주도의 박물관은 국가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 그 국가의 이데올로기와 문화 그리고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왕가 박물관과 이왕가 미술관(현 덕수궁 석조전,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의 모습

국립박물관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명칭 변경 경복궁으로 이전한 당시 국립중앙박물관(현 국립민속박물관)의 모습

조선총독부건물의 국립중앙박물관(철거)과 이전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모습


5. 식민주의 사관을 넘어 정체성의 회복, 다양성의 존중으로

일제에서 조선총독부박물관은 행정조직상 학무국 사회과의 분과소속으로 국민을 교육하는 장의 성격을 지녔고 결과적으로 박물관의 정치적 특성과 조선총독부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전시를 통해 재현(전경수, 한국박물관의 식민주의적 경험과 민족주의적 실천 및 세계주의적 전망)했다면 해방 이후 국립박물관은 식민주의 사관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왔다.
이후 해방과 전쟁과 독재와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기도 하고 제대로 된 보관 장소가 없어 분관을 하면서도 국립박물관으로서의 자리를 지켜고 식민지배의 상징인 총독부건물을 떠나 용산에서 규모와 소장품 면에서 발전하며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된다. 전시 면에서도 식민사관을 벗어난 다양한 전시를 개최하고 국외로도 교류전, 순회전을 개최하는 등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문화적인 우수성을 국내외로 널리 알려왔다. 덧붙이자면 이는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국가적인 단결에도 문화적인 자존심을 높이는 데에도 일조했지만 한편으로는 단일민족이라는 배타적인 신화를 강화하고 자칫하면 국수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를 보여주기도 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진행해온 1950년대, 1970년대, 1990년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알리는 국외전시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포스터들


최근의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포스터들 이전에는 한국문화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드러내는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을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 다른 나라문화와의 교류와 상호작용을 살펴보고 또 다른 나라의 문화에 주목하는 등 세계 속의 일원으로서 한국문화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고 있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6. 국립중앙박물관의 역할과 가치의 방향

우리나라의 굴곡진 근현대사 속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역할은 변화해왔다. 꺼져가는 조선의 불씨를 보여주는 자존심에서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또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근거로 이제는 세계 속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근거로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져왔다. 제국주의와 그에 대항해온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대립 혹은 제국주의에서 민족주의로의 전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는 국립박물관협의회의 일원으로 다른 나라들과 더불어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나 국가적인 이념을 넘어 인간이 만든 가치 있는 무엇을 수집, 보존하고 전시, 연구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의 문턱을 낮추고 관람객에게 좀더 가까운 관람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박물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결국 추후 박물관의 역할과 가치의 방향은, 관람객들, 그러니까 국립중앙박물관을 이용하는 우리나라의 시민들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의 역사가 결국은 시민들에 의해서 바뀌어가고 있듯이. 그러니 국립중앙박물관에 간다면, 전시를 감상한다면, 그 너머 전시 의도를, 그리고 박물관이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생각해보는 것. 거기에서 출발해서 좀더 적극적으로 전시에, 박물관의 이용에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전시를, 박물관을 가장 가치롭게 활용하는 길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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