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로서의 뮤지엄museum
1. 사립박물관
대학박물관에 이어서 소개할 한국의 주요박물관 세 번째는 사립박물관이다. 이미 몇 차례 언급했듯 서구의 박물관의 역사에서도 한국의 박물관 역사에서도 박물관 설립의 주체는 국가와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넘어오는 흐름을 보여주었다. 일반대중에게 공개전시를 하는 공공시설이라는 근대적 시설이라는 특성상 박물관을 설립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재원이 필요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근대화가 장시간에 걸쳐 일어난 서구에서는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자본권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재력가들이 등장하면서 국가 주도의 박물관을 넘어서는 사립박물관들이 설립되었고 이후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팽창하면서 박물관 발전의 흐름을 주도했다. 그와 비교해본다면 한국에서는 근대화가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일어나며 사실상 국립(1909)과 사립박물관(1938)이 거의 동시대에 출발했다. 그러나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국립박물관을 중심으로 박물관이 체계화되고 산업화와 경제적 발전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나서 역시 사립박물관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팽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다양성과 전문성면에서도 발전을 거듭하며 우리나라 박물관의 흐름을 끌고 있다.
사립박물관이 한국의 주요박물관으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사립박물관에 관련된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서 특히 황윤의 <박물관 보는 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간송 전형필>, <박물관경영과 마케팅>가지 세 책의 내용을 인용해서 정리하고 평했음을 밝힌다.
2. 우리나라 최초, 최고의 사립박물관, 간송미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은 1938년 간송미술관(당시 보화각)의 설립으로 시작되었다. 이미 널리 알려졌다시피 박물관의 설립자 간송 전형필은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일제 치하에 도굴당하고 헐값에 팔리거나 흩어져버리는 우리나라의 유물들을 지키기 위해 아낌없이 내놓는 당대 손꼽히는 소장가였다. 그는 시중에 떠도는 유물들을 마구잡이로 모은 것이 아니라 조선 이전 우리나라 미술사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뛰어난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모았고 또 그것들을 제대로 보전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 박물관을 건립했다.
간송 전형필의 모습, 1930년대 초창기 보화각의 내부전시장, 1970년대 이후 간송미술관의 전경, 재단홈페이지와 간송의 전기를 비롯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동영상에서 가져왔음을 밝힌다.
간송미술문화재단 | 우리문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 kansongpatron.org
보화각(간송미술관)은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던 일제에 대항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이자 개인박물관이었다. 간송은 일제의 비호아래 일본인들이 도굴하고 약탈해서 비싼 값으로 팔아넘기던 우리나라의 유물들을 지키는 보루의 역할을 했고 나아가서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할 수 있는 근거이자 우리나라 미술사의, 우리나라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알릴 수 있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일제의 식민사관은 이왕가미술관이나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삼국시대의 유물들로 일본과 유사성을 강조하고 우리나라가 의존적임을 드러내려했고 일본인들의 취향에 따라 고려자기와 불교미술작품들이 경매에서 가장 높은 가격이 매겨졌지만 간송은 조선의 실경을 그리기 시작한 겸재 정선의 작품들을 비롯 사적으로도 중요한 작품들을 비롯 다양한 작품들을 수집하고 소장해 우리나라의 미술사의 흐름을 더욱 객관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조명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재정적인 한계에 부딪혀 그가 죽고 후손들의 노력으로 1971년이 되어서야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기획전을 선보일 수 있었다. 현재 간송미술관은 재단을 새로 정비하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간송 이후로도 사립박물관을 세우려고 했던 이들이 있었지만 박물관 건물을 세우고 상설 전시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사립박물관이 나타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려야했다.
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 전경 (삼성문화재단은 삼성미술관 플라토도 운영했지만 결국은 경영권을 다음세대로 승계하며 플라토 미술관을 정리했다.) 각 미술관의 홈페이지와 위키피디아 등에서 가져왔음을 밝힌다.
호암미술관 | Ho-Am Art Museum hoam.samsungfoundation.org
삼성미술관 Leeum leeum.samsungfoundation.org
3. 호암미술관
1982년 호암미술관의 설립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자본을 바탕으로 한 규모 있는 사립박물관이 등장했다. 호암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삼성을 세운 이병철의 호로 그는 “산업화시기부터 기업으로 자산을 축적한 자본가이자 열정적인 고미술품 수집가”였다. 1965년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집을 시작했고 호암미술관이 건립된 이후에도 미술관은 꾸준히 소장품목을 늘려서 현재 국보 37점 보물 105점, 총 142점 이상의 최상급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국내 사립박물관에서도 독보적일뿐 아니라 국립박물관 중에서도 손꼽히는 경주국립박물관의 세 배 이상의 규모라고 한다. 2004년에는 한남동에 리움을 세우고 최고수준의 유물을 비롯해 국내외의 근현대 작품을 망라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핵심을 모았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호암미술관은 박물관의 규모와 소장품의 양과 질 등 여러 면에서 국립박물관 넘는 뛰어난 사립박물관으로 평가받지만 한편으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박물관을 운영하는 삼성문화재단이 기업의 경영권 승계와 재산 증여에 편법적으로 이용되어 삼성이 증여세를 내지 않고 지분승계로 재벌기업으로 자리잡게 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작품의 거래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술관 운영이 불법적 자금 세탁을 위한 것이라는 의혹이 짙어지기도 했다. <박물관 보는 법>의 저자가 지적한 위의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세간에 이야기하는 이들처럼, 박물관의 운영과 소장품 혹은 전시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박물관이 공개전시를 위한 공공시설로 궁극적으로는 공공의 가치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박물관의 공공성은 운영 면에서도 역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호림박물관의 신립본관과 신사분관 전경 호림박물관홈페이지에서 가져왔음을 밝힌다.
4. 호림미술관
<박물관 보는 법>에서 저자는 호암미술관과 대비되는 또 하나의 사립박물관으로 호림미술관을 꼽고 있다. 호림미술관은 호암미술관과 같이 1982년에 건립되었고 설립자 윤장섭 역시 기업가로 평생에 걸쳐 유물들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립박물관을 세웠다고 한다. 호림미술관 역시 1만 5천여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고 국보 8점과 보물 46 점 등의 일류문화재를 망라하는 유물들로 여타의 사립박물관이나 국립박물관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윤장섭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소장품을 모두 호림박물관재단에 귀속시키고 부동산과 유가증권 및 기타 개인재산까지도 재단에 넘겨 박물관의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하였다.
덧붙이자면 해외의 대부분의 사립박물관의 독립적인 재단운영이 당연시되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립박물관도 독립적으로 운영되리라고 막연히 짐작하고 있다가 저자의 소개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했다. 사립박물관의 소장품들도 역시 박물관 건립자나 그의 가족의 것으로 사실상 공공재가 아닌 개인 소장품인 경우가 많다는 것도 저자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들이 박물관의 궁극적인 가치인 공공성보다는 개인재산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음을. 그것이 호암미술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립박물관들이 극복해야할 과제가 아닌가 새삼스레 반문해본다. 적어도 박물관(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소장품을 전시하는 공공시설이라면 소장품을 개인재산으로 위탁해두는 갤러리와는 구분되어야할 것이다.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 공간 사옥을 인수하여 만든 아라리오뮤지엄 아라리오뮤지엄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음
제주에 위치한 탑동시네마의 극장, 모텔을 감각적인 현대미술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아라리오뮤지엄
ARARIO MUSEUM www.arariomuseum.org
5. 아라리오뮤지엄
마지막으로 소개할 주요 사립박물관은 아라리오뮤지엄이다. 간송과 호암, 호림미술관에서 보듯 규모와 운영 면에서 뛰어난 주요 사립박물관은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유물들, 우리나라의 고미술품들 중심이었지만 아라리오뮤지엄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대미술품들을 중심으로 하는 뛰어난 사립박물관이다.
설립자 김창일은 세계 100대 컬렉터에 이름을 올리며 탁월한 감각으로 미국과 영국, 독일, 일본의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했고 그들이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라선 지금 그들을 비롯한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흐름을 아라리오뮤지엄에서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아라리오갤러리 외에 한국근대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공간사옥을 박물관으로 재탄생시켜 역사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현대미술을 위한 공간으로 만든 것. 화력발전소건물이 역사성을 보존하는 현대미술관으로 명성을 얻고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로 평가받은 영국의 테이트모던뮤지엄과 같이 공간사옥도, 제주도의 탑동시네마 극장도 모텔도 아라리오뮤지엄으로 탈바꿈해 그 공간에 걸맞는 현대미술작품과 현대미술의 스펙터클이 되었다. 나아가 아라리오뮤지엄은 중국, 동남아, 인동 등 전세계에 걸쳐 뛰어난 작가들을 발굴하고 전시를 선보이며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나가는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발돋움하려는 야심찬 포부마저 엿보게 한다.
6. 사립박물관이 가져야할 역할은 무엇인가
위에서 살펴본 주요박물관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은 비교적 짧은 역사 속에서 발전해왔다.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항해 기존의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전하는 것으로 출발했다면 유물만이 아니라 동시대 작품들, 동시대 세계적인 작가들을 나아가 동시대의 흐름을 이끄는 방향으로 사립박물관의 역할은 더욱 깊고 넓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립박물관이 다양화, 전문화되면서 유물을 수집하고 보존, 전시하는 전통적인 박물관의 역할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이해를 더해주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박물관의 역할을 더욱 확장해왔다.
다른 박물관들과 다른 사립박물관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할까? 사립박물관이 공공재로서의 역할하고 운영되어야한다는 것에 사람들은 동의할까? 사립박물관이 확장해온 박물관의 역할을 실감하고 있을까? 이 모든 질문들은 사실 박물관에서 전시를 감상하는 것에 그닥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전시를 통해서 작품을 만나고 그 순간 느끼는 무엇 생각하는 무엇일 것이다.
우리가 전시에서 만나는 작품은 전시의 맥락 안에 있고 전시는 박물관의, 박물관이 속한 사회문화의, 동시대의, 바로 위와 같은 맥락 안에 존재한다. 우리도 역시 수많은 맥락 속에 우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듯이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작품과 만나는 그 순간에 전시가 속한 박물관의 이야기가 그 작품과의 교감을 더욱 의미 있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해본다. 나에게도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