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페. 러시아여행 내내 기차역창구에서 외쳐대던 단어. 4인용 침대칸을 뜻하는 말이었다. 꾸페에 몇번이나 타고 내리며 알게 된 것은 열차에서-사실은 어디에서든- 하루를 보내는데 그리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쿠페의 공간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아늑했고 편안했다. 창문. 양옆으로 접었다 펼 수 있는 두개의 침대. 창문아래 역시 접었다 펼 수 있는 테이블. 짐가방은 침대 아래 빈 공간에 넣고 매 끼니 먹을 음식은 테이블에 올려두곤 했다. 침대에는 이따금 읽을 책 한 권과 이따금 끄적거릴 일기장을 펼쳐두어도 내가 누울 공간은 충분했다.
끝없이 멀어지는 열차밖 풍경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친 옆자리 사람들과 이야기가 시작되고 서툰 영어는 서툰 러시아어로, 몸짓으로, 웃음으로 이어졌다. 테이블에 모여 앉아 서로가 가져온 음식을 나누며 함께 먹었다. 나는 역앞에서 산 빵을 꺼내고 러시아사람들은 열차칸 끝에 있는 보온병에서 끓는 물을 받아다가 "도시락"컵라면을 먹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또 각자 일과에 골몰하고 나는 그들을 지켜보며 덜커덩거리는 기찻소리에 숨죽여 귀를 기울이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