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연락이 왔다.

엄마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

by 문성 Moon song Kim

1.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는 정말로 요양원에 가야할 때가 되었다고 언니들과 이야기하고 난 바로 다음날이었다. 몇주전 새벽, 아빠가 복통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실려가시고는 한순간 모든 것이 도미노처럼 무너져내릴 수 있음을 직감했다. 엄마는 더 이상 아빠가 밤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오전과 오후를 그럭저럭 요양사님들과 보내고 그분들이 돌아가시고 난 뒤,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하루의 절반이 되는 시간. 엄마는 세심하게 돌봐주지 않는 아빠 곁에서 더더욱 보채고 초조해하고 아빠를 채근했고 아빠는 그러면 그럴수록 지치고 짜증을 부리고 성질을 내는 괴팍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전에 이미 나는 '엄마의 엄마 역할을 놓았다'고 썼지만 다시 아빠와 언니들과 두분의 요양사님들까지도 함께 어떻게든 일상을 꾸려나가려 해왔다. 그러나 나도 언니들도 이제는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모두 지쳐가는 걸 넘어 돌아가며 아프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의 당번도, 보호자가 되어 주기적으로 대학병원을 돌아다니는 것도, 이따금 돌발적인 문제들이 생기는 걸 막는 것도 익숙해졌지만 그것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누군가가 상주하여 돌보지 않는 이상, 집에서 돌보는 것은 엄마의 인지와 정서를 나쁘게 하는 것이 분명한 순간. 가장 가까이있는 아빠도, 바로 곁에 사는 나도, 언니들도 일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인정해야하는 순간.

엄마는 이제 초단기 기억상실의 수준으로 넘어갔고 나도 언니들도 아빠도 이따금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순간은 너무나도 또렷하게 내 눈을 응시하며 웃어보이고 "문성아, 걱정하지 말아. 마음을 편안하게 먹어."라고 이야기해 내 마음을 툭, 내려앉게 만들었다. 형부가 말했다. 어쩌면 나를 기억하는 것처럼 부르는 것조차 사실은 습관적 반응일 뿐일지도 모른다고. 엄마의 눈을 금세 초점을 잃고 허공을 미끄러지듯 공허해지고 말았다가 이내 일분도 안되어 똑같은 걸 되묻게 되는 지경이 되었기에. 형부의 말이 맞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2.

그럼에도, 요양원의 연락을 받고 다른 대기자에게 넘어가기 전에 입소하겠노라고 이야기한 그 날부터 나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터졌다. 엄마와의 순간들이 툭툭 떠올라 마음을 어지럽혔다. 엄마가 그곳에 가서 나를 찾으면 어쩌지, 나를 기다리면 어쩌지, 그곳에 적응을 못해서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리면 어쩌지, 서러워하면 어쩌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더 힘들어하면 어쩌지. 혹시라도 그곳에서 더더욱 급속도로 상태가 악화되면 어쩌지. 결국은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 되면 어쩌지. 이미 엄마는 집에서도 나를 찾다가도 그걸 잊고 나를 기다리다가도 그걸 잊고 어린아이처럼 울다가도 그걸 잊어버리는데도 나는 미칠것만 같았다. 걱정들 속에 잠을 못 이루던 며칠전 문득, 그래도 엄마가 어느 한 순간 나를 보며 웃고 따뜻한 목소리로 다독이고 내 손을 잡고 기도하는 그 따뜻함을 내가 영영 다시는 느낄 수 없게 된다면. 어떡하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사람. 하지만 나를 돌보는 시간보다 오히려 내가 돌봐야했더 시간이 더 길었던 엄마보다는 딸같던 엄마. 자신의 자아실현을 딸들의 성공에 투영하려고 애쓰던 그러다가 둥지를 떠난 아이들 뒤에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울부짖던 사람. 차마 그 울부짖음을 못들을 척할 수 없게 만들던 사람. 어느 순간 숨이 막히고 족쇄처럼 느껴졌음에도 나에게 뻗는 그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든 사람. 당신으로 내가 포기한 것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그 손을 떨칠 수 없었던 사람.

당신의 외로움이 사실은 어린 딸들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임을. 존재 자체의 공허임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몸부림치는 당신의 존재 자체가 주변에게도 고통이었음을 알면서도 나는 엄마를 놓을 수 없었다. 안타까움과 연민, 고통에 대한 공감 한편으로는 존재에 대한 회의, 분노...나는 삶의 무의미함과 존재의 허무를 엄마 덕분에 너무나 빨리 알아버렸다. 먹고 살기 위한 생활의 비루함조차 떠넘기는 부모를 둔 자식의 삶을 감당하며 나도 언니들도 너무 빨리 철이 들었다. 고단함에 치여 쌓이는 분노를 서로에게 터뜨리기도 했고 엄마아빠를 원망하고 냉소하기조차 했지만. 내가 나로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며 거리를 유지하고 엄마에게 냉정해지려 애썼지만. 그렇게 일탈과 모험을 감행하고 엄마의 기대와 아빠의 바람도 벗어나 결국에는 나의 길을 가는 삶을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놓을 순 없었다. 엄마가 절박하게 울부짖는 순간. 절박하게 매달리는 그 순간, 결국은 내가 해결해줄 수 없는 근원적 문제임을 알면서도, 엄마를 떨칠 수 없었다. 나도 알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

그리고 오늘 큰 언니에게 이제 그만 놓으라는. 우리 놓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의 입소준비를 하느라 분주히 옷과 속옷, 세면도구와 일상용품들을 챙기다가 나는 기어이 아빠의 무신경함과 걱정에 폭발했고 언니는 그런 내 모습이 언니마저도 힘들게 만든다고 토로했다. 다시 눈물이 터졌다. 언니는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까봐 참다가 이제야 말했다고 했지만 오히려 나는 그 말이 고마웠다. 언니덕분에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엄마를 잡고 있었던 것보단 엄마가 나를 잡고 있었던 거라고, 나마저도 그 손을 놓아버리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 뿌리칠 수가 없었다고. 나도 몰랐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하지 않는 나 자신 또한 깨달았다. 언니는 내게 훌륭한 일을 했다고 자기라면 그렇게 못했을 거라고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언니는 오랜 시간 대가족의 가장이 되어 누구보다도 큰 희생을 했다는 것도. 다른 언니들도 역시. 우리는 각자의 몫을 한 것뿐. 그리고 그 몫에 대한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다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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