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
나의 바람은 산산조각났다.
엄마는 적응하지 못했다. 8월 초 요양원에 들어간 다음 엄마의 잠은 더욱 줄어들었다. 사람들을 깨웠고 사람들이 곁에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증상도 마찬가지, 아니 더욱 심해졌다. 딱 한 번,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고 일주일 후, 엄마를 찾아갔을 때 빼고는 코로나확산세와 엄마의 적응기간을 위해서 찾아오지 말라 했다. 그리고 요양원의 간호실장은 우리에게 전화를 해서 요양사들이나 간호사 그 누구든 자신의 곁에 붙어 있길 원해서 일을 할 수 없다는 호소 아닌 호소를 했다. 그렇게 시작된 호소는, 더욱 잦아졌고 더욱 길어졌다.
그래도 찾고 찾아 들어간 곳이었다. 깨끗하고 쾌적한, 엄마의 의지처였던 기독교에서 헌신적으로 운영한다고 하는, 이미 다른 분도 어머니를 모셨다고 했다. 믿을만 한 곳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혼자임을 견디지 못하는 엄마는 점점 골치덩이로 전락해가고 있었다. 취침시간에 자지 않고 소리를 내어 다른 사람들을 깨우는 엄마, 자기 침대에 누워있지 않고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 곁에 있으려는 엄마, 사람들을 돌보는 것 외에도 운영을 해야하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일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엄마.
언니들과 나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걱정과 함께 죄인이 되었다. 혹시라도 그곳에서 구박을 받게 될까봐 마음이 초조해졌다. 여러 명이 연락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할까봐 큰 언니가 대표로 전화를 받기로 하고는, 언니는 전화가 올 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고 했다. 요양원의 호소는 강요에 가까운 요청으로, 협박에 가까운 통보로 바뀌었다. 단체생활을 위해서는 밤에 잠을 잘 수 있는 약 처방이 필요하다는 말에, 우리는 동의했다. 이미 아빠도 엄마의 불규칙한 잠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응급실 신세를 지는 지경에 이른 다음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실장은 낮에도 혹시라도 낙상을 할까, 문제가 생길까 두렵다고 약을 처방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반신반의하면서 엄마의 상태에 대해서 들었고 엄마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최후통첩과도 같은 연락이 왔다. 더는 견딜 수 없으니 치료를 받고 돌아오거나 모시고 나가라는 이야기.
마음이 스산해졌다.
언니들과 나는 엄마를 24시간 편안하게 돌봐줄 곳을 찾았던 것이었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최선을 다한다고 믿었던 그들은 왜 우리를 골치덩이 취급하는 걸까, 엄마가 치매인 게 잘못일까, 무수하 질문들만 떠오를 뿐,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가족회의를 했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병원에 상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다만 약을 처방해주는 것이 전부일 뿐. 알츠하이머관련 안내를 찾아보고 논문을 읽고...그렇게 헤매다가 네째언니가 치매전담콜센터의 전문상담원과 대화를 하며 간신히 다음 길을 찾았다.
일반요양원에서 치매환자를 거부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쾌적한 요양원도 1명이 6명까지 돌봐야하는 체계 속에서 치매환자가 골칫덩이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임을 인정해야 했다. 엄마는 중증도알츠하이머상태였다. 극심한 행동장애가 동반되는 게 당연하지만 알맞은 약을 찾으면 일반 요양원 생활도 가능하다며 치매전담국가병원에서 적절한 약물을 찾는 것으로 완화시키는 방법을 권유해주었다. 녹음한 내용을 들으며 모두가 한숨을 돌리고 안도했지만, 적절한 약물을 찾는 건 희망사항이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다만, 엄마가 고통을 고통스럽다 표현하지 못한 채, 고통속에 있게 할 수는 없었다.
요양원의 강권에 가까운 요청과 의사의 처방으로 받은 약은, 엄마에게 인간다움을 빼앗아갔다. 엄마는 눈을 반쯤 뜬 채,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자신의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있었다. 처음 요양원에 들어갈 때 엄마는 웃으며 나와 사진을 찍었다. 잠시였지만. 엄마는 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첫 면회를 갔을 때에도, 엄마는 우리에게 엄마가 자주 부르던 가곡을 불러주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함께 병원에 약 처방을 받으러 갈 때에도, 엄마는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도해달라는 부탁에, 엄마는 조금은 생기를 잃어버린 목소리였음에도 또렷하게 엄마의 딸들을 보살펴달라고 하나님께 소리내어 간청했다. 그랬던 엄마가 의사소통은 커녕 걷지도 못한 채, 휠체어에 앉아 버둥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요양원, 약처방, 적응의 어려움, 치매의 악화...그 무엇때문이었든,
고통스러움 속에 있는 게 분명한 엄마의 모습을 보며, 엄마를 그대로 고통 속에 둘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