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31일. 현재. 새삼 느끼는 것들을 적어본다.
1. 최악의 고통이라 느낀 순간은 더한 고통으로 갱신될 수 있다.
엄마의 알츠하이머가 악화되는 과정 중에 나는 넋을 잃었다. 닥치는 일들 속에서 시간이 흘러갔고 아빠가 다쳤으며 나 역시 한 번의 응급실 신세를 졌다. 간신히 연말까지 이어지는 일들을 마치고 자꾸만 발목을 잡아끄는 늪과도 같은 무언가를 벗어나 보겠다고 허우적대다가 더 깊은 늪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사기를 당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 내가 타인을 대할 때 그렇듯 그 타인도 나를 해하지 않으리라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무너졌다. 너무나 고통스러움에도 그 시작이 나의 사람에 대한 기대가 실수였다는 것에, 그것을 시작으로 내가 노력과 내 앞날까지도 저당잡혔다는 것에 황망해 이 고통의 크기를 제대로 실감 치도 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그 고통이 밀어닥치며 알았다. 최악이라 여겼던 고통은 더한 고통으로 잊힌다. 서럽게도 이렇게 나 역시 나라는 개인을 넘어서지 못하는 인간임을 확인한다. 누구나 자신이 겪는 고통이 제일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2.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고통은 일관되게 지속되지 않는다.
심리적 고통 속에서도 배가 고프고 졸린다. 쓰러져 잠들었다가 일어나 일을 하러 간다. 사람들 속에서 웃고 떠들고 투덜거린다. 회의를 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고 고민도 한다. 그렇게 지속되는 일상에 순간순간 고통이 파고들 뿐이다. 일순 고통이 전경으로 떠오르고 일상을 순식간에 무감각한 배경으로 물러나게 만들 뿐이다.
3. 극한의 심리적 충격은 극한의 물리적 충격과 다를 바 없는 고통을 준다.
온몸이 아프다.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린다. 찌르르한 통증이 가슴을 파고든다. 시도 때도 없이 울컥 눈물이 흐른다. 숨이, 쉬어지질 않아서 나도 모르게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마치 교통사고 후의 증상처럼,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괜찮을 거라고 믿었던,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던 순간에 툭툭 고통이 튀어나온다. 강렬한 두려움. 불안. 분노. 좌절감. 분명 감사하곤 했던 사소하지만 충만한 시간들이 무감각해진다. 시간이 간다. 해가 지고 다시 뜬다. 눈을 뜨며 또다시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깨닫는 순간, 입에서 욕설이 나온다. 다시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그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눈을 뜨질 않길 빌었던 날들, 십 대 때, 이십 대 때, 삼십 대 때의 어느 날들이 겹쳐지며 그 순간의 고통을 배가시킨다.
4. 그럼에도, 살아가야만 한다면, 살아지는 것보다는 살아가는 걸 택한다.
나는 다시 숨을 죽이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적어 내려 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적으로, 창조적으로, 비판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담아 지금 이 시기 이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글로 쓰는 것이지.
지푸라기를 잡듯,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당신의 말을 기억해본다.
쏟아져내린 눈 위로 또 다시 쏟아지는 눈을 맞는 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텅 빈 가지를 뻗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