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내리자마자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른 아침의 신선한 공기에 기분이 좋았다. 아직 인적이 드문 광장은 모스크바에 비하면 한눈에 들어오는 크기였다. 그곳을 채운 건물들이, 가로수가, 동상 하나까지도 더 아늑하고 더 아름답게 지나온 시간과 여유넘치는 현재를 말하고 있었다. 벅차오르는 그 순간 가방을 주섬주섬 풀어헤쳐 스케치북을 꺼냈다. 이미 전날밤 여름비가 속살거리던 모스크바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밤기차에 올라 멀어지는 모스크바를 보며 우울해하던 순간은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