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이 지난 지금 상트를 떠올리다 막막해졌다. 어떻게 그곳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느꼈던 그때 그 순간의 그곳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 막막할 뿐이다. 그러기에는 내 그림도 글쓰기도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만다. 그래도 서툴고 보잘 것 없는 채로 그곳을 그림으로 글쓰기로 남기기로 한다. 오랜 침묵에도 그곳의 이미지들이 그곳에서의 상념들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것을 딛고 상트를 상상할 수 있다면 문득 자신이 했던 여행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상트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다 탄식에 가까운 한숨이 나왔었다. 풍경에 넋을 잃고 외마디를 지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집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다가 창밖을 보면서도 할말을 잃었더랬다. 허름한 아파트 구석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마저도 프레임 그대로 걸어놓은 근대유럽의 풍경화처럼 보였다. 눈이 닿는 어디든 아름다웠고 고전적이며 우아했다.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언제나 감탄하며 바라보기만 하던 막연히 내가 속한 세계와는 다른 세계처럼 여겨지던 다큐나 여행잡지 속의 환상적인 풍경들이 거기에 있었다. 게다가 머무는 내내 날씨는 화창했고 밤 12시에 해가 져서 새벽 3시에 해가 떴다. 햇살과 함께 시시각각 미묘하게 달라지는 다채로운 풍경들이 나를 에워쌌다. 나는 미친사람처럼 그곳을 탐했다. 눈을 뜨면 나서서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그곳을 쏘다녔다.
저녁 아홉시가 넘은 네바강의 풍경은 부드러운 오렌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다리가 아프다 못해 뻣뻣해져 발을 질질 끌다시피 숙소 앞까지 걸어와서는 숙소 앞 강변을 스케치했다. 네바 강변에서 네프스키 대로방향으로 상트의 도심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유유히 흐르는 네바강과 핀란드만 그리고 바다를 오가는 배들 그 너머 17세기부터 세워진 건축물들. 그 하나하나가 상트의 역사이자 박물관, 극장, 학교, 연구소로 쓰이는 문화의 중심지였고 그것들이 모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는 유적지.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곳. 도시 사이사이를 지나는 물길이 합쳐져 네바강으로 다시 핀란드만으로 흘러드는 곳. 강과 섬 그리고 늪지대 위에 기어이 도시를 세우고 유럽화에 박차를 가한 표트르대제가 만든 곳이자 늪지대를 메우기 위해 동원되어 돌을 옮기다 결국 늪지대에 던져진 농노들이 만든 곳. 유럽과 접한 러시아 최대의 무역항으로 유럽의 자본주의와 문화가 유입되고 전제군주와 귀족들의 후원하에 번성한 곳. 여름궁전과 겨울궁전의 화려함을 뽐내던 전제정치가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혁명으로 끝난 곳.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가 소련의 해체로 본래의 이름을 되찾은 곳. 공산주의 종교탄압의 상징 까잔성당과 신고전주의 양식의 절정 성 이삭성당이 함께 있는 곳. 차이코프스키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무덤이 있는 곳.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좀 더 궁금하다면,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83%81%ED%8A%B8%ED%8E%98%ED%85%8C%EB%A5%B4%EB%B6%80%EB%A5%B4%ED%81%AC&oldid=15970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