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궁전, 에르미타시

by 문성 Moon song Kim

겨울궁전은 상트에 온다면 반드시 들러야할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나 역시 상트에 와서 반드시 가기로 마음먹은 곳이었다. 표트르 대제가 시작한 건축이었지만 예카테리나가 완성했고 이후 예카테리나2세가 문화적으로 꽃피운, 바로크와 로코코 러시아의 특징이 결합한 러시안바로크의 절정. 그 자체로도 러시아제정의 걸작이자 세계 3대 미술관으로 인정받는 방대한 컬렉션을 소장한 박물관. 그 목록에는 내가 그리도 보고 싶었고 궁금해했던 작가들이 모두-정말로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곳을 언제 들러서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였다.

아마도 유명한 박물관을 들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리라. 우리는 그곳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면서 그곳에서는 느긋하고 우아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사실은 그 사진이나 영상이야말로 허상에 가깝다. 오히려 작품보다는 작품을 둘러싼 인파, 인파가 만들어내는 소음, 그리고 인파로 인해 잠깐 앉을 공간조차 눈치를 보며 찾아야하는, 그야말로 인파, 인파 그리고 인파로 가득찬 그곳이 실제라고 해야한다. 게다가 아무리 훑어보고 지난다 해도 그 작품들을 모두 본다는 것은 며칠을 그곳에서만 보낸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너무나 많은 작품들 앞에서 무엇부터 보아야할지 고민하다가 작품들 속에서 길을 잃거나 너무 많은 사람들에 혹은 너무 많은 작품수에 금세 지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 그래도 그곳까지 가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온다는 게 안타까워 꾸역꾸역 작품들을 훑지만 결국 돌아나와서는 내가 작품을 본 건지 작품들을 둘러싼 인파를 본건지 헷갈릴 확률이 훨씬 더 높은 것이다.

나는 며칠을 상트 시내를 돌아다니며 겨울궁전을 거쳤고 그때마다 매표소 앞의 줄을 겨울궁전에 입장하는 사람들의 수를 체크하곤 했다. 매번 이른 아침부터 매표소 앞의 줄은 길게 늘어섰고 궁전입구에 늘어선 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점심 때가 되어도 줄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길게 이어져 있었고 나는 그걸 보며 도대체 언제 가는 것이 가장 좋을까 가늠하지 못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 갔다. 나 역시 이른 아침에 매표소 앞에 서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 티켓을 샀고 또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입장했다. 아찔할 정도로 화려한 입구와 계단 늘어선 기둥들과 아치들 샹들리에를 지나 붉은 카펫이 깔린 대리석 계단을 올랐다. 그곳에서는 스케치를 할 여유가 없어서 손에 카메라를 쥐고 움직이는 내내 어깨 높이 시점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나와서야 그 사진들을 돌이켜보며 스케치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그곳에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함께했던 인파 그리고 그 와중에도 감동할 수 밖에 없었던 작품들이었다. 그토록 보고싶었던 작품들을 마주하면서는 감상을 하느라 바빴고 감히 모사도 할 수 없었기에 그것들의 이미지는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기로 하고 그곳의 인파를 에르미타시의 이미지로 남기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렘브란트를 보았고 수많은 이들이 렘브란트를 훑고 지나치는 동안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돌아온 탕자> 구석에 달라붙어서 남들 몰래 훌쩍이기까지 했다. 두텁고 거친 붓질은 젋음을 보내고 돌아와 주저앉은 아들의 풍파에 시달린 얼굴과 그 앞에 신산한 세월을 기다리고 팔 벌려 맞아주는 늙은 아비의 초연한 얼굴 그 자체였다. 짙읕 어둠 속에 떨어지는 빛에 드러난 두 사람의 모습까지, 표현과 내용과 구성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주제로 환원되는 동시에 제각각 그 주제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었다. 나는 이 렘브란트의 말년의 작품에서 전형적 도상으로 해석하는 기독교적인 믿음보다는 희노애락을 겪으며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한 화가로서의 자존과 파산으로 귀결된 그의 노년을 떠올리며 탕자와 늙은 아비 둘 다 그의 자아가 아닐까 생각했다. 결국은 자신을 찾아헤매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야하는 작가, 무언가를 만드는 인간,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아 헤매며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야하는 근대인 모두가 아닐까 생각했다.




에르미타시(겨울궁전)의 일반적 정보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98%88%EB%A5%B4%EB%AF%B8%ED%83%80%EC%8B%9C_%EB%AF%B8%EC%88%A0%EA%B4%80&oldid=15980663

Hermitage www.hermitagemuseum.org

에르미타시 박물관의 소개와 소장품을 둘러보려면,
http://www.hermitagemuseum.org/wps/portal/hermitage/?lng=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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