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
눈이 펑펑 쏟아지던 폭설 속에 엄마가 떠나고, 2주가 지났다.
의사의 사망선고를 듣고 엄마를 시트로 감싸 장례식장으로 옮기고
엄마의 얼굴을 닦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치를 마무리하고 이어진 장례식 일정.
사람들에게 부고를 보내고 빈소를 차리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또 보냈다.
엄마의 영정사진 앞에서 사람들과 맞절을 하고 엄마의 이야기를 나누다 지쳐 밤을 맞았다.
엄마의 입관 전에 마지막으로 엄마를 안았다. 이따금 너무 힘들면 영문을 모르는 엄마를 안고 가만히 그 품에 파고들었던 것처럼. 엄마 품에 파고들었다. 스테인레스스틸 위에 반듯이 누운 엄마는 차가웠지만 편안해보였다. 응급실로 가던 그 순간처럼, 병원에서 보내던 순간들처럼 고통스러워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새벽에 발인예배를 마치고 빈소를 정리하고 서울승화원으로 가서 엄마의 관이 4번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한 줌으로 바스라진 엄마를 작은 목함에 받아들고 장지로 향하는 내내 나는 손을 떼지 못했다. 그 온기가 조금씩 식어가는 것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폭설이 끝나고 얼어붙었던 땅이 어느 새 녹아 햇살 속에 아스라한 한강의 풍경속을 달렸다. 양지바른 어느 산기슭에 수목장으로 엄마를 묻었다. 가족들과 둘러서 한 줌 재가 된 엄마를 땅속에 내려주었다. 돌아가며 흙을 덮고 내려오는 길에도 내려앉은 햇살이 우리를 따라왔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엄마, 잦은 병치레와 외로움을 힘들어했던 엄마이기에 우리는 주님품에서 평안히 쉬세요. 라는 문구를 골랐다. 아마도 엄마는 이미 그렇게 쉬고 있을 거라고 더는 아프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장지에서 돌아와서도 처리해야할 일들이 남아있었다. 병원과 요양과 관련된 일처리들, 장례절차와 비용계산, 조의를 전해준 이들에 대한 답례, 이 모든 일들을 치르며 고생한 가족들, 혼자 남은 아빠의 일상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장례식에 다녀간 이가 뒤늦게 확진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 가족 모두가 검사와 격리에 들어갔다. 연이은 일들 속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게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가족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때때로 눈물이 터졌다. 언니들과 전화를 하다가. 친구들의 연락에. 급한 일처리때문에 걸려온 전화에. 우연히 날아든 문자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먼지가 쌓이고 물건들이 쌓이고 어둠이 내려앉은 자리에서 가만히 가만히 누워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모친상 휴가가 끝나고 크리스마스가 왔다.
따뜻한 걱정과 배려들 속에서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나는 내가 슬픔 속에 가라앉고 있음을 알았다. 사람들의 그 마음들이 너무나 고맙고 소중하면서도 그래서 마음을 다해 답하려 애쓰면서도 나는 슬품에 짓눌려 이따금 울컥 치솟는 아픔들 속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미 누군가를 잃어보기도 했고 더는 함께할 수 없는 사이가 된 적도 있었기에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들도 지나간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슬픔이 줄어들지는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엄마가 나에겐 너무나 특별한 존재였음을 알고 있었기에. 엄마는 나에게는 너무나 애틋한 사람이었다. 그 깊이도 그 넓이도 그 안에 담긴 희노애락들까지도 그 무엇과도 그 누구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 모든 것들 속에 나를 놓아버린다면 그건 엄마가 원하는 것은 아니리라. 오늘 아침 눈을 떠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일어나 앉다가도 차오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지만 그래도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하루를 시작한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며 하루를 다듬기로 한다. 눈물이 자꾸만 화면을 흐리하게 만들어도 한자 한자 타이핑을 한다. 당신을 내 안에 품고 또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