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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Sep 19. 2022

굉장히 흥미로운 도전이었어요.

<우리는 왜 예술을> 인터뷰2-(1):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윤정애

우리는 왜 예술을,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윤정애

    

 

  

우리는 왜 예술을 경험하는가. 두 번째 인터뷰는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윤정애 선생님과 함께했다. 윤정애 선생님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의 1기 도슨트로 서울시립미술관이 도슨트제도를 도입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미술관의 주요 전시에 참여해왔다. 윤정애 선생님이 지나온 시간들은 말 그대로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활동 나아가 우리나라 도슨트 도입과 정착과정을 보여주는 역사이기도 하다. 더불어 첫번째 인터뷰했던 박귀주 선생님과 함께 활발한 활동으로 자리매김해온 베테랑도슨트이기도 하다.

윤정애 선생님과 인터뷰 과정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도슨트 제도에 지원해 선발과정을 거치고 관람객들과 만나기까지 그리고 수많은 전시들과 더불어 여전히 활동을 이어오기까지 짚어오며 새삼 존 듀이의 말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끌리는 순간에서 출발해 알아가는 재미를 맛보고 또 그것으로 사람들과 교감을 하는 기쁨을 누린다는 것은, 존 듀이의 말대로 작품을 통해서 서로를 분리하고 고립시키는 장벽을 무너뜨리는 그야말로 예술을 통해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아닌가. 윤정애 선생님의 도슨트 활동 이야기는 우리가 왜 예술을 경험하는가에 대한 윤정애선생님의 대답인 셈이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도전이었어요.


선생님 도슨트 1기인데,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윤: 도슨트라는 용어에 대해서 전혀 몰랐어요. 사실 미술에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근데 제 고등학교 친구가 문화유산해설사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한국사를 전공했거든요. 그래서 그게 맞을 거 같아서 그 친구한테 나도 그거 하고 싶다고 그랬더니 친구가 주로 궁궐에서 설명을 하는데 너는 안 된다 너 이거 하면 궁궐에서 길 잃어버린다고요. (웃음) 제가 길치예요. 그 친구가 정보를 줬어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도슨트 1기를 모집한다는 정보를 줘서 정말 마감날 택시 타고 와서 접수했어요.


그럼 처음에 도슨트가 자원봉사라는 것만 알고 지원을 하신 건가요?

윤: 미술 전시를 설명하는 건 알고 있었죠. 근데 이제 공부하면 되겠지, 미술관에서 공부하게 해 주겠지 그런 기대를 가지고 왔었죠. 사실은, 제가 한국사 박사과정을 수료하는 것까지 공부했었어요. 근데 애 둘이 되니까 공부를 못해서 그만뒀거든요. 완전히 전업 가정주부가 됐고 그래서 필리핀을 갔다가 서울에 다시 돌아와서는 애 둘 데리고 키우다 보니까 뭔가 조금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냥 집에 있기에는 너무 좀. (웃음) 그리고 전공 외에 새로운 걸 하고 싶었고요.

제가 사실은 애를 굉장히 늦게 낳았어요, 그래서 그때도 애들은 굉장히 어렸어요. 다들 초등학생들이었는데 저는 애들이 잘 협조를 해주고 또 남편도 굉장히 좋아했어요. 제가 뭔가를 한다는 거를. 왜냐면 항상 공부를 그만뒀다는 거에 대한 아쉬움이 컸거든요. 남편이 오히려 더 컸어요.      


첫 도슨트 선발 그리고 교육과정은 어떠셨나요?

윤: 처음이라 아무런 전례가 없었어요. 그때 그 담당자분이 의욕적으로 도슨트 제도를 여기(서울시립미술관)에 도입을 하고 욕심이 많았던 거 같아요. 많은 수가 접수를 했었고 1차 서류를 통과하고 2차 면접을 봤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영어 도슨트로 지원을 했었거든요. 근데 2차 면접 때도 많은 사람들이 떨어졌던 거 같아요. 마지막에 선발된 사람이 50명 정도였죠.

주로 미술사 강의를 들었어요. 저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됐어요. 강사분도 정말 성심성의껏 열심히 해주셔서 좋았어요. 마지막 날 도슨트 교육을 담당한 선생님이 비디오로 저희 프레젠테이션하는 거를 다 찍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영어도 하고 한국어도 촬영을 해서 두 가지 다 사람들 앞에서 보여줬어요. 그리고 그때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와서 심사위원으로 심사를 해서 딱 다섯 명을 뽑았어요. 영어 두 사람, 프랑스어 한 사람, 한국어 두 사람. 너무 조금 뽑혀서 좀 놀랬죠.

그다음부터 곧바로 전시에서 (도슨트로 활동을) 많이 했었어요. 그때는 주로 책에 많이 의존을 했어요. 인터넷이 별로 발달하지 않은 때라 (전시 주제에 관한) 책을 거의 다 샀던 거 같아요. (웃음) 샤갈 전하면 샤갈 책을, 인상주의 전시하면 인상주의에 관련된 책을 다 그냥 즐겁게 샀어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 책이 거의 없었거든요. 책을 사서 많이 읽었고 (작가) 인터뷰 같은 것도 도움을 많이 줬었고요. 저한테는 미술이라는 걸 알게 되는 굉장히 흥미로운 도전이었죠.      

선발돼서 곧바로 투입돼서 관람객을 만나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윤; 굉장히 긴장돼요. 사실 (관람객과) 50센티 정도 거리, 거의 침 튀길 정도로 가까운 사이에서 하는 거라 강연보다 더 어렵게 느껴져요. 그래서 힘들다면 굉장히 힘들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 도슨트는 하면 할수록 매력 있는 봉사활동 같아요. (웃음) 제가 남들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걸 좋아하나 봐요.  제가 운 좋게 첫 전시를 한중일 초상화 대전을 했었어요. 굉장히 역사적인 지식이 많이 필요한 전시라 제 자랑 같지만. 그렇게 첫 전시의 도슨트를 성공적으로 잘할 수 있었죠. 그다음에 또 운 좋게 샤갈전을 해서 완전히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어요. (웃음) 다음 작품 넘어가면 전부 제 앞에 서려고 할 정도로. 사실 저라서가 아니라 설명에 굶주렸던 거예요. 관람객들이. 그런 프로그램이 없어서 굉장히 듣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초반에도 정말 재밌게 했어요. 관람객 호응도 좋았고 참 신났어요. 그때만 해도 도슨트가 귀했기 때문에 저 같은 경우는 도슨트 활동을 하면서 티브이 출연도 한번 했었고 잡지에도 굉장히 여러 번 소개가 됐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긴 시간 활동을 계속해오기는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어떤 부분이 선생님께서 도슨트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나요?

윤: 그게, (생각하며) 관람객과의 만남인 거 같아요. 물론 실패하고 속상한 경험도 많지만. 미술이라는 정말 수준 높은 매개체를 가지고 같이 공감한다는 게 참 큰 매력이에요. 그리고 지적인 만족이 돼요. 솔직히.


다시 말하면 뭔가 새로운 걸 알아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신다는 건가요. 선생님.

윤: 네 그런 아무래도 그런 성향이 있으니까 이런 걸 하죠. 안 그러면 참 힘들 거예요. (도슨트를) 저는 사실 손재주가 없어요. 보기완 달리. 그림도 못 그리고 항상 바느질은 다 엄마가 해줬고 나는 그런 거 전혀 안 하거든요. 근데 미술은, 우연하게 시작했는데 그게 저한테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재밌는 전시가 참 많았어요. 저는 샤갈전 (도슨트를) 하면서 행복했어요. 샤갈 그림을 보면서 제가 이 그림을 보면서 행복한 마음을 그대로 전하니까 그게 다 전염이 돼서 (관람객들도) 더 좋아하셨던 거 같아.


선생님께서 도슨트를 계속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 중에는 미술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있으셨던 거예요.

윤: 네 그럼요. 저는 (인터뷰 당시 도슨트하던) <시대유감>전도 좋아하는 작품이 있어요. 태백산맥 표지를 그린 작가 홍선웅 그분이 해직교사가 학생을 끌어안고 있는 그 그림 앞에 서면 정말 가슴이 먹먹한 거예요. 막 슬퍼지고 눈물이 날 것 같고. 그런 감동을 많이 받아요. 그런 게 또 원동력이 되는 거 같아요.      


선생님 일상에서 도슨트 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요.

전시할 때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걸 빼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어요. 전시 기간이 아닐 때는 항상 염두에는 두고 있지만 잊고 살죠. (도슨트를) 안 할 때는. (웃음) 전시 기간에는 가끔 중요한 교회 일도 빠져요. 그게 꼭 필요하면. 그러면 아, 미술관 또 간다고 되게 싫어하는데. (웃음)     


선생님 앞으로도 계속 도슨트를 하고 싶으신 가요.

하고 싶어요. (웃음) 하고 싶죠.




* 도슨트(docent)란 전시해설로 관람객의 감상을 돕는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도슨트는 전시의 기획의도에 따라 관람객을 이끌고 전시실을 돌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해설을 하는데 이때 작품에 대한 단순한 정보전달뿐 아니라 작가의 삶이나 기법적인 특징, 사회문화적인 배경 등 풍부한 맥락을 함께 전함으로써 관람객이 작품을 좀 더 잘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1907년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서 제도로 시작되고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광주비엔날레를 기점으로 도슨트 제도가 유입되었다. 미술관은 우리나라 법에서도 밝히고 있듯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한 곳”이지만 대중예술에 비해 미술전시의 관람률은 높지 않다. 미술관도 이를 인식하고 관람객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도슨트 제도는 그 일환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에서 대부분 자원봉사로서 도슨트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특히 시립미술관은 2003년부터 ‘도슨트 양성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도슨트 제도를 운영해온 모범사례로 꼽힌다.

** 본 인터뷰는 2018년 석사논문을 위한 질적 연구에서 도슨트 활동에 관한 약 6개월 간의 참여관찰과 심층 인터뷰의 내용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도슨트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본인의 논문 “미술관 도슨트의 역할 갈등에 관한 문화기술적 사례연구”를 참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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