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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Oct 02. 2022

힐링이 돼요.

<우리는 왜 예술을>인터뷰3-(1):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고은경

<우리는 왜 예술을>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고은경



우리는 왜 예술을 경험하는가. 세 번째 인터뷰는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고은경 선생님과 함께했다. 고은경 선생님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의 4기 도슨트로 앞선 두 인터뷰에서 소개한 박귀주, 윤정애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이십여 년 가까이 주요 전시에 참여해왔으며 현재까지 활발히 도슨트로 활동을 이어왔다. 고은경 선생님은 특히 직업인으로서 전문상담가로 일하는 것과 도슨트 활동을 병행해왔기에 매번 전시에 도슨트로 지원하고 교육에 참여하고 도슨팅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음을 인터뷰를 하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더하는 한편 사람들에게 우리 궁궐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알리는 궁궐길라잡이로도 자원봉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인터뷰는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정성스러운 마음이라는 고은경 선생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었고 결국 우리가 왜 예술을 경험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고은경 선생님의 답변이기도 했다.  

     


 힐링이 돼요.


처음에 어떻게 도슨트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고: 원래는 궁궐길라잡이를 먼저 시작했어요. 거기에서 어떤 분이랑 좀 친해졌는데 그분도 문화예술 쪽에 관심이 많아서 이전부터 미술관을 좀 다니셨대요. 그분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미술 쪽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까 ‘아, 그럼 미술관에서 해설하는 걸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 그래서 ‘어, 그래요, 그러면 어디서 하지’ 그러다가 그래도 공공미술관에서 하면 좋겠다 싶어서 서울시립미술관 공고가 나오는 걸 기다렸어요. 여기에서 도슨트 모집을 한다는 걸 알고. 음, 그래서 기다렸다가 공고가 났길래 ‘아, 이거다’ 그러고 냈는데 경쟁률이 셌어요. 안될 수도 있는 거니까 (웃음) 어쨌든 된 거에 대해서 굉장히 기뻤던 기억이 있어요.     


이미 궁궐에서도 해설을 하고 계셨는데 미술관 도슨트도 지원을 하시게 된 건 미술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으셨던 건가요.

고: 어렸을 때부터 눈을 뜨면 연필과 종이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었어요. 아주 어렸을 때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항-상 유명한 여자 인형, (웃음) 왜 어렸을 때 종이인형 옷 입히는 거 있잖아요, 그걸 그리고 있고. (웃음) 그러다가 초등학교 때 상을 몇 번 받고. 고등학교 때 미술부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너 미술부 들어와라’ 하셨어요. 근데 당시에는 부모님이 팔짝 뛰셨어요.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돈도 많아야 되는데 네가 왜 거길 가야 되냐고.’ (나도) 거기에 대한 열정도 그만큼 있지 않았고. 그래서 고민도 별로 안 하고 미술부에도 안 들어갔죠.

대학교에 올라와서 전공이 조경학과니까 건축학과 계열 예술 관련 과를 선택한 셈이었고 방학 때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대학로에 있는 미술 지도하는 선생님이 운영하는 개인교습소 화실을 다녔어요. 그게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근데 가만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또 못하겠더라고요. (웃음) 놀러 다니기 바빴죠. 대학로니. 맨날 친구들 전화 오면 (화실에서) 나가서 놀고. 화실 선생님이 맨날 붓이랑 이런 거 빨아서 정리하고 나면 그다음 날 오고. (웃음) 그때 느꼈던 게 ‘미술(작업)이라는 게 고행이구나. 앉아서 하루 종일 그려야 되는구나.’ (웃음) ‘야, 나는 이거는 아니다.’ 미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업으로 삼는 건 아닌 거 같다고 느끼면서 즐기기만 하게 된 거 같아요.

그런 걸 보면 희한한 것 같아요. 우리 집 누구도 미술 쪽에 직업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쨌든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중학교 때부터 혼자 게르니카전을 보러 덕수궁에 갔다는 게. 어떻게 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꼭 항상 미술잡지 같은 거 보고 사진 같은 걸 보고. 그렇게 내가 항상 뭔가 미술 쪽에 관련된 걸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다가 그러던 차에 이걸 발견하게 된 거죠.      


도슨트를 해보니 어떠셨어요.

고: 미술 관련된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일 거라는 생각을 갖고 왔는데 그게 어긋나지 않았던 거죠. 그러니까 (해보니) 실망할 수도 있는데 실망하지 않았던 거죠. 작품을 해설한다는 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죠. 부담스러운 일인데 나는 그걸 그냥 즐겨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담만 가지고 할 수는 없고요. 이게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하다가 너무 부담스러우면 못할 수도 있는 일이고요. 근데 내가 즐기면서 하고 나한테 도움이 되니까 하는 거죠.

나는 작품을 아는 것도 좋고 그 작가들, 작가들의 생애를 아는 것도 너무 좋고 그 작품이 주는 느낌이라는 게 좋아요. 내게 힐링이 돼요. 그러니까 그 작품을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그걸 떠나서 작품이 주는 힐링이 있어요. 내가 어떤 작가와 작품을 알고 또 그걸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타인들과 나눈다는 것에서 힐링 같은 것이 오고요. 그리고 성취감. 어려운 일, 부담스러운 일을 했을 때의 성취감 같은 것도 있어요.

(생각하며) 근데 나는 아마 힐링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내가 미술을 직접적으로 전공한 사람이나 화가 같은 사람은 아닐지언정, 어쨌든 이렇게 간접적으로 그리고 폭넓게 감상하고 그것을 타인과 나눌 수 있다는 게 이걸 계속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도 십여 년이 넘는 긴 시간 활동을 꾸준히 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이렇게 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얼까요.

고: 일단은 (자원봉사이다 보니) 각자의 힘든 사정이 있고 빠져야 되는 순간도 있죠. 그런 것들이 다 있지만 그렇게 빠지고 빠지다 보면 점점 안 하게 되는 쪽으로 가잖아요. 그걸 방지하고자, 재작년 비엔날레도 (직장 스케줄상) 참여를 못하는 거였는데 한 번밖에 설명을 못 하더라도 참여했어요. 전시설명을 몇 번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번을 하더라도 그 전시설명을 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있잖아요. 전시장을 계속 방문해야 되고. 이런 것들이 나한테는 이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부분들이죠.

내가 이걸 좋아서 한 거잖아요. 내가 어쨌든 싫어질 때까지는, 아마도 싫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심각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서든 참여하려고 하는 내 마음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번 (전시) 같은 경우도 지금 일도 많고 그렇지만 그냥 아이 뭐 어떻게 되겠지 뭐 (웃음) 그러고 일단 시작을 했죠.

사실 속 편히 이것만 올인해서 하고 싶은 생각도 정말 많이 들지만 (웃음) 그게 안 되는 상황이어도 어떻게든지 하려고 하는 게 있고. 오히려 약간 상황이 힘들거나 어렵고 무기력한 상황에서 나를 좀 업할 수 있는 그런 걸로 작용을 하는 거 같다는 생각도 있어요. 힘들어서 못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힘들 때일수록 이게 활력이 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 기수 (시립미술관 도슨트) 4기가 몇 명 활동을 안 하고 있어서요, 오래된 사람들이고 그니까 약간의 의무감도 있어요. 예를 들어 일 년에 전시가 몇 번 열리면 최소한 몇 번은 참여를 하고 싶다는 약간의 의무감.      


그럼 거꾸로 질문을 해도 될까요? 도슨트 활동을 하면서 자괴감을 느꼈던 적 혹시 있으세요. 예를 들면, 싫다거나 하고 싶지 않다고 느끼셨던 적이라든가.

고: 없어요.      


한 번도요?

고: 네. 없어요. 근데 자괴감이 아니라 왜 했나 후회하는 때는 있어요. 매 전시 첫 도슨팅 전날. (웃음) 이건 다른 도슨트 선생님들과도 이야기하는데 ‘첫 설명 신드롬’이라고요. (웃음) 전시가 시작되고 도슨트 설명을 처음 시작할 때, 진짜 너-무 떨리거든요. (웃음) 내가 이렇게 부담스러운 걸 왜 한다고 그랬지, 하고 후회하죠.      


직장인으로서 도슨트 활동을 병행하시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들을 들으며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으셨겠구나 짐작을 하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계속해서 해나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도슨트로서의 활동을 지켜오셨다고 하셨어요. 도슨트 활동이 선생님의 삶에서 어떤 의미이기에 그렇게 지켜오셨을까요.

(생각하며) 내가 딱 느낀 게 뭐였냐면요. 직업은, 음,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쪽으로 선택해서 가는 게 맞긴 하지만, 좋아서 일을 시작했더라도,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로 인해서 마지못해 다니게 될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면 상사와의 불화라든가 조직에서의 갈등이라든가. 사실은 무엇보다도 생계이기 때문에 함부로 그만둘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좋든 싫든 마지못해서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이 도슨트라는 활동이, 이 자원봉사가 엄청나게 소중해요. 더 부각이 되는 게 뭐냐면, 내가 돈을 받지 않잖아요. (자원봉사자에게 지급하는 실비는) 실제로 교통비로 쓰기에도 너무나 적은 돈이잖아요. (웃음)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어떻게 보면 생계 때문에 하는 비참함이 있어요. (웃음) 더럽고 치사해도 돈 때문에 견뎌야 하는 비참함이 있는데, 그걸 상쇄시켜줘요. 이 도슨트가.

내가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투자해서 자원봉사를 하는 거란 말이죠. 돈을 받지 않고도 나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자원봉사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자부심이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받지 않는데 일을 왜 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내 친구들도 그래요. ‘그거 하면 돈이 나오냐 뭐가 나오냐, 그걸 왜 해?’ 이런 식으로요. 그니까 자기 시간을 투자하면 항상 돈을 받아야 된다는 게 이 사회에서는 굉장히 뿌리 깊은 생각인데, 돈을 받지 않는 자원봉사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기쁨을 느낄 수 있고 내가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이 되는 거 같아요. 돈이랑 상관없이 말이죠.



* 도슨트(docent)란 전시해설로 관람객의 감상을 돕는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도슨트는 전시의 기획의도에 따라 관람객을 이끌고 전시실을 돌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해설을 하는데 이때 작품에 대한 단순한 정보전달뿐 아니라 작가의 삶이나 기법적인 특징, 사회문화적인 배경 등 풍부한 맥락을 함께 전함으로써 관람객이 작품을 좀 더 잘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1907년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서 제도로 시작되고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광주비엔날레를 기점으로 도슨트 제도가 유입되었다. 미술관은 우리나라 법에서도 밝히고 있듯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한 곳”이지만 대중예술에 비해 미술전시의 관람률은 높지 않다. 미술관도 이를 인식하고 관람객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도슨트 제도는 그 일환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에서 대부분 자원봉사로서 도슨트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특히 시립미술관은 2003년부터 ‘도슨트 양성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도슨트 제도를 운영해온 모범사례로 꼽힌다.

** 본 인터뷰는 2018년 석사논문을 위한 질적 연구에서 도슨트 활동에 관한 약 6개월 간의 참여관찰과 심층 인터뷰의 내용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도슨트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본인의 논문 “미술관 도슨트의 역할 갈등에 관한 문화기술적 사례연구”를 참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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