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에서 모았던 티켓들은 이미 너무 오래되어 붙여두었던 테잎의 색깔이 누렇게 변해있었다. 여행 전에 얼치기로 익혔던 끼릴문자도 기억에 거의 남아있질 않아 더듬거리며 읽어내려간다. 그래도 낯선 글자와 낯선 풍경들이 툭툭 흐린 기억을 뚫고 나온다. 상트에서 스케치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불멸의 피아니스트'가 상트에 오면 반드시 봐야한다며 나를 떠밀어 침대에 눕다 말고 나가 보았던 네바강의 야경. 세시간 남짓의 어둠 속에서 열리던 다리. 여전히 강변에서 여름을 즐기는 왁자지껄한 사람들을 뒤로 하고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이미 동이 트고 있던 하늘. 바다 건너 핀란드가 있다며 잠깐이면 다녀올 수 있다고 유혹하던 현지 여행사들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핀란드만. 그 앞의 노천카페에서 마셨던 맥주와 샤슬릭. 신나게 러시아민요를 부르며 맥주잔을 부딪히던 러시아 아저씨들. 일렉트로치카를 타고 다녀왔던 푸쉬킨시, 파블롭스크. 고개를 들어 쳐다보면서도 높이를 가늠할 수 없었던 울창한 나무들 사이를 거닐며 핥았던 아이스크림. 부드럽고 달콤하던 그 맛, 금세 녹아내려 아쉽게 하던 그 맛이 그곳의 풍경들과, 상트와 겹쳐진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겪었던 경험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그 독특함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 맛과 냄새와 질감. 그 순간의 빛깔과 소리와 분위기. 그 특별함을 또 다시 기대하고 새롭게 경험하기를 꿈꾸게 한다. 또 다른 여행을 떠나든 일상을 여행처럼 보내든 매 순간이 특별하게 그리고 소중하게 보내기를 바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