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 moon song Nov 16. 2022

죽을 때까지 생각할 것 같아요.

<우리는 왜 예술을>인터뷰4-(1): 청년기획자 임재환

<우리는 왜 예술을> 

청년기획자/예술가 임재환



우리는 왜 예술을 경험하는가라는 질문에 도슨트선생님들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하고자 하는 이들은 청년기획자들이다. 예술작품들이 대중을 만나기 위해서는 전시나 공연, 행사와 같은 매개의 장이 필요하고 이는 기획자들의 기획을 통해 이뤄진다. 어떤 작품들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에게 선보일 것인지, 허공에 떠 있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끌어내리는 것부터 인스타의 피드에 홍보 문구를 작성하는 것까지 무엇 하나 기획자들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게 없다. 기획자들은 예술을 마주하는 향유자인 대중의 시선 너머에 혹은 뒤꼍에 존재하지만, 누구보다도 향유자와 창작자의 입장을 이해하고자 하는 그리하여 예술을 더욱 잘 알리고자 하는, 그리하여 누구보다도 향유자와 창작자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람으로 삼는 이들이다.

특히 예술기획을 하는 청년기획자들의 경우, 노동강도나 분량에 비하며 절대적으로 낮은 임금에도 그리고 대다수의 기관이나 공모전 등에서 예술의 실행이나 상연 외에는 기획을 노동으로 산정해주지 않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자발적인 애정으로 뛰어드는 이들이다. 청년기획자들이 어째서 기획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즐거워하고 또 보람을 느끼게 되었는지,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예술이 누군가의 일상을 혹은 태도를 나아가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확인하곤 했다. 그들의 절절한 이야기와 함께 예술이 우리의 삶과 그리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혹 여러분도 이 글을 계기로 예술과 관련된 작업들에 관심을 갖게 될지도 또 발을 들이게 될지도 모르는 일.

첫 번째로 소개할 청년기획자 임재환은 미술을 전공하면서 사회참여예술에 눈을 뜨고 나아가 사회참여기획으로 작업을 확장한 예술기획자이다. 한 발 한 발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정을 다해 작업해온 그의 기획활동을 인터뷰하며 예술기획이 다양한 모습을 띨 수 있음을 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다른 이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었다.

* 인터뷰는 서울문화재단과 청년예술청 그리고 청년기획자플랫폼11111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하였던 "2020-2021년 청년기획자의 현실을 기록하다"라는 청년기획자 심층 인터뷰를 발췌 정리하고 서면인터뷰를 추가하여 보완한 것이다.





죽을 때까지 생각할 것 같아요.


기획자로서 자기소개를 한다면 어떻게 소개하시나요.

임재환: 활동을 어떻게 정의하냐고요? 사회참여 예술가든 사회참여 기획자든  다양한 사회 정치적인 이슈를 가지고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저 또한 참여하는 그런 기획을 하는 것 같네요. 짧게 이야기하자면.


재환님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셨다고 했는데 그 계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임재환: 저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한국 이슈에 느꼈던 낯섦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북한 미사일과 핵 실험이 계속되고 남북미 관계가 악화됨을 목격하고 있을 때, 예술가로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많은 질문을 하게 됐어요. 마침 예술교육 수업을 들으며 사회참여예술을 접하게 되었고 어린 시절 금강산 방문 경험 통해 북한 주민들을 만났던 기억이 있어 Humans of North Korea (HNK)라는 사회참여적 단체를 시작했어요. HNK는 2016년 말에 시작해 아직까지 유지해오고 있으며 사회참여 예술이 무엇인지, 운영 시 유의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현재 미술사/미술 실기 박사 과정을 통해 더 깊이 접하고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실제로 그걸 활동으로 이어가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거든요. 예를 들면, 금강산을 간 사람들이 다 그런 작업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재환님은 무엇 때문에 그와 관련해서 기획 작업을 하게 되었나요. 혹은 어째서 하고 싶었나요.

임재환: 맞아요. 음. (생각) 내가 왜 이렇게 했나 다시 생각을 해보면 … 저는 사람을 일단 모으는 게 목표인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참여예술, 사회 참여적인 예술을 (학교에서) 배울 때도 그렇고, 북한 문제가 이슈화 되었을 때도 그렇고, 저의 기억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그 이슈에 대해서 나는 너무 궁금하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고 내 가족들이 살고 있는 한반도가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그거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 거예요. 예술 학교이다 보니까. 그리고 한국인 교수가 없었고, 한국인 학생들이 있더라도 너무 부유층 자녀들 정치인 딸, 아들 이렇게 있다 보니까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하는 존재들인 거죠. 그 꺼려하는 존재들 사이에 ‘나는 그럼 나와 맞는 커뮤니티를 어떻게 찾지?’  하다가 그냥 사람들과 어떻게 모이지를 먼저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또 때마침 그 이탈 주민을 돕는다는 Emancipate North Koreans (ENoK)이라는 단체가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고, 그래서 먼저 접근을 했고 또 이제 북한에 대해서 알아보고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보다 보니까 다 강연을 통해 관련 정보가 전달되고 있는 거예요. 그때는 보수 정권이었고, 오바마 정권이다 보니까 다 심포지엄, 강연, 아니면 TED 토크에서 본인의 경험을 얘기하거나 북한을 비판하거나 하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는 그 나라와 사람들에 대해 다들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전문가든 역사학자든 아니면 이탈주민 자신이든. 일단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 좀 다르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플랫폼도 한 번 만들어보고, 1대 1로 워크숍도 하면서 같이 좀 친해지기도 하고, 개인적인 관계도 쌓고, 뭐 그러면서 기획의 폭을 넓게 경험을 했던 케이스인 것 같아요.


첫 번째로 기획했던 게 어떤 작업이었나요?

임재환: HNK 단체를 시작하고 ENoK의 이탈주민분들과 주변에 있었던 시카고 대학교 내 미술관 방문하고 북한 식 만두 빚는 시간을 가졌어요. 참여해주신 이탈주민분들이 고향에서 드시던 방식의 오이김치와 부침개도 해주셨고 미술관에선 저와 HNK 팀 동료들이 가지고 있던 미술 관련 지식을 공유했습니다. 그러면서 ENoK이 평소에 하듯 영어 교육과 과외 시간도 가졌고요. 탑다운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소통적인 시간을 가져서 더 의미가 컸던 시간들 같아요.


그 작업에서 무엇이 그렇게 좋았나요. 혹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줬나요.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갈 만큼.

임재환: 일단 타국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만났다는 게 제일 크기도 했고 같은 한반도에서 태평양 너머 미국 땅까지 건너왔지만 개개인이 다 다른 이유로 왔다는 게 신기했던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앞으로의 미래를 모른 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이었지만 ENoK의 북한이탈주민분들도 새로운 삶을 살고 정착하기 위해 미국에 건너왔기에 더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현재도 분단된 한반도의 여파로 인해 다양한 정착을 경험하고 있는 그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지 질문하며 HNK 활동 중입니다.


음. 인상적이네요. 본인이 갖게 된 어떤 호기심, 재미 이런 게 되게 주요하게 작용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 자체는 쉽지 않거든요. 그러고 나서 지금까지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하고 있잖아요. 계속하게 되는 동력이 뭐가 있을까요? 여전히 재미가 있는 건가요?

임재환: 저는 북한 이슈에 대한 생각이 되게 다양하게 변했다고 할까요. 이 활동을 하면서 저는 교육의 시간으로 생각했거든요. 저 자신을 교육하는. 기획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베네핏을 주기도 하지만 저 자신도 배울 수 있는 시간이라 그 시간들을 통해서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인권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나중에는 점차 한반도 평화로 넘어왔고 LA로 넘어오고 나서부터는 더욱더 그쪽 커뮤니티와 많이 교류가 있었고, 특히 좀 외로운 시기에 활동가로 활동하시던 미국으로 넘어오신 분이 계셔서 그 분과 그분의 선배들, 미국에서 활동하시는 어머니, 아버지뻘 세대 분들과 지금도 (교류)하고 있는데요.

약간 영감을 받는다고 할까요? 계속 원동력을 쌓고, 인맥도 잇고, 북한 갔다 오신 다양한 분들과의 인맥도 쌓게 되고 그 단체에서 운영하고 진행하는 기획 같은 걸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영감을 받고 내가 나중에 또 어떻게 기획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 같아요.

처음 제 단체를 운영을 할 때는 그거를 잃을 거에 대한 두려움이 되게 많았는데 반대로 그거를 좀 어느 정도 놓고 나서 활동을 하다 보니까 그거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내가 실험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열어놓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나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또는 협력하는 사람들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는 내 위치에서, 어느 정도  단체에서도, 기획을 하면 되니까’라는 생각으로 계속 활동을 하고 있고, 그래서 좀 마음 편하게 공부도 하면서 기획을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일단은 저는 특히 정치적인 거에 있어서는 통일이 되든 안되든 그 이후의 이슈에 대해서도 제가 죽을 때까지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이 이슈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면.


 


이전 10화 편협함, 완고하게 굳어가는 것들을 깨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