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일상실험: 실천을 위한 팁
1. 일단 시작하겠다고 했는데
옷을 줄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니 입지 않을 옷을 골라야 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무얼? 머릿속에서 버퍼링이 일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편이었다. 매일 같은 옷보다는 오히려 매일 다른 옷을 선택하는 걸 즐겼고 믹스매치를 사랑했다. 언니들이 주는 옷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도 나와는 다른 취향을 가진 언니들의 스타일이 반영된 옷들을 새로운 착장으로 활용하는 데에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구제도 마찬가지였다. 독특하고 과감한, 혹은 내가 본 적 없거나 시도해보지 못한 스타일들을 탐색하고 그걸 다시 나에게 맞게 재해석해보는 게 재미있었다.
쓰다 보니 나는 옷장에서조차 큐레이션을 하는 직업을 못 속이는 인간이었, 어쨌든 내가 가진 옷들은 큐레이션이 가능한 다양한 재료인 셈이라 줄이는 것 자체에 저항감이 일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옷을 새로 산 것도 아닌데 이것도 과한 거라고 해야 해? 약간의 억울함마저 더해졌다.
2. 기준이 필요해 : 취사선택의 기준
다시금 스스로에게 현실을 디밀어야 했다. 그래 봤자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이미 내 옷은 그 공간을 꽉 채우다 못해 제대로 볼 수 없게 막고 있었다. 재료가 많다고 해서 늘 모든 걸 활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각각의 옷을 보고 고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옷더미로 인식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보고 고를 수도 없다. 분명히 줄여야 했다. 그럼 다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그렇다. 기준이 필요했다. 내 저항감과 억울함을 고려해서, 합리화겠지만, 미니드레스룸에 들어가서 옷을 고를 수 있는 정도의 공간적 여유를 첫 번째 그리고 최소한의 기준으로 정했다.
공간을 기준으로 두고 나니 공간을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는 겨울 외투들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마음을 굳게 먹고 입었을 때 불편한 옷, 다른 옷과 스타일이 겹치고 활용도가 떨어져서 굳이 갖고 있을 필요가 없는 옷, 가장 적게 손이 갔던 옷을 골라냈다. 두껍고 따뜻하지만 무거운 소재에 탈부착 조끼까지 더해져 오래 입으면 어깨가 아프곤 하던 오리털코트, 갖고 있는 구제 무스탕과 스타일이 비슷하지만 인조가죽 인조 퍼로 무게에 비해 추위를 막아주는 기능이 떨어지는 인조 무스탕, 작고 얇아 활용도가 떨어지는 크림 화이트 토끼털 모피코트, 슬림한 핏에 얇은 소재로 초겨울에만 입을 수 있는 코발트블루 모직코트, 역시 슬림한 핏에 얇은 소재로 한겨울에 입기 어렵지만 폭스 퍼가 덧대인 얼어 죽으라는 것인가 싶은 한겨울 정장용 코트.
3. 기준이 필요해: 정리 방법의 기준
정리할 다섯 벌은 사진을 찍어 당근에 올렸다. 모두 퀄리티도 훌륭했고 대부분 브랜드의 옷이었고 소재도 디자인도 마감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렇다, 나는 적어도 질이 좋지 않은 옷은 애초에 입지도 않기에 이걸 버린다는 상상은 할 수도 없었다. 얼마나 금액을 책정해야 할지 고민에 잠시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대로 옷 수거함으로 직행하는 것보다는 판매를 해보고 그 이후에 나눔을 하든 기증을 하든 택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진과 글을 올리는 족족 하트를 누르긴 했지만 옷을 사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일주일, 이 주일쯤 지나자 인기 있는 상품을 재판매하거나 요즘 스타일의 상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고는 중고는 괜찮은 값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섯 벌이 거실 한가운데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거슬림을 피할 수도 없었다. 옷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보내고 약간의 보상도 받고 싶었는데 이 마음도 결국은 욕심인가 싶었다.
다시금 현실 직시를 할 차례. 판매자가 아니라 구매자의 입장에서 누구든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좀 더 좋은 물건을 갖고 싶어 하고 특히나 새 옷이 아니라 누군가가 입던 옷을 제값을 주고 사고 싶어 하진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새삼 이 옷들도, 당근에 올라온 수많은 옷들도, 매일같이 광고창으로 등장하는 옷들도 그 어마어마한 양과 거기에 쓴 혹은 쓰게 될 금액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충분히 입지 않고 공간을 차지하고만 있는 옷들에 쓰이는 돈, 공간과 시간이 아까웠다. 더는 시간도 공간도 그리고 나의 에너지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정리 방법에도 기준이 필요했다.
나는 더는 고민하지 않고 임의로 기준을 정하기로 했다. 12월 말까지 가격을 낮춰보고 12월 말에 아름다운 가게나 구세군 매장에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다.
4. 한 걸음 더 : 미니멀한 옷장을 위한 참고자료
다섯 벌을 꺼냈더니 내부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들어가서 옷을 꺼낼 수는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은 미니드레스룸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게 옷을 둘러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좀 더 정리가 필요했다. 이렇게 적으면서도 웃기지만 좀 더 정리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는 게 여전히 너무나 어렵다.
저항감이 만만치 않은 작업에 다른 이들의 기준을 참고하며 도움을 얻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방식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나 지난 몇 년간 미니멀리스트들의 책이 쏟아져 나온 덕에 이미 여러 차례 읽어보긴 했지만. 참고를 하거나 팁을 얻은 적은 있었어도 구체적인 실행에 도움을 얻어보려 한 적은 없었다. 대충은 알고 있다고 여겼던 미니멀리즘을 새삼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미니멀리스트들의 노하우를 소개하는 다양한 홈페이지, 또 그걸 실천해본 이들의 리뷰, 역시 자신의 팁을 전하는 영상들, 도서들을 찾았다.
그 와중에 가장 마음을 움직인 구절은, 더 많이 소유한다고 해서 더 나아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단순하고 당연한 말이고 독립을 하고 혼자 나만의 가정을 꾸려오며 절실히 느낀 말임에도 어째서 옷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나 자신에게도 의문이 일었고, 그 의문을 외면하고 그대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듣고 보고 읽어 내려가면서 미니멀리즘을 권유하는 이들도 나와 같은 고민들을 했음을 생각보다 공감이 되고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조언들이 많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들의 질문과 제안에 호기심으로라도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옷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나에게 쓸모없는 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고 덜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공유하고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아래는 내가 참고하고 있는 미니멀리즘에 관한, 미니멀리스트들의 이야기이다.
*옷으로 시작하는 미니멀리스트 챌린지
도서 <딱 1년만 옷 안사고 살아보기>, 임다혜: 굉장히 현실적이고 유쾌한 일 년간의 옷 안 사기 프로젝트를 기록한 블로그 글을 모아서 낸 책이다. 친구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 이야기 같기도 한 친근함이 포인트. 편안한 마음으로 공감하면서 읽고 또 나 역시 할 수 있겠다는 격려도 받는 기분.
도서 <프로젝트 333> 코트니 카버: bemorewithless홈페이지에서 다양한 팁을 얻을 수 있다.
유튜버 라이크 스위트 망고의 미니멀 라이프 시리즈 영상: 유튜브에서 미니멀리스트, 캡슐 옷장을 검색하면 나오는 다양한 유튜버들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솔직하면서도 꾸준하게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추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옷을 적게 입는 게 즐거움과 멋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영상들. 더불어 옷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서도 미니멀한 일상에 대한 팁을 공유한다. 문제는 디지털 중독도 끊어보자고 권유하지만 유튜브라 이걸 보면 이미 디지털을 끊지 못하게 되는 딜레마 상황에 처한다는 것.
*미니멀리즘이 제한보다는 자유를 위한 것임을 보여주는 미니멀리스트들
전자책 <미니멀리스트 룰 16>: 미니멀리스트 닷컴 theminimalists.com홈페이지에서 구독을 신청하면 미니멀리즘과 미니멀리스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고 시작을 위한 간단한 안내서인 전자책을 무료로 얻을 수 있다.
*일상을 점검하고 미니멀한 습관을 만드는데 도와주는 책
도서 <나는 꼭 필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 내 삶이 가벼워지는 21일 프로젝트>, 조안 타탐
옷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일과, 삶의 방식을 점검해보면서 필요 없는 것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워크북 형식. 옷뿐만 아니라 실제로 내가 과잉으로 혹은 불만족스럽게 여기는 것들이 무언가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