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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Dec 19. 2022

1년짜리 약속:
미니멀옷장 만들기 장기전략

"의"식주일상실험


1. 굳이 더 미니멀한 옷장을 만들어야 할까?

일단 한숨을 돌리고 나자 굳이 더 줄여야 하나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이만하면 남들에 비해 옷을 적게 갖고 있는 편인데. 그렇지, 우리 언니들은 적어도 내 미니드레스룸의 두 배 이상이 되는 공간에 아마도 옷은 세 배 이상은 족히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대로 두고 슬금슬금 옷을 늘릴 리다가 다시 무슨 옷이 있는지 보지도 못하게 만들 셈이니? 지킬박사와 하이드급으로 치열한 토론 중이 나를 진정시킨 건 <프로젝트 333>의 구절들이었다.

'평균적으로 여성은 한 번도 입지 않을 옷을 구매하는데 550달러를 소비한다. ' 소비의 천국, 미국의 기준 아니고? '매년 세계에서 소비되는 의류는 800억 벌이고 버려진 의류 가운데 95%는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이 가능하다.' 음, 정말이라면 심각하긴 하네, 그래도 나는 옷을 일 년에 한 두벌 살 뿐이고 옷도 대부분 10년 이상 입는데? '80퍼센트가 자기 소유 옷 가운데 20퍼센트만 입는다.' 흠. 20퍼센트? 그럼 80퍼센트를 안 입는다고? 설마, 사실일까? 한국 자료도 있을 것 같아서 찾아보았다. 있다. 그것도 최근의 자료가.

다시입다연구소의 2022년 보고_다시입다연구소 홈페이지

한국에서 옷장 속에 안 입는 옷의 평균 비율은 21퍼센트였다. 훨씬 설득력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양인 건 맞았다.

새삼 숫자 앞에서 자문자답이 이어졌다. 나는 그것보다는 내가 가진 옷들을 더 많이 활용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 그러고보니 내가 주로 입는 옷과 잘 입지 않는 옷이 무언지 의식을 해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들을 얼마나 입고 있지? 분명한 건 100퍼센트는 아니다. 90퍼센트도 아닌 것 같고…, 나는 점점 나 자신이 의심스러워졌다. '입으면 기분이 좋아지는가? 즐겨 입는가?' 입을 때 확실히 기분이 좋아지는 옷들이 있지만 모든 옷이 그런 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옷이 그러지 않은 것 같다. '옷장 속에 있는 수백 가지 아이템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은 충분히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이다. 의사결정 피로는 실재하는 개념이다. 선택지가 많으면 의사결정의 질은 떨어진다.'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100퍼센트 맞는 말이었다. 많은 옷들 속에서 선택 장애를 일으키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아침마다 혹은 일이 있어 옷에 신경을 써야 할 때 옷이 많으면 옷을 고르는 시간이 길어지고 선택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도 많아진다는 것도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있었다. 더 이상 나 자신과 갑론을박할 필요가 없었다.



2. 나만의 미니멀 옷장 챌린지: 1년간 얼마나 옷장을 줄일 수 있나 실험하기

나는 내게 잘 어울리고 입을 때마다 즐거운 옷으로만 채운 미니멀한 옷장을 가지고 싶었다. 옷장을 늘리지 않고 유지해나가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참에 더 가볍고 즐겁게 사는 쪽으로 한 걸음 더 옮기고 싶었다. 

내 죽일 놈의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다. '~을 하는 건 미친 짓일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용감하고 호기심 넘치는 모든 사람들에게.라는 책의 첫 페이지에 적힌 글귀에 마음이 설렜고 <프로젝트333>을 시작으로 절대로 안될 것 같던 일들을 도전하게 된 저자의 여정에 기대가 일었다. 나도 해볼 수 있을까? 내 삶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일단은 나도 나만의 챌린지를 해보는 건 어떨까.

그래, 해보지 뭐.  <프로젝트333> 저자가 제안하는 3개월간 33벌까지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지금 걸려있는 겨울옷부터 3개월간 몇 벌까지 줄일 수 있는지 그리고 다음 봄여름가을까지 실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3. 옷 정리, 과거가 모여 보여주는 현재를 정돈하기

조금 더 도움을 받고자 책을 계속 읽어나가다 어째서 저자가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되었다고 했는지 어렴풋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현재의 옷장을 평가하고 어떤 아이템을 선택해야 할지 고를 때 떠올려보라는 질문들, 그러니까 챌린지를 시작하기 전에 떠올려야 할 질문들이 실마리였다. '가장 좋아하는 옷 3가지는 무엇인가.' '당신이 절대 입지 않을 옷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아직도 옷장에 보관 중인가.' '쇼핑을 하고 싶다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사고 싶다는 욕구가 솟을 때는 언제인가.' '지난 십 년간 옷, 주얼리, 액세서리, 신발을 구매하는데 들인 비용을 대략적으로 계산해보자. 그 돈이 수중에 있다면 다시 이 물건들을 구매하겠는가. 아니면 다른 아이템을 구매하겠는가. 아니면 완전히 다른 데에 돈을 쓰겠는가.'

그러니까 내 옷들은 옷은 내 생각과 감정 그리고 경험의 집합체였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그 자체로 나의 과거가 모여 보여주는 나의 현재이기도 했다. 그러니 가지고 있는 옷을 정리한다는 건, 혹은 옷을 줄인다는 건 절대로 하루 날 잡아서 정리하는 것으로 끝나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매일 옷을 고를 때마다 또 고른 옷을 입고 활동할 때에도 내가 좋아하는 옷인지, 나에게 어울리는지 또 다른 옷들과도 어울리는지 의식적인 점검이 필요한 일이었다. 매일같이 관심을 기울이고 경험해보고 또 회고하며 성찰하고 다시 새롭게 얻은 아이디어를 적용해보는 그러니까 매일같이 작은 실험이 이루어지는 장기간의 실험프로젝트인 셈이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좀 더 알아가는 일이었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이 잘 어울리는지 내 일과에 필요한 것 혹은 도움이 되는 건 무엇인지, 무엇을 시도하고 싶은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큼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4. 1년간 옷줄이기 실험을 위한 몇 가지 규칙

1년간의 옷 줄이기 실험을 스스로에게 약속하는 차원에서 몇 가지 규칙을 세웠다. 처음 옷을 줄이기 시작했을 때의 저항감과 막막함을 이미 겪어보니 기준을 정하는 것이 고민을 덜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프로젝트333>과 다른 미니멀리스트들의 캡슐 옷장 노하우들을 참고해 내가 꼭 지켜야겠다 싶은 것들을 추려보았다.


첫 번째로 1년 동안 옷사지 않기. 새로운 옷, 주얼리, 액세서리, 신발은 사지 않기로 했다. 속옷이나 잠옷, 기능성 운동복과 같은 옷이 구멍 나거나 해져서 못 입게 됐을 경우, 한 켤레만 있는 운동화나 구두와 같이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 닳거나 망가져서 다시 쓸 수 없게 되었을 경우에는 그것을 대체하는 것을 사는 것은 제외. 솔직히 별로 걱정되진 않았다. 새로운 물건을 사는 데에 신중한 나로서는 올해에도 무언가를 산 기억이 거의 없었다. 디자인과 소재, 바느질이나 마감의 품질, 가격을 다 살펴보고 몇 번이고 고민하다가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한 새로이 물건을 늘리지 않는 편이었다.


두 번째로 활용하지 못하는 옷 줄이기. 1차로는 미니드레스룸에 드나드는 것이 불편해지지 않을 때까지. 다음으로는 겨울을 지나는 동안 활용하지 못하는 옷 더 이상 옷장에 두지 않고 정리하기. 이미 한차례 정리했기에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정리할 수 있는 세부적인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었기에 역시 다른 미니멀리스트들의 기준을 참고 삼아 정해나가기로 했다. 우선은 '현재 내 몸에 맞지 않는 옷들', '선물 받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는 옷들',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옷들', '슬프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옷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이나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없었다.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는 혹은 개성이 과한 옷들은 있었지만 나는 그 옷들을 여러 아이템과 믹스 매치해서 일상에서도 입는 걸 즐기곤 했다. 내가 가진 옷들은 이미 참고하려 했던 기준들을 통과한 것들이었기에 굳이 정리할 필요가 없었다. 흠. 그런데 왜 모든 옷이 입고 싶은 옷, 좋아하는 옷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거지?

나는 거꾸로 해보기로 했다. 옷을 사라고 부추기는 기준들을 거꾸로 옷을 덜어내는 기준으로 활용해보는 것이다. 나에게 어울리는 컬러와 재질, 디자인이 아닌 것들을 덜어내고 나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들에게 보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에게 어울리지 않거나 입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옷이 아닌 것들을 활용해보려고 애쓰기보다는 가장 잘 어울리는 옷들로만 채운 기분 좋은 옷장을 만들기로 했다.


세 번째로 좋아하는 옷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재미를 찾아보기. 매일 아침 옷을 고를 때 가장 마음에 드는 옷들, 손이 가는 옷들, 즐겨 입는 컬러와 스타일의 옷들 입기. 현재 미니드레스룸에 걸려있는 옷들을 백화점 매장에 걸려있는 옷들이라고 생각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옷들을 골라서 그 옷들끼리 다양하게 매치해보기. 스타일링을 소개하는 이미지/영상/책들을 참고해서 항상 입던 방식으로 입는 것 외에 다양한 매치 방식을 시도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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