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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Jun 26. 2023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나가는

<우리는 왜 예술을>인터뷰9-(3): 전시제작자 윤재혁



<우리는 왜 예술을> 인터뷰:

전시제작자 윤재혁


  



Q : 지금까지 해오신 다양한 작업은 각각 공간, 브랜드, 전시물이라는 소재는 달랐더라도 결국 그것을 어떻게 기획하고 또 표현해서 그것을 접하는 이들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획/제작이라는 측면에서 연장선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기획자이자 제작자로서 현재하고 계신 일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일은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한 영역을 가지고 있습니다저처럼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설계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각종 첨단 기기와 도구를 동원해 현장을 실측하고 복원하는 일그리고 조소나 공예와 같이 직접 손과 도구를 이용해 무엇인가를 조각하고 만들어 내는 일유물의 형태와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재해석하여 현대적인 기법과 소재를 통해 복제복원하는 일효율적인 전시를 위해 그래픽사인전시대 등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일 등앞서 말씀드린 도자기편 전시의 경우 3일 동안 진행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학예사 선생님께서 이게 바로 공예다!”라고 말씀하신 기억도 있습니다전시 및 모형제작과 관련된 일은 쉽게 말하자면하나의 공예품 공방과도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일이 가진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많은 분야의 업무가 반복되는 패턴과 루틴을 가지고 진행됩니다그렇기 때문에 경력과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의 업무에 대한 도전 의식과 새로움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제가 하는 일은 늘 새로운 콘텐츠를 새로운 공간에 적용하고 역시 새로운 관객과 소통하는 일입니다늘 새로운 도전이고 늘 새로운 성과를 위해 노력하는 일이기도 하지요또 한편으로는 전시의 완성을 위해서는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전문가들과 협업을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이들 전문가와의 협업은 언제나 만족감과 함께 놀라움을 주기도 하며일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Q : ‘공예품 공방’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네요. 계속해서 작업의 사례들이나 과정을 들으면서 더더욱 전시의 기획과 제작은 창작작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금 더 나가자면, 전시는 해외에서는 그 자체가 이미 예술적인 창작작업으로 인정을 받는 경우들도 있는데요. 전시를 기획과 제작하는 제작자로서 본인의 작업 역시 그와 같은 관점으로 접근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획과 제작에서 예술창작작업으로 고려하시는 부분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전시 기획과 제작은 예술창작작업이기도 한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한 것 같습니다제가 방금 이 일이 가지는 두 가지 매력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요우선 이 일이 항상 새로운 도전이 있어야 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예술창작작업의 영역에 일정 부분 예술창작작업의 영역에 속해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자신의 정체성을 토대로 늘 새로움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예술적인 특성이 분명한 직업이 맞습니다그리고 두 번째로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이 협업은 꽤 잘 조직된 프로세스와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집니다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일은 산업적 특성이 강한 측면이 동시에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제조업이 연상되는 산업적 측면만을 전적으로 강조하기에는 다소 다른 측면이 존재하기도 합니다이 일의 수행을 위한 공동작업은 일반적인 산업의 분업 체계를 따른다고 하기보다는 각자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토대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움직이는 바우하우스식 협업 체계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다양한 관점과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목표를 위해 협업하는 곳이 바로 전시 분야이기 때문입니다이 직업의 특징은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협업을 요구하는 분야라는 겁니다개인적으로 본인의 해석과 주관을 바탕으로 대상에 접근하고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는 다양한 분야와 폭넓게 협업해야 하기 때문이죠

       

Q : 제작자로서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현재 준비하고 계시는 작업이 있다면 무언지 궁금합니다.  

제가 준비하고 있는 계획이라고 말씀드리기엔 너무 거창할 것 같네요그냥 제가 최근 들어서 자주 하는 생각이나 고민을 말씀드리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불과 몇 년 전부터 전시 분야에서 영상물의 비중이 매우 증가하였습니다영상을 통한 전시는 전시 스토리를 강화하고 전시 콘텐츠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기 때문에 점점 더 그 쓰임새가 확대되는 추세입니다게다가 최근 VR(가상현실)이나 AI(인공지능)와 같은 기술적 요인이 영상 부분과 결합하여 급속하게 증대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제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전시는 콘텐츠와 공간이 함께 결합한 색다른 경험을 전달해 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을 통한 전시는 간접 경험에 의존하게 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해외의 박물관 또는 도서관 등에서 고민하는 서비스 디자인에 대해서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전시 기획이나 제작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사람들이 그 콘텐츠로 다가가는 방법을 달리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경험 요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서비스 디자인적인 접근방법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같은 의미에서 서울공예박물관이 시각 장애인을 고려한 촉각 체험 요소를 도입한 것은 좋은 사례입니다누구에게나 쉽고 의미 있는 전시가 될 수 있도록 체험 방법을 고민하고공간에 스토리텔링을 접목한 접근 방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저와 같은 전시 분야 종사자가 앞으로 지속해서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람들에게 좋은 전시로 기억되는 것은 좋은 스토리텔링을 가진 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저는 전시의 기획설계제작홍보운영 등 전 과정에 걸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녹여낼 수 있는 프로세스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Q : 지금까지 제작자로서 기획과 제작 자체에 대해 여쭤보았는데, 혹 제작자로서 제작환경이나 사회에 바라는 게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어 내는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전시 분야도 문화예술을 누리고자 하는 대중이 존재해야 관련 산업이 유지되고 확장될 수 있습니다반대로 누군가는 좋은 전시 기획을 지속해서 만들어 내야만 일반 대중이 전시장이나 박물관을 찾게 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그렇게 본다면 이 둘의 관계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게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 콘텐츠가 범람하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중 여러분께서 좀 더 좋은 문화예술의 향유를 위해 전시장이나 박물관을 더욱 많이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스포츠 경기에서 만원 관객이 꽉 들어찬 직관 경기를 수행하는 선수들의 경기력이 월등히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듯이전시장이나 박물관을 찾아주시는 관람객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좋은 전시 기회는 더욱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아울러 저와 같이 전시 기획이나 제작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도 모든 프로젝트마다 좋은 전시를 위해 애쓰고 계시지만전시 산업 전체의 발전과 확장을 위해서 한 번 더 고민하고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길 당부드립니다    

      

Q : 제작자로서 제작하신 전시를 접하는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더불어 관람객으로 감상할 때의 팁을 이야기해 주신다면.     

전시를 관람한다는 것은 어떤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전시를 어떻게 관람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좋은 전시란 사람들이 그들만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고 그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감동을 찾을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전시장이나 박물관은 학예사나 기획자에 의해 설정된 전시 동선과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하지만 이런 동선과 스토리라인에 공감하고 따를지 말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관람객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모든 관람객이 일단 전시장에 입장하고 나면 반드시 전시 동선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을 마쳐야만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반면에 제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단지 반가사유상만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다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전시장을 찾는 것 또한 누구에게나 권할만한 좋은 전시 관람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일단 박물관이나 전시장을 찾게 된다면 공간과 함께 어우러진 전시의 흐름을 이해하고 각각의 유물이나 전시품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의 구성이나 크기에 따라 내 마음을 움직여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전시 기획이라는 것은 반드시 이렇게 보아야만 합니다.’라는 강요가 아니라 이렇게 보면 좋겠습니다.’라는 권유를 담고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공간 속에 여러 가지 기법을 통해 반영된 기획자의 의도를 하나씩 읽어가면서 나의 이야기와 맞춰가는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Q : 제작자로서 이루고 싶으신 꿈이 있으시다면 무엇인지, 제작자로서의 계획 외에도 다른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지유문화는 전시 모형제작 전문회사입니다전시 분야에 모형이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원본이 너무도 귀해서 대중에게 직접 내보이기 어려울 때 복제 모형을 만듭니다또 거북선처럼 이미 소실되어서 더는 유물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복원 모형을 만듭니다유물이 가진 의미와 특징을 더욱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 체험을 위한 모형을 만들기도 합니다저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모형제작은 모두 보존의 필요성과 전시의 요구 간의 간격이 컸을 때 발생하게 됩니다

기술의 발전과 노하우의 축적 등으로 인해 복제 유물과 원본 유물을 맨눈으로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습니다하지만 원본 유물의 보존을 위해 복제 유물 또는 모형으로 대체하는 프로세스는 이미 오래된 방식이며이는 오로지 관람객의 시각적 정보 전달만을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하지만 사람의 경험은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되며그 감각이 복합적일수록 전달되는 정보의 가치는 크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좀 더 복합적이고 새로운 방법을 통해 전시 관람자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전달하는 전시 프로세스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최근 웹툰이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단순히 다른 매체를 통해 익숙한 스토리가 전달된다는 이유뿐만은 아닙니다그것은 영화관을 찾아 영화를 관람하는 경험 디자인적 요소와 오감을 자극하는 4D 상영그리고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마케팅과 캐릭터 상품 개발 등 복합적인 프로세스가 접목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근에 전시제작뿐만 아니라 그림책과 관련한 다수의 문화 기획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바 있습니다그림책의 스토리를 통해 영상음악무용과 체험 요소가 접목된 일종의 공연 프로그램입니다그림책을 단순히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책으로 생각했던 관람객들이 공연이 끝난 뒤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됩니다그렇게 본다면 중요한 것은 경험이고기획자가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저는 장르와 공간시간감각의 제약을 넘어서는 콘텐츠를 만들어서 대중과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는 기회를 지속해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이를 위해 새로운 분야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또 한편으로는 대중의 관심사를 지속해서 관찰하는 것은 이 일을 하는 저에게 여전히 큰 즐거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 우리는 왜 예술을 경험-창작하고 매개하고 감상-하려 하는가. 

질문에 답을 찾으며 세 번째로 소개하고자 하는 이들은 예술 분야의 제작자들이다. 스마트폰으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술이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예술 분야의 제작자들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도록 지평을 넓혀온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작자 중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윤재혁 실장은 지유문화의 실장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 및 전시 콘텐츠 제작을 담당하는 이다. 서울무형문화재 장인들의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난 윤재혁 실장은 장인들의 작품을 제대로 관람객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공간과 배치를 바탕으로 조명해야 함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작품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담긴 장인의 손길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공간과 조형적인 배치를 고려해 전시를 완성하는 모습은 언제나 인상적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예술을 매개하는 작업으로 예술의 저변을 넓히고 또 그 자체로 예술작업의 저변을 넓혀온 과정에서, 다시 한번 우리는 왜 예술을 만들고 공유하고 또 누리는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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