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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Jun 12. 2023

관람객의 손을 잡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즐거움

<우리는 왜 예술을>인터뷰9-(2): 전시제작자 윤재혁

<우리는 왜 예술을> 인터뷰

전시제작자 윤재혁

  


Q : 전시 분야의 제작자로서 본인이 맡은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관람객으로 전시를 접하는, 그러니까 전시제작의 결과물을 보시는 분들은 전시제작이 많은 이들의 협업과 고민을 거쳐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전시공간에 가서 전시를 둘러보시면 금방 아시겠지만멋진 전시공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사람의 지혜와 경험그리고 노력이 모여야만 하죠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말씀드리기 전에 이 많은 사람의 노력 속에 저의 작업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해 드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먼저 전시를 위해서는 박물관 학예사 선생님들이 역할이 중요합니다전시되는 유물 또는 전시품에 대한 역사적사회적 의미와 정보를 모두 파악하고 이것이 실제 전시되는 데까지 필요한 모든 프로세스에 대해 검토해서 전시에 대한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학예사 선생님들의 일입니다

대부분 일반적인 기업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디자인 혁신에 대해 생각할 때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곤 하죠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만 하면 되므로 매우 쉬운 접근이라고 하겠습니다하지만 이렇게 되면 제품군을 통해 그 집단의 정체성이 구현되기는 매우 어렵고각 제품마다 차별화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혁신적인 집단은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는 첫 단계로 왜 하는가?’에 대해 먼저 고민한다고 합니다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면 무엇을 만들던지 항상 같은 방향을 지향하게 된다는 것이죠.

전시에 있어서 학예사 선생님들이 하시는 역할이 바로 왜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역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저와 같은 사람은그 방향에 따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수행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저는 항상 발주처즉 전시를 만들어 내는 분의 의도를 이해하고 이를 대중즉 관람객의 기대와 요구에 맞게 어떻게 연결하고 확장할지를 고민하는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합니다          


Q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업의 예를 들어주신다면,      

서울공예박물관 전시실에 있는 나전경함과 관련한 작업으로 예를 들어 말씀드릴게요서울공예박물관 조성사업 초기에 학예사 선생님들은 우리나라 공예품 중에서도 유물적 가치나 아름다움에 있어서 손에 꼽힐만한 유물 중에 나전경함이라는 유물에 집중했습니다전시장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이 나전경함은 과연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예술적기술적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입니다학예사 선생님들은 단순히 유리장에 이 유물을 넣어서 보여주기보다는 방문자들이 직접 손으로 만져보게 함으로써 그 놀라운 디테일과 문양을 직접 느껴보도록 한다는 방향을 세웠죠


저는 학예사 선생님들의 이와 같은 놀랄만한 아이디어와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유물의 상태와 규격문양들을 실측하고그 결과를 토대로 일단 제 컴퓨터에 유물을 각종 형태의 데이터로 구축하게 됩니다거기까지는 기술적인 실측디자인설계의 과정이었다면그다음부터는 인문적인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비록 복제된 것이지만 직접 유물에 손을 대보고시각뿐만이 아니라 촉각청각 등으로 유물과 만난다는 생소한 접근이 방문자에게 어떤 경험으로 전달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똑같은 유물이라도 접근 방법을 달리한다는 점에 있어서 이와 같은 과정은 어찌 보면 서비스 디자인의 한 분야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나전경함의 모형에서 방문자에게 나전경함 문양의 완벽함그리고 손으로도 겨우 느껴질 만큼의 미세한 표현력을 중심으로 보여주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그리고 고성능 3D Printer를 이용해서 복제하기로 했습니다그다음부터는 매 순간이 선택의 순간이죠놀랍게도 이 세상 어떤 3D Printer로도 나전경함을 만들어 낸 우리 조상 장인들의 손끝 감각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따라서 나전경함의 문양 데이터를 모두 CAD 파일로 다시 작성하고현재의 3D Printer 기술력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점까지 생략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이 눈으로 보면서 손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 장애인이 오로지 손끝의 감각만 가지고 나전경함 문양의 형태뿐만 아니라 온전한 의미를 감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이를 위해 세 개의 레이어를 설정하고 큰 주제가 되는 문양그 주제를 도와주는 조연과 같은 문양그리고 배경이 되는 문양으로 구분하여 각각 0.2mm의 간격으로 적층하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있는 형태 그대로를 스캔한 데이터를 그대로 프린트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 공예품의 디테일은 정교하기 때문에형태나 문양을 이해하고 이를 다시 재구성하는 것은 마치 스토리텔링과 같은 작업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물의 복제 또는 복원 작업이 완료되면 그다음에는 전시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지금부터의 과정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UX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관람자가 접근하는 동선과 과정에 대해 생각하고전시장 평면 내에서 해당 유물이 점하는 의미에 따라 전시 방법을 검토하고관람 및 체험 방법에 따른 디스플레이 방법을 고민합니다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를 한 장의 도면에 담아내는 작업에 들어가게 되죠. 이 작업을 우리는 제작 도면을 작성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일단 오류가 없는 제작 도면이 완성되면 그때부터는 각 분야의 제작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하나의 전시 Zone이 완성되게 됩니다여기까지가 제가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Q : 이야기해 주신 제작과정에서 새삼 지금까지 거쳐오신 다양한 분야의 일들이 현재의 제작작업에 꼭 필요한 경험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각적인 이해와 브랜딩에 대한 이해, 제작과정 및 방법에 대한 이해까지 폭넓은 고려와 더불어 깊이 있는 섬세한 접근에서 작업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도 느껴지는 만큼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겠구나 하는 짐작도 듭니다. 작업과정에서 가장 힘들었거나 어려웠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는지 궁금해집니다.     

직업으로 하는 일은 늘 힘들거나 속상합니다. (웃음아마도 예상하신 답변은 예상한 결과에 도달하지 못했을 경우또는 윗사람이나 발주처로부터 험한 말을 들었을 때 정도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하지만 그렇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박물관의 전시라고 하는 것은 강연이나 프레젠테이션과는 다릅니다전시유물이나 전시 모형의 의미와 제작과정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한 명 한 명씩 붙잡고 강의하듯 안내할 수 없기 때문이죠오히려 좋은 전시는 많은 부분을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가장 깊숙한 곳에 모나리자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마찬가지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가장 깊숙한 곳에 반가사유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최근에는 특별전의 형태로 반가사유상이 특별전시실로 행차하긴 하셨지만 (웃음반가사유상이 원래 모셔져 있던 곳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장 깊숙한 곳이었습니다저는 이 공간을 너무 좋아합니다특별한 설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다만 반가사유상의 시선이 내려앉은 곳에 작은 의자가 하나 있을 뿐입니다저는 그 의자에 앉아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이런 것이야말로 정말 좋은 전시라고 생각합니다사람들에게 유물과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과 경험을 주기 때문이죠.

제가 작업했던 서울공예박물관의 사례를 들어 말씀드리면공예박물관의 역사관 중 도편즉 도자기의 파편들이 전시된 공간이 있습니다이곳 또한 큰 노력과 수고와 고민이 담긴 공간이죠도자기가 가진 본연의 색감을 방문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박물관으로서는 파격적으로 자연채광이 되는 창문을 설치하였고도자기가 가지는 수백수만 가지의 색감을 직접 감상할 수 있도록 수백 개의 도편을 한 개 한 개씩 노출된 벽면에 부착하여 전시하는 고난도의 작업이었습니다저는 원래 똥손(?)이라 실제 디스플레이 작업 등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 편입니다만이 작업을 위해서는 저뿐만 아니라 다른 협력업체 직원과 공예박물관 학예사 선생님들까지 총출동하여 3일 밤낮의 철야 작업을 통해 완성한 전시공간입니다

하지만 저희 욕심이 너무 지나쳤던 것일까요박물관의 개관과 함께 많은 사람이 이 코너를 찾아서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유물 가까이 모여들었고심지어 손으로 잡아 흔들어 보는 경우도 발생하고지나가면서 옷이나 얼굴 등에 부딪히는 경우도 발생하였습니다저희는 수차례에 걸쳐서 보강작업을 진행하고박물관 측에서도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보아 달라는 안내 문구를 부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결국 아크릴 케이스로 전체 유물을 보호하는 장치를 하게 되었습니다반가사유상이 모셔진 공간과 같이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요애초 작업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해야 할 때가 어찌 보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Q : 그렇다면, 기뻤던 혹은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도 궁금해지네요.      

기쁘거나 행복한 순간은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물론 하나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매우 기쁘고 행복합니다얼마 전 공예박물관 전시를 담당하시는 학예사 선생님으로부터 이제는 그만 오셔도 되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참 기쁘고 행복했습니다더불어 저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다른 일반인은 불가능한 시간 여행이 가능할 때가 있어요학예사 선생님들에게는 일상과 같은 일이겠지만 저희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박물관의 수장고에 자주 들어가게 됩니다박물관 수장고는 박물관 속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공간이죠어찌 보면 전시공간에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유물보다 훨씬 아름답고 멋진 유물들이 수장고의 깊숙한 공간에 모셔져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다른 전시 기획과 관련하여 국립진주박물관 수장고를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유물을 복제복원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원본 유물을 관찰하고 실측하기 위한 방문이었죠이날 실측은 대부분 고문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그중 조선 초기 문서에서 눈에 익은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바로 까마득한 제 조상님의 이름이었고지금 저보다 젊은 나이였을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그분이 이 문서가 적히던 그 순간에 그곳에 계셨다는 생각을 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서는 바로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문서였습니다워낙 중요도가 높은 유물이라 조심스럽게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다른 페이지와는 조금 다른 페이지를 발견했습니다낙서 같기도 하고 뭔가 기록한 것 같기도 한 페이지가 눈에 띄어서 담당 학예사 선생님께 이 페이지의 정체에 관해 물어보았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순신 장군께서 본인의 사인 (수결)을 연습한 흔적이라는 것이었죠영웅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순신 장군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경이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문이라는 단어를 뜻도 모르고 많이 쓰는데 그 뜻에 담긴 의미는 앞서도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람이 그리는 무늬라고 합니다작업의 과정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를 통해 과거로부터 현재 사람들이 그려내는 무늬와 같은 것과 다른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분 좋고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Q : 말씀해 주신 순간들이 듣고 있는 제게도 저절로 그려지는데요. 외람되지만 모두가 그와 같은 경험들 속에서 경이로움과 기쁨을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웃음) 아마 그와 같은 성향이 전시 제작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 바탕이 된 게 아닌가 짐작하게 됩니다. 본인이 경험한 것과 같은 기쁨과 행복을 제작자로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을 엿보게 되고요. 한 걸음 나가 묻는다면, 시간을 초월한 문화예술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시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저는 문화예술과 관련된 콘텐츠를 대중들과 연결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앞서서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제가 다루고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 또한 누군가가 열심히 공을 들여서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 낸 결과물들이라는 점이 저에게 남다른 의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비록 제가 만든 콘텐츠는 아니라고 하더라도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콘텐츠를 소개한다는 것은 마치 내가 그린 그림을 누군가에게 선보이는 것과 같은 설렘이 느껴지기도 합니다예를 들자면 조금 다른 분야이긴 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경우를 보면 수백 년 전에 작곡된 곡을 현대의 어느 연주가가 연주하는가에 따라 매우 다른 음악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연주자는 원곡의 악보를 바꿀 수는 없지만자신만의 감성과 기교로 음악을 새롭게 해석해 내고 이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게 됩니다유능한 연주자란 사람들에게 익숙한 원곡의 흐름에 낯설게도 느껴질 수 있는 자신만의 색을 입히는 작업에 능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만약 관객이 이런 작은 변화를 눈치채고 곧바로 반응한다면 연주자의 기쁨과 몰입은 최고조에 달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몸담은 전시 기획과 제작의 분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시간을 초월한 문화예술을 전시로 풀어내는 작업은 현대 관람객의 손을 잡고 과거로 함께 여행을 떠나는 작업인 동시에과거의 원작자를 전시장으로 소환하여 관객과 대화하게 하는 즐거운 작업입니다제가 느끼는 즐거움의 원천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왜 예술을 경험-창작하고 매개하고 감상-하려 하는가. 

질문에 답을 찾으며 세 번째로 소개하고자 하는 이들은 예술 분야의 제작자들이다. 스마트폰으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술이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예술 분야의 제작자들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도록 지평을 넓혀온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작자 중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윤재혁 실장은 지유문화의 실장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 및 전시 콘텐츠 제작을 담당하는 이다. 서울무형문화재 장인들의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난 윤재혁 실장은 장인들의 작품을 제대로 관람객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공간과 배치를 바탕으로 조명해야 함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작품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담긴 장인의 손길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공간과 조형적인 배치를 고려해 전시를 완성하는 모습은 언제나 인상적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예술을 매개하는 작업으로 예술의 저변을 넓히고 또 그 자체로 예술작업의 저변을 넓혀온 과정에서, 다시 한번 우리는 왜 예술을 만들고 공유하고 또 누리는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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