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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Apr 23. 2023

세상이 놓친 가능성을 디자인하는

<우리는 왜 예술을>인터뷰8-(2): 공연/행사제작자 목민우

<우리는 왜 예술을> 인터뷰

공연/행사제작자 목민우

  




세상이 놓친 가능성을 디자인하는


B.I.라는 제작사를 설립하시고 어떠셨어요. ‘세상에 놓친 가능성을 디자인한다’는 슬로건이 음악을 바탕으로 소위 대중적인 메인 스트림만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들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제작자로서의 관점이 엿보이는데요. 회사를 만들고 실제로 기획을 하시거나 행사를 택할 때도 계속 그와 같은 마음으로 작업을 하셨겠네요. 

목민우: 그전에는 프리랜서로서 살았지 공연 기획자나 제작사로서 전반을 책임지는 역할로 선택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고요. 회사의 사업자를 내면서부터 약간 허세 섞이게 (웃음) ‘너네는 그런 회사지’라고 제안받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여정에 있었을 때는 (생각하며 웃음) 그냥 바빴죠. 바빴는데 회사의 대표라는 건 예산을 쓰는 자리잖아요. 예산을 쓰는 자리이기 때문에 집행을 하면서 내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네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기쁨들이 있었죠. 그런데 그 바쁜 순간에 겪게 되는 애로사항과 힘듦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내가 이 회사를 차렸나라는 고민이 계속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고서 그 시절을 돌아보면 혼란스럽긴 했지만 남의 일을 하면서 내가 성장하고 배웠던 기회가 있었던 거잖아요. 지금은 그건 여전히 기회였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철없는 낭만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내 제작물을 내고 싶다는 거대한 포부에도 그러려면 내가 내 돈을 들여서 리스크를 짊어져가면서 뭔가를 배팅을 했었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나 자신이 되게 작게 느껴지던 시절이 그때 있었죠. 자괴감 같은 거요. 내가 대행업체로 행사를 하려고 제작사를 했나라고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나한테 최선이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성향 자체가 진지하게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기획을 하다 보니 저를 찾는 사람들은, 무대나 행사 제작을 맡기는 갑이 되겠죠, 원청사들 중에서도 그걸 이해해 줄 만한 가치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저를 계속 찾게 된 거죠. 기업들이 그냥 단순한 연말 행사 혹은 공연무대 올려달라고 할 때는 저한테 컨택이 안 와요. 저한테 그 기능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그들의 성향이 안 맞았겠죠. 서로가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잖아요. 그렇다 보니 저처럼 어떤 가치를 붙들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가치를 추구하는 비영리나 이런 쪽 사람들을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됐죠.     


B.I.가 진행했던  일상소리연구  프로젝트 묘:
서울혁신파크 리빙랩 공모사업으로 서울시 10개구 32개장소, 60여개 스토리를 만났던 프로젝트
삶의 현장을 채우는 소리들을 채집, 아카이빙, 전시, 공연으로 제작했다.


제작자로서, 혹은 제작사 B.I. 가 추구했던 가치에 호응하고 또 B.I.를 찾았던 원청사들이 갖고 있었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요. 간략히 표현하자면.

목민우: 다른 목소리라고 할까요. 단체의 목적성이 성공과 자본에 있지 않은, 또 다른 가치가 우선시 되는 단체나 프로젝트들이었죠. 비영리 단체들은 비영리인 이유가 있잖아요. 그들이 돈을 벌려고 그 단체를 운영하지 않는다면 영리기업이 똑같이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제작기획을 위해서 만났을 때 ‘난 이런 걸 (행사에) 담고 싶어’라고 얘기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래서 B.I.가 포럼이나 컨퍼런스 기획을 더 많이 하게 되었어요. 컨퍼런스 같은 경우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진행이 되잖아요. 예를 들면 컨퍼런스마다 타이틀이 있고 타이틀 자체가 주는 메시지가 있죠. 기억나는 것 중에서 제가 되게 좋아했던 건 ‘삶의 재구성’이라는 국제 컨퍼런스인데 3년 동안 시즌 3까지 지속됐어요. 그때 아시아권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많은 참여자들이 초청되어 왔는데 쉽게 말해 삶을 구성하는 구조와 체제를 있는 그대로 따르기보다 내 삶을 나 스스로 구성하자’는 것이었어요. 그러려면 일단 기존의 것들을 해체 후 구성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도전들을 주는 컨퍼런스였죠. 


청년혀브 국제컨퍼런스 시즌3 '삶의 재구성'
B.I.가 진행한 서울시 미래혁신포럼, 서울이노베이션로드 등의 국제 행사들

그런 걸 예를 들면 행사에 또 다른 목적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 컨퍼런스 행사에서는 ‘잘했어. 멋있었어.’ 이상의 뭔가, 도전이나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메시지들이 들어가야 되는 데 그러면 행사가 무거워지기 쉬워요. 그러기 위한 영상을 만들거나 그러기 위한 무대나 가수들의 공연을 제작해서 ‘축하 공연합니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메시지를 의미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과 어떻게 프로젝트를 만들어내야 하는가를 고려하는 것이 조금 더 무겁고 복잡한 프로세스였던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앞서 말한 프로젝트에 음악공연제작 분야 지인을 초대했는데 그때 저한테 ‘이거 왜 하는 거예요? 이거 하면 돈 벌어요?’ 그런 질문을 던지더라고요. (웃음) 보통 기업 행사들은 목적이 분명해요. 홍보. ‘(우리 걸) 많이 알려줘’라는 목적을 갖고 요구하는 퍼포먼스가 분명하거든요. 근데 비영리 사람들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서 요구하는 퍼포먼스가 분명하지 않아요. 그래서 원래 제가 가장 먼저 정리부터 하는 성향이기도 한데 B.I.를 찾아온 비영리분야의 원청사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막연한 꿈을 가지고 던져주면 그래서 ‘그게 뭔데’하고 압축시켜서 정돈하고 그걸 전략으로 스케줄을 구성하고 예산 안에서 펼쳐놨을 때 잡아야 할 것들과 포기할 것들을 정리해 내는 게 제 역할이었죠.      


일종의 구체화를 하셨네요. B.I.라는 제작사에 찾아와서 제작을 해달라 혹은 행사를 해달라 맡아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결국 자신들이 추구하는 어떤 사회적인 가치를 문화예술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해달라라는 요청을 했고, 그들이 막연하게 이야기하는 것들을 B.I.가 행사와 무대, 공연 등을 통해서 감각적으로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구조화하고 구체화해 주는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목민우: 보통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단체나 그런 것들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사실 인생에 그게 녹아 있잖아요. 직장인이 자기 인생을 직장일에 막 걸진 않는데 그 영역의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걸면서 자기한테 너무 중요한 걸 얘기하잖아요. 물론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클릭이 되지 않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그냥 어떤 일을 마지 못해 대행해서 하는 용역은 아니었죠.      



B.I.가 진행한 '바다의 날',  경희대학교 평화콘서트 등 행사사진

제작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예술 창작자로서의 자세를 갖고 있었다고 여겨지는데요.

목민우: 맞아요. 그러고 싶었죠. (웃음) 그래서 지금 돌아봤을 때 후회되는 지점은 없어요. 과정 속에 있을 때는 이게 최선인가 생각했죠. 근데 시간이 또 지나니까 그게 최선이었구나를 받아들이고 있는 삶인 것 같고.      


덧붙이자면, 서리풀페스티벌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제가 공연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다섯 군데에서 4일간 120회의 공연을 선보이는 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목민우: 그런 규모의 퍼포먼스를 내는 대행사들은 그런 일을 늘 해요. 어떻게 다르게 하느냐가 차이가 있는 거죠. 사실 버스킹 공연은 길바닥에 스피커 한 통 놓으면 끝나거든요. 근데 저희는 그렇게는 안 했죠. 

재밌는 사례가 있어요. (웃음) 예를 들어 어떤 아티스트를 섭외해서 라이브 무대를 세우는데 개런티가 100만 원이에요. 100만 원인 아티스트를 어떤 경우에는 ‘죄송한데 이번에 제작비가 없어요.’ 그러면서 70만 원에서 섭외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섭외가 되면 제작사는 한 번 70으로 내려간 아티스트는 70으로 줘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제작사는 특히 더 그러거든요. (쳐다보며) 70을 줘도 되는데 다시 150을 주는 기획사가 있을까요. 저희도 100만 원으로 저희가 계속 불렀던 친숙한 아티스트가 있었어요. 제작비가 부족할 때는 항상 부탁해서 7080을 줬죠. 근데 어느 순간 저희가 150을 준 적이 있어요. 왜냐면 그때에는 드릴 수 있는 예산이었으니까요. ‘늘 그동안 못 드렸던 게 죄송해서 드렸어요.’ 그랬더니 깜짝 놀라면서 ‘그런 기획사가 없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저희도 돈이 많아서 그러는 건 아니잖아요. 아까 저희 회사 슬로건 ‘세상에 놓친 가능성’으로 말하면, 자본주의 안에서라도 내 예술을 선보이는 행위에 더해 시간을 파는 행위가 늘 70만 원짜리 100만 원짜리라고 정할 수 있겠어요. 물론 그 가치는 대중이 예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매겨지죠. 그대로 값이 매겨지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고집들이 철없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저는 회사를 그렇게 운영했어요. 그래서 ‘B.I.가 부르면 가야죠’ 이런 이야기를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들었던 적도 있었죠.      


인상적이네요. 그 연장선상에서 제작자로서 회사를 운영하면서 기억나는 가장 뿌듯했던 혹은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목민우: (생각하며) 한 3년 이상 지났을 때 ‘B.I.가 하면 달라’라고 생각해 주었던 것. 그 ‘달라’가 잘한다는 건 기본이겠죠. 못하면 안 되는 거니까. 일을 잘한다는 것에 더해서 두 가지로 나눠본다면 ‘B.I는 이래서 달라’라는 피드백을 들었을 때, 다른 하나는 같이 협력했을 때.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우리가 얘기하는 대로 따르길 원하는데 우리가 여기까지 생각했다면 B.I.는 ‘그다음에 이런 생각까지 하지. 자기 것처럼 해준다’라고. 그들이 말하는 가치에 대해서 비아이는 객관화시켜서 보고 한 번 더 발전시켰던 거죠. 필터링을 하거나 해서 B.I.의 방식으로 충분히 고민해 작업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는 그런 반응들. B.I.의 구체적인 제작 과정을 쪼지 않고 기다려 준다거나 우리가 용역사 주제에 갑(원청사)에게 원청사가 제시하는 기획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이거 아닌 것 같아요’라고 얘기해도 그 의견을 주의 깊게 들어준다거나. 그러니까 서로 간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내 결정에 대해서 믿고 본인들의 계획을 수정해 주는 순간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동료들 같은 경우는, (떠올리며) 일을 하다 보면 무대, 조명, 영상팀 등 각각의 팀들이 있잖아요. 제가 제작사 대표로서 전체적인 눈으로 각 파트를 보아야 할 때 하드웨어 팀들 각각의 팀들을 단지 돈으로 컨트롤하지 않고 동료로서 해오려고 노력했던 것들이 정말 동료가 되는 순간들로 다가왔을 때요. 우리 (전체 연출) 파트의 어려움에 다른 파트 감독들이 솔선수범에서 먼저 해결해 주는 경험들. 예를 들어, 어떤 순간 우리가 세팅 시간에 뭔가 맞추지 못해서 문제가 생겼는데 영상팀이랑 무대 팀은 세팅이 끝났고요. 그런데 본인 일처럼 뛰어와서 해결을 해 주고 가던 순간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어요. 저희 회사와 되게 친한 옆 회사인데 우리 파트너를 소개해 줬는데, 이것도 돈으로 얘기할게요. (웃음) ‘B.I는 80만 원 줘도 오는데 우리가 견적을 물었더니 200만 원 부르더라. 되게 섭섭해.’ 그럴 때 그 친구들이 ‘아니, 개랑 너랑 같아.’라고 얘기했대요. 돈으로 거래하지 않는 어떤 팀워크를 갖는 것. 

아까 얘기한 부분이긴 한데, 같이 하는 작업에 비용을 보지 않고 뛰어들어 준 거죠. 제가 제작자로서 감당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은 있지만 거기까지는 보장을 해도 그다음은 불투명한 영역이 있잖아요. 불투명한 영역에 대해서까지 확신을 가지고 계약서로 서로를 제약하지 않아도 그냥 서로 믿는 거예요. 좀 당황스럽긴 했던 게 늘 계약서부터 쓰는 문화가 제 기억에 2018년부터 생겼긴 것 같은데요. (웃음) 저희는 계약서 안 써도 잘 돌아간다는 것,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이 자랑이었는데 어느 순간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인 것처럼 여겨져서 급히 우리도 써야 되겠구나 했던 기억이 나요. 

아까 말한 아티스트 비용이랑 비슷한데 거래 방식을 돈의 기준에 맞추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들이 우리는 힘겹게 그 순간순간 한 발씩 한 발씩 견뎌온 것들인데 같이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협력하는 파트너든 대중이 됐든 클라이언트가 됐든 ‘너네는 그렇지’라고 발견하고 인정해 주는 말들이 나올 때, 그럴 때 뿌듯했죠. 우리가 철학을 갖고서 힘들게 쌓아온 것들이 의미가 있구나. 지금은 또 그것도 흘러간 것 같지만. (웃음) 그 당시에는 그게 저희 회사가 가진 힘이고 경쟁력이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불렀을 때 ‘우리 팀이야’하고 쭉 데리고 들어와 일할 때 그 일 하는 문화가 드러나잖아요. 쉽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죠.      

아까 말씀하셨던 ‘세상의 놓친 가능성을 디자인한다’는 게 콘텐츠에서만이 아니라 제작 과정이나 방법에서도 적용되는 말이었군요. 협업을 하는 과정에서 동료들에게든 그 일을 맡긴 업체한테든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걸 기반으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는 노력. 이런 것들이 제작자로서 중요시하는 가치였는데,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이 제작사로서 회사의 수익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아니면 회사의 유지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았나요. 

목민우: 그렇죠. 아주 핵심적인 얘기죠. (웃음) 저희 내부 스태프들 직원들이 그런 얘기도 했던 게 기억이 나요. ‘이걸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요.’ 그래서 ‘이건 이런 이유 때문에 이렇게 가는 거다’라고 설득을 했더니 돌아오는 반응은 ‘그건 좋은데 받는 돈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시간과 노력을 들일 만한 일이냐’였어요. 각자의 철학이 충돌했던 거죠. 근데 생산성을 보면, 그러니까 되게 바빠 죽겠는 현장 직원의 입장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너무 맞죠. 

제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직원의 질문에 대해 계속 깊이 고민을 했던 순간들이 기억이 나는데. 내가 회사를 이렇게 운영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되는 질문이었어요. 나는 좋은 가치를 지켜온다고 한 건데 돈을 벌고 월급을 주는 회사라는 법인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것에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결과였던 거죠. 팬데믹 전에 제가 당당하게 외치고 다녔던 게 ‘그럼에도 난 견뎌냈고 지금 우리 이렇게 잘 되고 있잖아’였죠. 그게 저한테는 자랑이었어요. 근데 그 당시에는 잘 되고 있었지만 회사를 키워나가는 데에는 분명 그게 리스크가 되는 요소였죠. 코로나 팬데믹으로 회사를 정리하게 됐지만.      


지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신다는 건가요.

목민우: 그렇죠. 팬데믹 전에 회사가 잘 됐으니까. 근데 회사를 접기로 주저하지 않고 결정한 건 직원들의 관점이라는 그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었어요. 팬데믹이 결국 너무 길어져서 힘들긴 했지만 길어졌어도 계속 버틸 수도 있었는데, 버텨내고 나서 그다음에 어떤 것이 올까 생각했을 때 냉정하게 인정하게 된 것이 결국은 회사를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텐데 그와 부딪히는 나의 철학이라는 그 부분이 리스크 요소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럼 결국 자신이 만든 제작사를 접기로 결정하신 거군요. 마음이 어떠셨나요.

목민우: 회사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에요. 저는 대표로서 정리하긴 했지만. 회사는 지금 소소하게 일을 받아서 하고 있고 저는 지금 다른 일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고 다시 돌아와서 이 일을 확장시켜서 전처럼 하겠다는 의지는 없어요. 

2011년에 시작한 회사가 2023년까지 왔으니 이제 좀 시간이 흘렀죠. 지금의 시대적인 감각으로 봐서도 문화예술 분야에서 제작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제작비를 뛰어넘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제는 더 규모화됐고 더 기술적으로 전문화됐고 그만큼 비용이 투여되기 때문에 사이즈를 더 키워야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사업자들 많이 그런 얘기하잖아요, 규모를 축소하거나 확장하거나 하는 선택의 순간이 온다고. 근데 축소해서는 이 회사는 유지가 안 되겠다고 판단한 거죠. 그럼 확장을 택해야 되는데 확장할 때에는 돈에 그러니까 자본의 방점을 찍지 않고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판단은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부연하자면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행위가 너무나 중요한데, 저는 제 철학을 가지고 젊은 시절을 보냈잖아요. ‘내가 내 철학, 내 살아온 방식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규모를 키워서는 유지는 안 되겠다. 그러면 규모를 축소시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지켜온 제 방식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일단 프리랜서와 같은 작은 규모로 내가 내 할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그 싸움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

목민우는 비아이워크(BI Work) 대표로 음악 및 무대공연, 행사를 비롯한 문화예술컨텐츠를 제작하는 제작자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청년기획자플랫폼에서 만난 그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는, 만남이 벌어지는 현장 속에 있는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통해서 음향엔지니어에서 pd로 제작자로 저변을 넓혀가며 다양한 음악가들과 다양한 음악을 공연으로 또 다양한 문화예술콘텐츠를 통해서 늘 사람들에게 향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술가와 예술작업을 담는 작업으로 예술의 저변을 넓히고 또 그 자체로 예술작업의 저변을 넓혀온 제작자 목민우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우리는 왜 예술을 만들고 공유하고 또 항유하는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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