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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Apr 16. 2023

음악,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만한 게 있나?

<우리는 왜 예술을>인터뷰8-(1): 공연/행사제작자 목민우

<우리는 왜

<우리는 왜 예술을> 인터뷰

공연/행사제작자 목민우

   


* 우리는 왜 예술을 경험-창작하고 매개하고 감상-하려 하는가.

질문에 답을 찾으며 세 번째로 소개하는 이들은 예술 분야의 제작자들이다.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술이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예술 분야의 제작자들은 우리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도록 지평을 넓혀온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예술작품은 작가의 창작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작된다고 해야 한다. 사람들이 열광하든 철저히 외면하든 작품은 결국 사람들 속에 즉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 놓여야지만 비로소 작품으로서의 존재를 증명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이 없다면, 플랫폼 속에서 고를 다양한 작품들이라는 선택지도, 각각의 작품을 어떻게 선보일지 그 방법과 내용을 기획하는 일도, 심지어는 그 작품의 창작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특히나 음악 및 공연, 영상, 디자인과 같은 분야는 한 명의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거대한 협업의 과정에 가깝다. 제작자는 바로 그 협업의 과정 전체를 아울러 이끌고 보듬는다. 좋은 제작자는 원석과도 같은 작가 혹은 작품을 찾아내 독려하고 적합한 방법과 매체를 제시하기도 하고 나아가 작품을 다듬어나가는 과정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키를 잡고 이끌어 작품이 사람들 앞에 빛나는 모습으로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제작자 중에서 두 번째로 소개할 목민우는 비아이워크(BI Work) 대표로 음악 및 무대공연, 행사를 비롯한 문화예술컨텐츠를 제작하는 제작자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청년기획자플랫폼에서 만난 그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는, 만남이 벌어지는 현장 속에 있는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통해서 음향엔지니어에서 pd로 제작자로 저변을 넓혀가며 다양한 음악가들과 다양한 음악을 공연으로 또 다양한 문화예술컨텐츠를 통해서 늘 사람들에게 향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술가와 예술작업을 담는 작업으로 예술의 저변을 넓히고 또 그 자체로 예술작업의 저변을 넓혀온 제작자 목민우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우리는 왜 예술을 만들고 공유하고 또 항유하는가 생각해 본다.      



음악,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만한 게 있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목민우 : 안녕하세요.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에 서서 무대 위에 혹은 매체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는 것들을 제작하는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목민우라고 합니다.     


일을 처음 하시게 된 시작점은 무엇이었나요.

목민우 : 저는 음악 제작 쪽에서  사운드엔지니어링 역할로 녹음실과 프로덕션에서 일을 했어요. 하다 보니 각 영역별로 제한된 역할 의사결정에 한계를 느껴서 결국은 기획 파트로 넘어왔고 또 기획을 하다 보니 제작을 관여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필요를 느껴서 넘어왔습니다.

그러니까 시작점은 음악 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럼 음악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웃음) 왜 음악이었을까요. 많은 것들 중에서.

목민우: 음악 관련 계통에서 일을 시작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좋아서 시작하는 거 같아요. 제가 꿈을 꿨던 10대나 20대 초반의 경우에는 매체가 굉장히 단순했기 때문에 직업군도 단순했고 (그냥 좋아서 하는 것들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거나 이렇게 갈려 있었어요. 세분화되어 있지 않았고. 저는 그중에서도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을 좀 취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라디오를 듣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되게 좋은 음악의 감명을 받으면 작가나 아티스트에 대해서 생각하잖아요. 단순하게 생각나는 걸 음악으로 만들었을 뿐인데 라디오 방송을 타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요즘 세대에는 실제로 그 작가를 만나보면 작품과 그 사람은 다르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과거에 그걸 모를 만한 철없는 시절에 막연하게 음악 만들고 그런 영향력을 가지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 같아요.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글을 쓸 건가를 잠깐 생각을 해봤던 것 같은데 아니다, 음악을 만들자 이쪽으로 갔던 것 같아요.     


음악의 어떤 게 좋았던 걸까요.

목민우: 너무 많죠. 너무 많은데, (생각하며) 이건 이유가 없이 그냥 타고난 감성의 코드인 것 같아요. 글로서는 전달 안 되는 게 음악으로는 표현할 수 있고 내가 공감할 수 있겠다, 불태울 수 있겠다,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라디오 방송을 타고 들어가는 거나 내가 선택해서 구매한 음반을 통해 듣는 거나 아니면 무대 위 퍼포먼스에서 현장감 있게 전달되는 것도 다 너무너무 다르잖아요. 그리고 녹음실 안에서 한 테이크를 2시간 내내 (더 좋은 걸 녹음하려고) 노래하고 연주하는 걸 경험하는 그 순간에도 그냥 다 너무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걸 딱 뽑아서 말하긴 그렇지만, 매력을 느낀 걸 좀 얘기하자면, 각자가 알아서 해석하고 알아서 감동한다는 것 그리고 옆자리에서 같은 공연을 봐도 옆자리에 나란히 서 있는 사람들과 감동이 다 다르다는 지점에서 매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확장해서 표현하자면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만한 게 있나, 동일한 시간에 동일하게 접해도 다 다른 감정과 느낌으로 완성되는 것이 음악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으로 제작을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으로 시작하신 건가요.

목민우 : 일단 녹음 기술을 배웠죠. 엔지니어링을 대학에서 복수 전공했고 (녹음실에서) 밤새고 녹음하고 했는데 이제 그 경험에서는 배우게 된 게 협업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쉽게 얘기하면 이런 게 내보낼 수 있는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웃음) 어떤 작곡가로부터는 멜로디만 와요. 그런데 악보도 제대로 못 쓰는 작곡가가 좋은 멜로디를 써오면 그걸 정말 훌륭한 콘텐츠로 만드는 건 편곡자고 세션들이죠. 악보 한 장 스코어링도 다 짜오는 작곡가도 있지만 다 짜온다고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과정에서 어떤 경우에는 각 악기 파트 세션들이 완성하는 것들도 존재하고, 뭐라 그럴까, 드라마에서 애드리브이라고 표현하는, 현장에서 아티스트가 표현해 내는 것들에서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들도 있고. 그런 다양한 것들로 완성되는 과정들을 녹음실에서 배운 거죠.

아이돌 음악처럼 산업화 속에 깊이 들어갈수록 더 정해진 룰이 있죠. 소위 공장에서 찍어내는 과정. 이렇게 하면 좋은 작품이 있고 이런 사람과 만들면 이런 게 있다고들 하는데 저는 그 공장에 들어가서 일하는 엔지니어로서 기술을 익히는 거 외에도 협업 과정, (아직 아이돌 산업처럼) 시스템화되기 이전에 어떤 협업에서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좀 많이 훔쳐봤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 이후로 음악을 해서 뭔가 제작을 하겠다는 후배들한테 다른 거 필요 없고 녹음실부터 들어가 이런 얘기를 또 한참 했어요. 농담으로 엔지니어는 반칙이야. (웃음) 왜 그러냐면 작곡가부터 각 파트 세션들이 움직이는 역동성을 지켜보면서 훔쳐보면서 성장하기에 되게 좋은 포지션이에요. 그런 협업 과정에 중심에 있던 것들을 발견해서 그 역할을 좀 영리하게 활용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단지 엔지니어로서 사람들이 날 찾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중간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구심점이 되어 좀 주도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녹음실의 한계를 느꼈어요. (녹음실 안에서 작업을 해도 녹음실 밖에서) 결정하는 역할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고 (녹음실 엔지니어라는) 테크니션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겠다. ‘그럼 뭘 할 수 있을까’ 해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야’가 기획이었어요. 음악 하던 사람이 기획을 해봤자 얼마나 하겠어요. 그러니까 공연 기획을 하게 된 거죠. 자연스럽게.

엔지니어 콘솔 뒤에서 작업하던 공연현장

그 고민을 하는 사이에 프리랜서로 1년 반에서 2년 정도 있었는데, 그때 프리랜서 엔지니어로 라이브 무대 엔지니어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여기서도 마찬가지예요. 공연 기획의 전반을 캐치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공연장 안에 무대 연출에서는 연출가, 작가, 모든 걸 컨트롤하는 사람들이 콘솔 옆에 있잖아요. (저도) 엔지니어 콘솔 옆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녹음실에서랑 마찬가지로 컨트롤 타워에 있었기 때문에 뭔가를 배우기가 쉬웠어요. 남들이 하는 게 보이니까. 이렇게 하는구나 저렇게 하는구나 큐시트는 이렇게 만드는구나 배우기 시작하면서 무대 감독, 연출 감독, 이런 것들을 흉내 내면서 따라 하면서 배웠죠. 그렇게 보면 저는 엔지니어링 기술 때문에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죠. 테크니션으로 그 역할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 기획자로서 제작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공연을 만드는 걸 보다가 흉내 내면서 내 회사에서 내 거를 하나씩 하나씩 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엔지니어는 테크니션의 위치에서 머물 수도 있는 건데 고민을 하셨던 지점들은 전체를 조망하는 관점 그러니까 제작자의 관점에 훨씬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작 과정 안에 들어가서 음악을 보는 건 그냥 음악을 감상하던 사람으로서 보는 거랑은 좀 다르던가요. 어떻던가요.

목민우: 너무 다르죠. 다른 걸 전제로 아까 공장이라고 제가 표현을 했는데 공장은 치열하죠. 치열하고 순수하죠.

(생각하며) 되돌아보면 배우게 된 포인트는 있지만 그 순간에는 힘들었어요. 왜 힘들었냐면 그 기능에 충실한 한 사람으로서 제작 과정에 참여한다는 건 그냥 기술적인 참여잖아요. 그 이상 할 수 없는 것들에 한계를 느꼈죠. 물론 네임 밸류에 따라서 발언권이 있고 없고도 차이가 있었을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래서 ‘기획을 해야겠다. 제작을 해야겠다.’로 점점점점 더 넘어갔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철없는 낭만적인 생각들이 있었죠. 예를 들면 작가성이 반드시 살아 숨 쉬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게 있었죠. 대중음악에서의 작가성이라고 얘기하는 게 포크 세대까지 넘어가지 않아도 저희 세대, 저 어렸을 때 서태지나 신해철 같은 그런 아티스트들도 있잖아요. 그냥 음악을 만드는 연예인 같지만 살아 숨 쉬는 그들의 이야기들이 매체에 잘 담겨서 표현됐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건 좀 고집스럽게 생각하긴 하지만 제작 과정 안에는 중요시 여기는 요소가 좀 다르죠.

예를 들면, 기술적으로 기본적인 박자, 화성에 맞춰서 뭔가를 잘 담아내야 되고 이것이 믹싱 될 때 어떤 과정 안에서 만들어져야 되는지 고려하다 보면 어쨌든 뭐라 그럴까 꾸겨 집어넣어야 되거든요. 근데 모든 작업이 그렇잖아요. 생산 과정에 들어갈 때는 꾸겨 넣어서 그 규격에 맞는 틀로 재단돼야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처음에 시작할 때 ‘좀 편하게 해 보세요.’ 했다가 조금 더 높은 박자감, 조금 더 맞는 피치를 맞추기 위해서 점점 깎이는 그런 경우가 있어요. 악기든 노래든 작업을 하다 보면 앞서 녹음받았던 테이크가 더 좋은 경우가 많아요. 감성이 살아 있어요. 거의 많이 그래요. 녹음 시작할 때 받은 소스와 데모나 이런 게 훨씬 좋은데 이게 찍어 찍어서 만들어서 하다 보면 감성이 깎이잖아요. 그렇게 막 일주일 내내 녹음을 해서 한 곡을 완성시키고 나서 첫날 만들었던 데모를 그대로 쓰기도 해요. 훨씬 좋으니까.

그럴 때 이제 선택지로 살아있는 감성을 잘 전달할 것이냐 조금 더 높은 완성도를 선택할 것이냐를 고르게 되는데 보통 아티스트나 제작사들은 중간 지점을 잘 찾으려고 하죠. 초반에 작가가 가진 어떤 감성을 깎아나가면서 완성도를 만드는 것이 측면이 있죠. 모든 예술이 그렇지 않을까요.      


제작자로서 그렇게 공장을 돌릴 때 (웃음) 공장 안에서 깎여나가는 부분들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도 있으셨을 테고 한편으로는 듣는 이들을 위해서 완성도를 높여야 되겠다는 마음도 있으셨을 텐데, 그 둘 사이에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목민우 : (제작과정 속에 있던) 당시에는 물음표였고 지금 답을 하자면 (웃음) 프로듀서의 말을 들어야 된다. 제작자의 말을 들어야 된다. tv에서 성공한 프로듀서들이 디렉팅을 하면서 제작을 하는 걸 볼 수 있잖아요. 그 감각이 옳다. (웃음)

근데 결국 그게 정답이에요. 그걸 경험을 통해서 아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네가 하는 많은 것들을 해봤는데 그렇게 해서 음반에 실릴 때는 그게 안 돼’라는 어떤 경험치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죠. 선배들의 고민이라고 말하기 좀 그렇고 이미 경험해 본 사람들이 좋은 감성을 어느 정도까지 잘 담아낼 수 있는지 톤이나 (여러 요소들의) 적정 수준이 어디인지 누군가는 알고 있다. (웃음)     


뒤집어 얘기하면 제작자들은 대중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그들의 귀에 어떤 것이 더 좋게 들릴지에 대해서 중시하는 입장이기도 하다는 거네요. 제작자로서 그런 입장에 동의하나요.

목민우: (생각하며) 반 반이요.

(대중이 선호하는 것을) 굉장히 수치화하고 데이터화해서 프로들과 만들어 놓은 게 지금의 kpop 시장인 것 같은데, 선택인 것 같아요. 한편으론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가 담아내고 싶은 것을 충분히 담아내는 인디 시장이라고 말하는 것도 있잖아요. 그렇게 활동을 많이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걸 넘어가려면 (인디시장의) 적정 수준을 넘어 타협해야 되는 레벨이 있죠.

돌이켜 보면, 타협이 아니라 지혜로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타협이 때로는 지혜로움이고.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웃음) 그게 인생이고 그게 세상이잖아요. 근데 그걸 (미리) 다 알아(서 타협해어)야 된다고 하는 건 꼰대 같은 말인 것 같고 몰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좋게 말하면 (자기를 담아내는 것을 선택하는 건) 자유로움이라고 표현하고 싶고 (대중이 선호하는) 지혜로운 타협점을 찾는 것도 영리하게 고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돌이켜보면 영리한 타협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물음표라고 말씀하신 게 인상 깊었는데, 고민을 하면서 간극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꽤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목민우: 그때는 그냥 혼란이고 힘들었죠. 저항하고 싶어 하는 마음, (표현하고 싶은) 내 것이 있었지만 혼돈이었죠. 그럴 때 사람들이 대체로 저항 심리만 올라와서 날카롭게 굴고 ‘나는 달라’라고 외치고 싶은 그런 태도가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제가 2013년에 시작했고 15년 법인으로 전환한 B.I라는 회사는 슬로건이 ‘세상에 놓친 가능성을 디자인하는 문화 기획 그룹’이에요. 당연히 경쟁에서 사람들이 주로 선택하는 건 결국은 성공과 돈이잖아요.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어쨌든 자본으로 산업화된 시장에서 우선되는 선택지 때문에 놓치는 것들이 많고 그중에 작가성 같이 아티스트들이 근본적인 표현하고 싶은 그 어떤 것이 있다면, 경쟁하지 말고 나는 그 (다른 사람들이) 놓친 것을 한번 계속 디벨롭해보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그 슬로건으로 회사를 만들었어요. 인디레이블 만들어보자 그래서. B.I.라는 이름이 원래 처음에는 (웃음) 나쁜 생각이었어요. 그 당시는 2011년이니까 그때 약간 그런 톤이 유행을 했었어요. (웃음) ‘왜 (작가성을) 생각하면 이걸 나쁘다 그래, 이건 안 된다 그래’라고 하면서 그냥 인디레이블을 나쁜 생각으로 만들어볼까 해서 배드 아이디어(bad idea)를 따서 그냥 B.I.라고 만들었죠.      


지금 말씀하신 대로 자연스럽게 제작사를 만들게 된 거네요. 자신만의 관점으로 만들어내고 싶은 게 있어서 이제 제작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거군요. 그럼 B.I. 에서는 인디레이블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계셨던 거네요.

목민우: 그럼요 그걸 메인으로 생각을 했죠. 근데 인디레이블로는 먹고살 수 없어서 하다 보니 다른 일을 하게 되고 또 다른 일을 하게 되고 다른 제작사나 기획사처럼 용역회사로서의 일을 계속했던 거죠. 다시 돌아가서 이야기하면, 뭔가를 싸워 이겨내려고 했을 때 넘어서지 못하는 벽이 있죠. 쌓여있는 경험치나 너무나 뛰어난 어떤 탁월함 같은 이미 완성된 것을 저라는 나이 어린 사람이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었겠어요. 그럴 때 경쟁하기를 포기하고 영리하게 선택했던 게 우리 회사의 슬로건처럼 ‘나는 남들이 안 하는 거 놓친 것을 한번 해보자’라는 거였고 돌이켜보면 잘 살았던 것 같아요.     


B.I. 는 인디레이블로 어떤 걸 제작하셨나요.

목민우: 음반 제작은 하지 않고 계속 공연을 만들어 왔어요. 공연은 이제 소규모 버스킹부터 몇몇 콜라보 공연 같은 것들을 했고. 그런데 만드는 시점에도 알고 있었지만 어느 선부터는 제 약점은 그거였어요. 슬로건과 철학이 그렇다 보니 (큰 자본이 필요한) 무대에 있어 보이게 올릴 만한 규모 있는 대형공연 같은 건 마음대로 제작할 수 없었죠. 원래 저는 무대 기술을 바탕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마음대로 제작해서 올리지 못하는 그 한계를 느끼게 계속 됐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큰 규모의 무대를 올릴 수 있는) 용역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용역이라고 말하면 그렇지만 누군가의 을로서 갑의 일을 대신하는 실행 팀.

사람들이 행사라고 말할 땐, 일반 기업 행사들은 뻔해요. 무대들도 되게 뻔하게 꾸며지는데 그런 일도 했지만 다른 목적의 행사들에도 문화예술이 결합되어 쓰이잖아요. 예를 들면 어떤 기념식을 한다 그럴 때 문화예술 공연이 들어가고 영상을 제작해서 올리게 되고 그럴 때 기념 음악도 만들게 되고 사이드 이벤트로 조성되는 로비나 야외무대 같은 데 옆에 어떤 퍼포먼스들이 있게 되고. 결국 행사를 하게 되면 내가 (행사에 쓰이는) 그 자본 안에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을 녹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돼서 그런 행사 일들을 잡아서 하기 시작했죠.



서울혁신파크 리빙랩 사업으로 선정되었던 "서울시 10개구 32개 장소, 60여개 스토리" 소리채집, 아카이빙, 소리전시, 공연제작


그러니까 그건 똑같이 제작은 하지만 제작비 그리고 리스크를 내가 짊어지지 않고 타인의 일을 함께 만들면서 내가 성장하고 뭔가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겠다. 그래서 예를 들면, 서초구의 ‘서리풀 페스티벌’을 (제안) 받아서 2주 동안 주말에 행사를 하면서 120회 공연을 했었어요. 다섯 군데에서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버스킹을 할 수 있었죠.


개의 청년 단체들이 모여 기획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참여한 청년 페스티벌 "청심환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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