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혼자 살기 시작할 때에는 좋아하는 것들을 요리해서 먹는 게 식생활이라고 생각했다. 식재료를 먹을 만큼만 사서 레시피를 찾아 요리하면 되는 것 아닌가. 처음 몇 달은 손이 가는 대로 여러 가지 요리를 시도해 보고 또 즐기는 것이 재미있었지만 점점 매번 재료를 준비하고 또 요리 후에 뒷정리를 하는 게 번거로워지기 시작했다.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어서 재료를 넉넉하게 사보기도 했는데 결국은 상하기 전에 먹어야 하니 지겨울 정도로 같은 요리를 반복하게 되는 것도 싫었다. 내 입이지만 지루한 건 견디지 못하는 혀의 간사함이라니. 요리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었기에 매번 레시피를 검색해 보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당연히, 몸이 힘들거나 마음이 힘들 때 요리에 소홀해졌다. 피곤하면 냉장고를 열어보는 것조차 귀찮았고 요리는 라면같이 물을 끓이는 정도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걸 선호하게 되었다. 지저분한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쓰레기나 치우지 않은 은그릇을 쌓아두는 게 더 찜찜했기에 설거지는 바로바로 해버리고 너무 피곤할 때에는 차라리 요리를 하지 않는 편을 택하곤 했다.
때때로 생각지도 못하게 식재료가 불어났다.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들고 온 과일이나 식재료,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거절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혼자인 까닭에 챙겨준 재료를 다 소진하는 데에도 은근히 시간이 걸렸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혹은 낯선 식재료의 경우에는 오래도록 방치되기 일쑤였다. 호기심에 사 온 식재료들도 그 곁에 함께 쌓여갔다. 냉장고나 수납장을 열 때마다 쌓여있는 식재료나 반찬을 마주하면 밀린 숙제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몇 번이나 상해버린 식재료나 음식을 정리하고 나서야 나는 요리재료를 사더라도 누군가 먹을 것을 건네주더라도 내가 소화하지 못할 분량은 거절하게 되었다.
그렇다. 요리를 하는 것도 시간과 돈과 에너지 그리고 애정을 쏟는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요리는 요리를 해서 먹는 순간은 일부일 뿐 재료를 준비하고 다 먹은 후에 정리하고 또 재료와 도구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까지 총괄해야 하는 일상의 일부임을, 괜히 의식주로 생활의 필수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살림 3년 차가 되어가면서야 비로소 경험을 통해서 실감했음을 적으며 깨닫는다.
2. 3년 차 혼족의 식생활 루틴, 그리고
시행착오 끝에 한 끼나 두 끼 혹은 하루이틀의 식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나의 끼니를 관리해야 하는 게 살림임을 알아가면서 나의 식생활도 조금씩 달라졌다.
여유롭게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면 아침 겸 점심을 만들어 먹고 아닌 경우에는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점심, 저녁을 먹는 루틴이 되었다. 밀프렙을 시작했고 요리는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긴 주말, 한꺼번에 넉넉한 양을 해두는 방향으로 적응하기 시작했다. 오일 치를 싸두면 매일 점심이 같은 메뉴여도 그날의 다른 끼니가 있기에 같은 메뉴에 지루해질 부담이 없었다. 또 식사와 식사 사이 허기를 참지 못하는 나를 알고 있기에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그래놀라나 과일, 요구르트 같은 것들을 가급적 상비해 두고 식사시간도 좀 더 규칙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약속이 생기는 저녁이나 주말에는 그때그때 먹고 싶은 메뉴를 맛있게 하는 식당을 찾아 기분 좋게 외식을 했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한 번씩은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패스트푸트를 먹기도 하면서 몸이 쉴 시간을 줬다. 신기하게도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나면 다시 냉장고 문을 열고 식재료를 넣어두는 수납장도 들여다볼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어떤 것들부터 먹어야 할지 확인하고 또 재료에 따라 레시피를 검색해 보며 조금 더 효율적이면서도 내 입맛에 맞는 방법을 시도해 보고 익혀나갔다. 냉장고는 더욱 콤팩트해졌고 식재료의 유통기한을 넘기거나 만들어둔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상해서 버리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여전히 다 쓰지 못한 밑반찬과 식재료가 늘 냉장고 어딘가에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받게 된 것들이나 한 번에 다량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탓이었다. 또 레시피를 검색하고 새롭게 시도하면서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고 있었다. 내 경험과 기억에 의존해서 만들고자 하는 요리 레시피를 검색하다 보니 내 경험의 폭을 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고 반복되는 재료 선택과 레시피를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전혀 모르는 것을 무턱대고 시도해 보는 건 부담스러웠다. 재료와 레시피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는 건 느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는 막연하기만 했다.
3. 냉파: 식재료 창의적으로 다루기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준 건, 여름감자였다. 친구가 자신도 엄마에게 받은 여름감자가 너무 많다며 나에게 절반, 여덟 알을 나누어주었는데 올해 수확한 햇감자였다. 포슬포슬한 햇감자의 맛을 온전히 누리려면 감자가 물러지고 싹이 나기 전에 부지런히 먹어야 했지만 뢰스티로 두어 번 해 먹고 나니 더 이상 손이 가질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감자로 할 수 있는 요리들을 다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감자레시피를 치고는 다 읽지도 못할 만큼 차고 넘치는 레시피를 보며 감자라는 친근하고 간단한 재료로도 다양하게 요리를 해볼 수 있다면 한번 해보자 싶었다. 최대한 조리법이 중복되지 않는 것들로 추려서 그날로 하나씩 다른 요리들을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뢰스티, 납작 감자(smashed potato), 감자샐러드, 감잣국. 매번 감탄을 하며 음미하고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다며 자화자찬을 거듭하고 한 번 더 만들어먹다 보니 감자는 어느새 동나 있었다. 자연스럽게 감잣국을 만드느라 산 계란 한 판도 이어서 다양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계란장, 계란샐러드, 계란국으로 계란도 다 먹고 나자 이제는 다른 오래된 냉장고 속 재료들도 활용해 볼 자신이 생겼다. 버릴까 고민하고 있었던 묵은지를 검색 끝에 김치찌개로도, 김치전으로도, 심지어 장아찌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알고서는 그중 제일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만들기로 했다. 참치와 함께 김치찌개로 만들고 나서는 그 맛에 감탄하며 또 한 번 두부를 사 와서 더 얼큰한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냉장고 안의 식재료를 일종의 베이스로 삼아 레시피검색을 하면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새로운 재료 한 두 가지를 더하면, 같은 재료로도 다양한 변주로 풍성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날의 다른 식단과 내 입맛, 그리고 날씨나 그날의 기분과 같은 조건들을 고려해서 레시피를 배치하기만 하면 같은 재료라 해도 지루하지도 지겹지도 않을 수 있었다. 적어놓고 보니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이 사실을, 나는 일인가구로 나 자신의 식생활을 오롯이 책임지는 경험을 이년을 넘겨해 오고 나서야 실감한 것이다. 막연히 이해하는 것을 넘어 경험으로 체득하고 공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간극을 새삼 깨닫고 나자, 식생활에서 부족하게 여겨지던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듯했다.
요리수업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도서관의 요리책들 사이를 서성이며 전혀 다뤄보지 않은 새로운 식재료를 사거나 그럴듯해 보이는 복잡한 레시피를 시도해보아야 하는 건가 고민하기도 했지만 내키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그것들은 정말로 필요하다거나 지금 당장 내 생활에 적합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냉파는 지금 당장 내 냉장고 속의 식재료를 좀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여러 방식으로 다루고 또 그렇게 내가 만들 수 있는 레시피의 종류를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기에 신선한 자극이자 재미가 되었다. 더군다나 적당한 난이도(?)에 훌륭한 결과물(?)을 성취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니 지금으로선 이만큼 창의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놀이가 없는 셈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냉파실험이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