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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Sep 04. 2023

미니멀옷장 8월차:  지속가능한 옷관리란, 옷 줄이기

"의"식주일상실험

미니멀옷장 7월차:미니멀옷장 7월차:

1. 지속가능한 옷 관리: 미니멀옷장만들기 규칙에 꼭 필요한 요소

6, 7, 8월을 보내고 9월 차에 접어들었지만 일단 8월 차까지의 상황을 기록해 둔다.

6월 차 이후 나 자신의 스타일이 어떤 경향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옷관리 문제가 먼저 터졌다. 6월 내내 옷장이 있는 공간의 습도는 60% 후반에서 70%를 넘어 7월에는 70%에서 80%, 때로는 90%를 오갔다. 나부터가 습기의 불쾌함을 선풍기로 버티다 결국은 에어컨을 틀게 될 즈음 옷들도 결국 환기와 제습제로 버티지 못하고 곰팡이가 피고 말았다. 대대적인 정리와 세탁을 하고도 결국은 제습기를 샀지만 그 일을 계기로 옷은 내 몸에 맞고 잘 어울리고 좋아하는 걸 넘어서 관리가 수월해야 한다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 우선순위의 조건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나 한여름에는 옷을 한 번 입고 빨아야 한다거나 걸어두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림질을 해야 한다거나 물빨래가 아닌 드라이클리닝이 필요하다는 건 나에게 심각한 문제였다. 단지 한 번 입기 위해서 피곤한 몸으로 손빨래를 하거나 세탁소에 가야 한다면 옷을 모시고 사는 거나 다름없이 여겨졌다.

'미니멀옷장 만들기' 규칙에 '세탁기 물빨래가 가능하고 보관이 용이하지 않은 옷 줄이기'를 추가하고 며칠에 걸쳐 소독과 세탁을 하고도 관리하기 어려운 옷들을 미련 없이 정리했다. 자연스럽게 줄이지 못했던 여름옷의 분량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낡은 것들은 처분하고 입을 수 있는 옷들은 나누고 나니 7월 차에 접어들 무렵에는 열한 벌- 상의 세벌, 하의 네 벌, 드레스 두 벌- 을 줄여 총 243벌이 되었다.


*세부사항이 추가된 미니멀옷장 만들기 프로젝트 규칙
 1. 일 년 동안 옷 사지 않기
    (속옷, 잠옷, 기능성운동복 제외)
 2. 새로운 옷이 들어온 만큼 있는 것 정리해 상한선 유지
     (마음에 드는 옷을 들이면 그만큼 나눔이나 기부로 줄이기)
 3. 현재 활용하지 못하는 옷 줄이기
     (계절에 맞는 옷은 모두 행거에 걸어두고 그 계절동안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옷들 정리하기:
예를 들면,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 디자인이 몸에 맞지 않아 불편한 옷, 컬러나 재질이 잘 어울리지 않는 옷, 활용도가 떨어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 손이 가지 않는 옷, 세탁이나 보관과 같이 관리유지가 어려운 옷들 정리하기, 비슷한 디자인과 용도라면 가장 내구성이 좋고 활용도가 좋은 것, 잘 어울리는 것으로,  점차 개수 줄이기)
 4. 가지고 있는 옷 즐기는 재미 찾기
     (내가 가지고 있는 옷 파악하기, 데일리룩 사진 찍어 나의 선호 알아보기, 이미지검색으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스크랩해 두고 갖고 있는 옷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스타일 변신해 보기)

    

2.  옷장 속에 두느니 나누는 게 답

총 243벌. 여전히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8월 한 달간 매일 다른 옷을 입는다 해도 여름이 지나는 동안 다 입지 못할 분량의 옷들이었다. 어쩌면 9월까지 입는다 해도. 다시 한번 옷을 줄여야겠다고 마음먹고도 8월 중순이 지날 때까지도 여전히 손을 대지 못했다.

올해 입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입을 것 같은데, 이건 미련인 걸까. 정말로 활용할 수 있는 옷들만 남겨두려면 어디서부터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할까. 기분과 날씨에 따라 스타일을 바꾸는 걸 좋아하고 상반된 이미지의 옷들을 믹스매치하기를 좋아하는데 하나의 기준에 따라서 정리해버리고 나면, 나중에 지루함을 느끼고 비슷한 옷들을 혹은 새로운 옷들을 쇼핑하게 되면 어쩌지.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해지는 머릿속과 주저하는 손을 느끼며 다시 아누슈카 리스의 <내 옷장 속의 미니멀리즘>을 빌려 읽었다.  연초에 옷정리를 하며 내가 지향하는 바가 미니멀리스트들의 방향과 다를 바 없으니 좀 더 적극적으로 미니멀한 삶의 방식을 실천해 보고자 마음먹으며 읽었던 몇 권의 책 중 하나였다. 옷정리를 시작할 때에 인상 깊었던 문장들이 기억에 남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빌린 것이었는데 확실히 옷을 정리하는 와중에 보니 문장들이, 작가의 목소리가 더욱 피부로 와닿았다.

많은 사람이 패션에 열광하는 것은 그것이 재미있고 창의적인 배출구이기 때문이다. 패션은 마치 예술가처럼 여러 가지 색상과 디자인, 질감을 실험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패션에 관심이 있든 없든 옷차림은 무언가를 표현해 주며 그 이면엔 좀 더 깊은 무언가가 있다.
우리의 옷장에는 수많은 추억과 오랜 꿈, 새로운 꿈, 현재의 심리상태 등이 뒤섞여 있다. 또한 옷장은 연장통과도 같다. 우리의 옷이 그저 우리의 거울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변신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나답게 느껴지지 않는 옷도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편안하고 당당해지기 위해서는 ‘나답게’ 느껴지는 옷을 입어야 한다. 지금 자신의 옷장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입고 있는 옷이 자신의 스타일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흐린 날에는 밝은 색 옷으로 기분을 전환하고 기분이 좋은 날에는 그 기분을 더욱 배가시켜 줄 수 있도록 좋아하는 옷을 입곤 했다. 매일 같은 옷차림을 하는 게 지루해서 하루는 바지, 하루는 치마라는 룰을 정해두고 최대한 겹치지 않는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보곤 했다. 그러니까, 작가의 말대로 패션을 재미있고 창의적인 배출구로 삼는 사람이었다. 나의 옷장은 다양한 컬러를 조합하는 팔레트이자 다양한 실루엣을 실험하는 디자인툴이었다. 요컨대 하나의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는 수많은 스타일을 탐험하고 새롭게 시도해 보는 것이 나의 큰 즐거움이었기에 가지고 있는 옷들을 잘 어울리는 옷이라는 기준으로 정리한다는 건 탐험과 새로운 시도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겨졌던 것이다. 나는 내 옷장에도 만족하고 있었고 옷장 안에 있는 옷들을 입고 나서는 것도 편안하고 당당하게 여겨졌다.

그렇다면, 여전히 옷의 개수를 줄이는 게 좋을까?  '나답게 느껴지지 않는 옷'만을 골라낸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다시 돌아온 질문. 그러나 분명한 건 여름옷이 너무 많아서 여름이 지나도록 못 입을 옷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좋아한다 하더라도 입을 날이 부족해서 못 입는 들은 결국 못 입는 옷들이었다. 옷장의 크기를 늘리지 않는 한 앞으로도 옷장의 공간만 차지하고 있다가 겨울옷을 꺼내면 다시 수납장 속으로 들어갈 터였다. 옷장 속에 모셔만 두느니 다른 이들이 입을 수 있도록 나누는 게 답이었다.



3. 옷정리가 막혔다면, 다시 스타일 파악부터  

어쨌든 옷을 줄여야 한다는 똑같은 결론에 다시 한번 이르렀다. 저자가 말한 대로 '나답게' 느껴지지 않는 옷들부터 줄여나가기로 마음먹었지만. 내가 정해둔 옷 줄이기 기준을 넘은 옷장 속의 옷들을 '나답게' 느껴지지 않는지 여부로 구분하기에는 너무나 모호하게 여겨졌다. 작가의 표현을 바탕으로 좀 더 유추해 보자면 '입었을 때 초라하게 여겨지거나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 옷', '어색하게 여겨지는 옷'정도 밖에는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내 스타일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스타일로 하는 실험에서 얻는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책을 읽어나가다가 새삼 자각하게 된 것은, 어쩌면 내가 나의 스타일을 잘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나만의 스타일은, 다양한 요소들, 즉 색상이나 실루엣, 소재, 패턴 등에 대한 선호도가 합쳐져 단일한 시각적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스타일. 개인의 다양한 경험, 그리고 수년에 걸쳐 체득한 연상을 반영한다.
개인의 스타일은 진화하기도 한다. 사람은 평생 동안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을 쌓는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한다. 가치관이 바뀌기도 하고 때로는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새로운 연상들이 기존의 연상들과 혼합되어 갈수록 새롭고 색다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나면 특정한 미학에 대한 근본적인 선호는 꾸준히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것이 앞으로의 스타일이 변화해 나가는 데에도 기준점 역할을 할 것이다.


내가 고르는 옷과 연출하는 모습에 일관된 패턴이 있는지, 그 모습들이 쌓여서 만들어내는 나의 스타일이 보여주는 경향성이 있는지, 그리고 내가 머릿속으로 유추하는 내 스타일과 실제로 보이는 스타일에 차이가 있는지, 나는 섣불리 답할 수 없었다. 내 옷들과 내가 그것들을 입고 연출한 내 모습들을 제대로 관찰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나의 선호와 취향을 파악해야 한다는 도돌이표 같은 결론. 생각나면 사진을 찍고 아니면 그냥 넘어가곤 했던 그날그날의 옷차림을 좀 더 본격적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꾸준히 기록해서 실제로 갖고 있는 옷들을 정말로 잘 활용하고 있는지 편안하고 당당하게 여기고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몇 가지 패션앱을 비교해 보고 acloset을 다운로드하였다. 옷장을 등록해 상/하의, 드레스, 외투로 분류할 수 있고 그날의 옷차림도 기록가능하고 이들을 바탕으로 옷장활용에 관련한 통계치도 확인할 수 있는 거기에 더해 입지 않는 옷들은 사고팔 수 있는 당근과 유사한 중고의류거래기능까지 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여름옷들은 꾸준히 기록해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입지 않는 옷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7월 말에 시작된 옷장과 옷차림 기록은 8월 차를 넘겨 9월 차까지 차근차근 이어왔지만 여름옷장을 데이터로 정리하고 스타일에 맞지 않는 옷들을 정리하는 일까지 마무리하려면 아마도 9월 차가 지나고 나서야 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말로 혹은 글로 정리한 것을 생활 속에서 관찰하고 적용하기까지에는 꽤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타일을 발전시키는 것은 조각품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선호하는 색상, 소재, 실루엣, 미적 취향들은 점토다. 깊게 파헤쳐 영감에 몰두한 다음, 다양한 색상과 소재, 실루엣으로 실험해 보고 그중 어떤 것에 끌리는지 파악하자. 그러고 나면 조각을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선호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적절히 배합하여 하나의 시각적 내러티브를 만들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시그니처 미학을 정의하는데 수년을 투자한다. 스타일도 마찬가지.


이렇게까지 노력을 해야 하나.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싶다가도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꾸준히 기록을 하고 있는 건, 재미있고 창의적인 배출구인 의생활을 더욱 즐겁게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취향이라는 건 결국 안목에 좌우되고 안목을 기른다는 것은 꾸준한 관심과 노력으로 누적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걸 알기에 '스타일을 발전시키는 것은 조각품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는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을 뿐. 하지만 나는 그것에 목매기보다는 역시나 천천히 나의 속도로 놀이하듯 흘러가기로 한다.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은 결국  결국 내가 필요로 하는 것만을 좋아하는 것들로 소유하는 태도로서의 무엇, 의생활에서는 결국 내가 필요하고 좋아하는 옷들만으로 꾸린 옷장으로 즐겁게 매일의 스타일링을 누리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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