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도 힘들게 여겨졌다. 이제 지낸 지 3년 차가 되는 내 집은 여름에는 외부의 열기가 쉽사리 들어오지도 않고 겨울에는 온기가 쉽사리 빠져나가지 않는 편이었기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편이었다. 작년 여름에도 폭염 중에만 며칠 에어컨을 틀었고 창을 열어놓으면 욕실습기도 잘 빠져나갔기에 걱정 없이 여름을 맞았다. 그러나 웬걸, 올여름은 집안의 온도도 외부의 열기와 함께 견디기 힘들 정도로 올라갔고 새벽이 되어도 내려가지 않는 온도에 집안의 열기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습도는 장마와 함께 70%를 가뿐히 넘어가서는 좀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나고도 여전히 열기와 습기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서울의 여름. 올해가 가장 시원한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떠올리며 여름의 일상실험을 기록한다.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에너지를 최대한 적게 쓰는 일상에서의 실천으로, 각자가 조금씩 그렇게 모두가 노력한다면, 이전의 여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1. 의: 옷장을 곰팡이로부터 지키기
그럭저럭 괜찮게 관리해나가고 있다고 믿었던 미니드레스룸에 곰팡이를 발견한 건 폭우와 폭염이 이어지던 7월 말이었다. 습도가 70%를 넘긴 지는 한참 전이었고 80%에 육박하는 습기를 견디지 못하고 에어컨을 틀기 시작했던 어느 날 밤. 에어컨을 틀고 습기가 가신 김에 바닥의 먼지를 걷어내고 신문지를 깔아 두려고 가장 깊숙한 구석을 청소하다가 바닥에 늘어진 검은 셔츠의 소매 부분이 먼지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뿌옇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 벽면의 모든 곰팡이를 제거하고 곰팡이방지제를 뿌리고 결로 및 곰팡이 방지 페인트까지 칠했는데, 다시 곰팡이라니. 그 생고생이 장면장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재빨리 옷들을 꺼내고 바닥과 벽면, 행거를 확인해 본 결과 옷 몇 가지에 곰팡이가 피었고 그 옷들과 맞닿아있던 바닥과 벽면에 이제 막 곰팡이가 옮겨갈 채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오래전 천연오일베이스의 방향제의 일부를 작은 천주머니에 넣어 안쪽에 걸어두었는데, 그 진액이 바닥으로 흘러내리면서 습기와 만나 곰팡이에게 파티의 출발점을 준 듯했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며 한밤중 옷정리를 시작했다. 행거 안쪽 깊숙이 그리고 빽빽이 걸려있던 봄/가을/여름옷들 그리고 행거 아래 바닥에 공간박스 4개와 그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청바지들도 모두 꺼내어 살폈다. 벽면에 맞닿아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공간박스 4개는 쓰레기로 분리배출했다. 벽면과 바닥에 닿는 것들을 모조리 치우고 곰팡이부터 제거했다. 인터넷 검색과 유튜버들의 강의를 들어가며 습기는 최대한 제거하고 걸거나 장에 넣는 것 외에 옷을 쌓아두거나 모아두어 공기가 지나는 통로를 막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임을 깨달았다. 과탄산소다와 베이킹소다 그리고 락스까지 섭렵해 곰팡이 핀 옷들을 세탁하고 그중에서 입지 않을 옷들을 정리하고 입을 옷들만 다시 미니드레스룸에 걸기로 했다. 5단 바지걸이도 사서 한여름에는 입지 않은 청바지들은 보관용 수납장으로, 입을 옷들만 차곡차곡 걸었다. 제습제를 주문하고 신문지를 넉넉하게 구해 코너마다 수납장 각 칸마다 깔아 두는 것까지 며칠이 걸리는 과정이었다. 옷을 입는 것, 빨고 수선하는 것 외에도 옷의 보관에 -특히 온도와 습기기- 주의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걸 체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빨고 정리해 기부한 옷들
2. 식: 더위를 피해 끼니를 챙기기
6월 말 다시 출근을 시작하고는 부엌에 서는 시간이 줄었다. 7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고부터는 더더욱. 요리는 열기를 더해 더위를 견디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밥을 짓고 밥솥을 열 때마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물을 올리거나 팬을 달굴 때마다 피부로 느꼈다. 자연스레 자구책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불을 적게 쓰는 요리를 하거나 불을 쓰더라도 번거롭지 않도록 양을 조절했다. 일요일에 한번 몰아서 일주일치 점심도시락을 밀프렙 하거나 여러 번을 반복할 필요 없이 넉넉한 양으로 요리해서 며칠에 걸쳐 나누어 먹기도 했다. 비빔면, 샐러드, 파스타와 같이 간단히 요리하고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 빵, 통삼겹구이나 뢰스티, 감자구이와 같이 에어프라이어에 넣기만 하면 열기를 피할 수 있는 것들을 주로 먹었다. 선풍기를 틀고 에어컨을 돌리기를 기다리면서 요리를 하기에는 이미 일을 하고 돌아와 배가 고픈 상태로 지쳐있거나 다른 일들을 챙겨야 해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기다리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힘들 때는 밖으로 나가 외식을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다시 출근한 이후로 약속이 많이 잡혀 자의 반 타의 반 새로운 식당과 술집들에서 더위를 피했다. 멋지고 맛있는 다양한 곳들을 순례하면서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조금만 더 능력-시간과 에너지 무엇보다 돈-이 있었다면 더 멋진 곳에서 더 맛있는 음식들을 경험해 볼 수 있을 텐데, 아쉬워하다가 자괴감까지 느끼는 나 자신을 깨닫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가 문득 든 생각. 과연 어느 정도까지 경험하면 만족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건대, 부족한 듯 절제하고 이따금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즐거움을 최대치로 맛보게 해 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능력의 부족과 식탐의 과잉 그 사이 어디엔가 있는 나 자신을 괴로워하기보다는 현재의 조건에서 최선의 지점을 찾아보는 게 좋겠지. 그렇게 현실을 자각하고는 스스로에게 좀 더 재미를 주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주중에는 갖고 있는 식재료를 쉽고 빠른 조리법으로 다양한 요리로 만들어보는 일종의 미션을 주기로 그리고 주말이나 약속이 잡혔을 때에 합리적인 가격에 맛을 보장할 수 있는 곳을 찾는 또 하나의 미션을 주고 즐기며 새로운 자극으로 삼기로. 하여 현재는 냉장고 파먹기에 돌입, 감자, 물김치에 이어 계란에 도전 중.
3. 주: 공간의 습기와 열기 다스리기
제습기를 장만한 건 7월 마지막주 어느 날이었다. 옷에서 곰팡이를 발견하고 나서는 미니드레스룸의 바닥과 벽면을 타고 번져나갈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보일러를 틀어 습기를 몇 차례나 날리고 바닥을 비우고 공간을 만들고도 매일같이 걱정이 되어 에어컨 제습모드를 가동하면서도 안심이 되질 않았다. 공간에 고이는 습기를 매일 같이 공간을 쓰는 내 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작년겨울 타일로 보완하고 늘 창을 열어둔 욕실과 큰 창과 현관이 인접한 주방은 별 문제가 없었지만 침실이 문제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바닥을 밟을 때의 촉감, 창을 열고 환기를 하고 나서도 오후가 지나고 나면 후끈한 열기와 함께 다시 안에 쌓이는 습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전시실 관리를 하며 강박에 가깝게 체크하던 습도계로 방 안의 습도를 일 년 넘게 체크하고서는 한 달이 넘도록 70% 이상의 습도를 유지한 것도 처음이었다. 폭염이 반복되며 장마의 끝도 보이질 않고 다가올 태풍예보까지 더해지자 보일러와 에어컨을 껐다 켰다 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가급적이면 전자제품을 늘리고 싶지도 않았고 제습기가 습기를 제거하는 대신 열기를 더해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결국에는 에어컨까지 켜야 하는 상황이 더해지는 걸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며칠에 걸친 미니드레스룸 정리가 끝나고 폭우가 쏟아지던 날들이 이어지며 습도가 80%를 넘어서던 날, 결국 제습기를 주문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틀 만에 배달이 완료되고 제습을 시작했다. 첫날 출근길에 예약해 두고 집에 돌아오자 4리터들이 대용량 물통이 꽉 찬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빨아들이고 나서야 60%대로 방 안의 습도가 내려왔다. 제습기를 이렇게 저렇게 테스트해 보며 요령을 익혔다. 놀랍게도 습기를 잡고 나서는 방 안의 온도가 28도 29도에 머물러도 그다지 더위가 힘들게 여겨지지 않았다. 짜증스럽다거나 견디기 어렵다고 느꼈던 열기가 습기로 인한 불편감이었음을 제습기의 위력과 함께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폭염이 시작되고도 에어컨을 틀어 방 안의 온도를 27도 정도로 낮추어 삼십여분 정도를 틀었다가 송풍모드로 바꾸어 한 시간 정도 에어컨내부를 완전히 말리는 정도로도 충분했다. 특히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해 몸이 이완되면서도 샤워가 끝난 후에는 서늘함이 느껴지는 상태로 만들어 잠을 청하면 더위로 인해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잠들 수 있었다.
결국 공간의 관리와 공간 안에서의 생활은 습기와 열기 중에서도 습기를 먼저 잡고 더위를 조절해 주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주로 미니드레스룸 앞에 두고 아침에 나갈 때 4시간, 50% 제습 예약을 걸어 작동시키고 있다. 거실 겸 부엌은 큰 창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지 않고 아예 활짝 열어두고 블라인드만 조절해서 공기순환의 양을 조절한다. 바람이 지나는 길을 만들고 공기를 순환하게 만들려면 역시나 바닥을 비우고 물건도 줄이는 편이 생활도 관리도 쾌적하게 만든다. 역시나 미니멀한 생활이 좋다는 걸 확인한다.
폭우와 폭염에도 살림을 해나가는 이들에게 응원을
새삼스러운 발견. 의식주를 제대로 관리하고 생활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노력과 정성 그리고 에너지가 필요하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이것들에 더해 다양한 일들을 해내는 것일까. 정말로 궁금하다. 다른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의식주라는 필수적인 요소들을 그리고 그 외에도 직업과 관계, 여가까지 건사하며 살아가는 건지. 다섯 딸의 육아와 살림을 병행했던 엄마에게 깊은 감사를 그리고 살림을 해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