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봄, 여름, 가을옷을 모두 꺼내어 둘 수 있게 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걸려있던 옷들을 정리하고 보관용 수납장에 들어있던 옷들을 꺼내 행거와 서랍장에 꺼내는 게 일이었는데 이제 보관용 수납장에는 겨울옷만 남았다. 심지어 수납장에 겨울옷들도 여유롭게 들어가서 수납장의 수납장의 공간이 모자라 본가의 비어있던 옷장에 가져다 두고 다시 겨울이 오면 가지고 오느라 낑낑댈 필요도 없어졌다.
세 계절이 지나는 동안 수납함을 열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옷들이 한눈에 들어오니 더욱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분이 좋았다. 옷을 줄인 게 이렇게 뿌듯할 줄이야. 줄어든 물건과 여유 있는 공간에 홀가분하기도 하고 여기까지 온 나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이왕이면 여름옷도 좀 더 정리해서 겨울옷까지도 수납장에 넣을 필요 없는 콤팩트한 캡슐옷장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2.
총 264벌에서 10벌을 정리해서 254벌. 그중에서도 여름옷이 100벌(원피스 27벌, 바지 12벌, 치마 10벌, 상의 51벌), 거의 40%에 달하니 여름옷을 줄이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러나 지난 두 달에 걸친 시도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불가능했다. 나에게는 여름옷을 줄이는 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 다시 돌이켜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여름옷을 꺼내어 걸면서 얇은 니트나 늘어지는 소재의 면티셔츠 같은 옷들은 서랍장에, 블라우스, 셔츠, 티셔츠, 원피스들은 하나씩 옷걸이에 걸면서 새삼 놀랐었다. "와 이게 다 내 옷이야. 다 내 옷이었어." 모두 모아 놓으니 하루에 하나씩 입어도 여름에 다 입지도 못할 정도로 차고 넘친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기가 차기도 했다. 여름옷을 꺼내놓고 6월을 맞으면서는 분명 정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매번 정리하려 할 때마다 파는 것도 누군가에게 주는 것도 혹은 버리는 것도 원하지 않는 내가 맹렬히 저항했다. 하나하나 언제 샀고 언제 입었는지 분명히 떠올랐다. 선물 받은 것도 내가 산 것도 어느 하나 허투루 여겨지지 않았다. 결국 너무 슬림하고 길어서 불편한 청바지, 마음에 들지 않는 디자인의 티셔츠, 너무 타이트하고 짧아서 불편한 원피스까지 딱 세 벌만을 옷장에서 제하면서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3.
옷의 개수를 줄이는 것에 급급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 순간, 억지로 줄이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우선은 내가 세운 규칙에 맞게 옷을 잘 활용해 보자고 그렇게 여름을 지나며 옷에 대한 내 애정인지 집착인지 모를 마음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특히 갖고 있는 옷을 즐겁게 입고 또 데일리룩을 찍어 나의 선호를 알아보는 데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6월이 지나고 7월을 맞는 미니멀옷장만드기 프로젝트 7개월 차인 지금. 초반에 며칠을 찍고는 데일리룩 찍기를 자꾸만 잊어서 사진첩에 있는 모습들을 더해서 돌아본다.
옷장을 매장의 행거라고 생각하고 늘 새롭게 조합해서 입어보려고 하긴 했는데 모아놓고 보니 경향성이 보인다. 데님이나 치마와 티셔츠 그리고 카디건의 조합을 가장 많이 입었다. 상의는 대체적으로 몸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것을 선호하고 하의는 날이 서늘한 날의 긴바지든 더운 날의 반바지든 데님을 선호한다는 걸 깨닫는다. 앞으로는 옷장 속에 모셔두고 입지 않는 옷들을 조합해서 입어보고 활동하며 편안한지 마음에 드는지 그리고 잘 어울리는지 계속해서 탐색해 봐야겠다. 여름원피스, 상의와 치마, 바지조합을 계속해서 다양하게 시도해 보다 보면 아마도 미련 없이 정리할 옷들이 생길 것 같다.
더불어 내 모습을 타인의 눈으로 보듯 돌아보다 보니 내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도 생각하게 된다. 지금도 나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안하지만 여기에 더해서 좀 더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입고 싶다. 내 사진을 그것도 그날의 차림을 선보이는 사진을 찍는 게 어쩐지 과한 자기애 같아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어색했는데 이렇게 모아서 경향성을 확인하고 나니 확실히 도움이 된다. 앞으로도 빼먹지 않고 매일의 옷차림을 기록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