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로서의 뮤지엄museum
1. 우리나라에서 이렇게까지 뮤지엄museum*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는가
미술사와 시각문화의 언저리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한편으로 연구해 오는 동안, 최근 몇 년처럼 뮤지엄에 사람들이 주목하고 찾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미술사를 공부한다고 하면 되묻기 일쑤였고 도슨트로 관람객을 기다리다가 아무도 도슨트를 들으려고 하지 않아 쓸쓸히 다시 준비실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학예업무를 한다고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계 생명체 보듯 신기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은 어떤 전시를 추천하겠느냐며 의견을 묻고 도슨트 시간을 일부러 기다리며 어떤 이들은 단순히 좋아서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나보다도 전시를 더 많이 보러 다니고 구입한 도록을 자랑스레 보여주는 걸 보며 세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곤 한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만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2023년을 마무리하며 언론에서 쏟아낸 뮤지엄 관련 기사들은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키워드만으로도 검색결과가 차고 넘친다. "지난해 국립박물관 14곳 관람객 1천47만 명…1천만 명 첫 돌파", "'냉각기' 미술시장, 관람객 증가에 '방긋'", "2023 미술계, 미술시장 부진… 한국 미술 해외 전시 활발", "다음 한류는 ‘K-미술’ 확인한 2023년"** 뮤지엄은 역대 최다 관람객이 방문해 기존의 방문기록을 경신했고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관람객들의 기록 역시 경신한 수치이다. 작년보다 부진한 시장이라고 표현했으나 작년 한국의 미술시장은 역대 최대의 규모였고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순위에 랭크될 정도로 급성장한 또한 잠재력 높은 시장으로 평가받았다.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프리즈서울이 시작되었고 올해 애도 8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받았으며 그와 더불어 다양한 뮤지엄에서 연계된 전시와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더불어 전 세계의 주요 도시, 주요 뮤지엄들에서 한국미술을 주목하고 특별전시나 관련한 프로그램, 다양한 행사를 계획해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많은 관람객들에게 선보여질 것이다. 지금 뮤지엄은 미술시장의 활성화, 언론의 주목, 관람객의 호응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관심과 사랑, 기대를 받는 중이다.
2. 과연 최고가 작품들,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 최다 관람객이 뮤지엄의 전부일까
앞서 갈무리한 뮤지엄 관련 연말연초의 주요 뉴스는 최고가, 최대, 최다라는 타이틀로 뮤지엄의 일 년을 사실상 미술시장과 함께 숫자로 치환해 값어치를 평가하는 중이다. 그리고 바로 그 최고가, 최대, 최다라는 수식어와 수치로 환산된 값어치가 다시 홍보문구로 쓰이고 인스타피드에 올라가며 뮤지엄 관람을 유혹하는 증폭제로 역할하는 중이다.
그런데, 최고가의 작품들, 역대 최대라고 여겨지는 전 세계적에서 쏟아지는 관심, 최다 관람객 갱신이 과연 뮤지엄의 전부일까? 물론 뮤지엄에 아무도 오지 않는 것보다 많은 관람객이 오는 것이 낫고 언론이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는 것보다 관심을 주는 것이, 소장하거나 전시한 작품들의 가치가 절하되는 것보다는 높게 인정받는 것이 나은 게 당연하다. 위의 기념비적인 수치들은 분명 작품 그리고 전시를 즐기는 이들이 늘었고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으로서 뮤지엄을 인식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성취임에 틀림없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수치들 너머 뮤지엄의 목적 다시 말하면 뮤지엄의 존재이유이다.
이미 이전의 글들을 통해서 뮤지엄의 어원, 정의, 역사 속 뮤지엄의 등장부터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등장한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더불어 국제박물관협의회 ICOM의 정의를 비롯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개정까지 살펴보며 검토해 보았듯, 뮤지엄은 가치 있는 공동의 문화유산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향유하고 발전하도록 매개하는 공공기관이다. 요컨대, 뮤지엄은 우리나라 나아가 인류 모두의 문화예술 향유를 위한 공공재라고 할 수 있다.
뮤지엄과 갤러리, 옥션, 아트마켓 모두 전시를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지만 뮤지엄을 제외한 나머지는 작품을 사고파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뮤지엄은 설립철학에 맞는 작품들을 수집하여 소장하고 대여할 뿐 작품을 사고팔지 않는다는 것은 뮤지엄의 목적이 경제적 효과가 아니라 문화예술의 진흥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뮤지엄에서 작품을 수집할 때에도 혹은 작품의 훼손 등의 문제로 폐기하거나 양도, 반환, 교환 등을 할 때에도 국제박물관협회의 윤리규정을 근거로 이행해야 하며 드문 일이지만 뮤지엄의 설립철학에 맞지 않거나 뮤지엄의 운영에 맞지 않아 부득이하게 작품을 내놓게 되는 경우에도 역시 윤리강령을 근거로 진행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다시 한번 공공재로서의 뮤지엄의 목적을 확인하게 된다.
3. 학예업무로 보는 공공재로서 뮤지엄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 문화예술의 향유 증진. 뮤지엄의 목적은 매우 가치롭게 느껴지기는 하나 막연하게만 여겨진다. 문화유산, 보존, 문화예술, 향유, 증진이라는 단어들 각각의 정의만으로도 논쟁을 할 수 있을 만큼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뮤지엄의 역할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기에 무엇보다도 뮤지엄에서 핵심적인 일을 하는 학예사****들의 업무를 살펴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뮤지엄이 저 혼자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체계를 만들어 운영해 나가는 기관임을 주지한다면, 뮤지엄에서 일하는 이들의 업무야말로 뮤지엄의 역할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앞서 검토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뮤지엄 정의로 언뜻 드러나는 뮤지엄의 역할에 주목하면 뮤지엄학예사들의 업무를 그려볼 수 있다. 이를 테면 가격이나 유명세, 인파 등의 숫자로 경제적 지표로 치환되는 것 너머 뮤지엄이 수집한 소장품을 중심으로 전시와 교육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를 전달하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문화예술의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공공의 장.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학예사 자격을 심사하고 인증해 주는 기관으로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제시하는 학예사 자격인정 기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박물관·미술관의 학예실무로 인정되는 범위: 전시, 연구, 조사, 박물관 자료 및 미술관 자료의 수집, 관리, 보존, 교육의 이행.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박물관협회에서 발간한 학예전문인력 업무 표준안에서는 위의 업무를 과정에 따라 그 하위의 업무들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놓았는데, 이 역시 우리나라의 학예사 자격을 심사하고 인증하는 기준이 되는 경력인정대상기관인 박물관 및 미술관에서 이행해야 하는 것으로 제시하는 학예 업무이다. 박물관특성 조사분석, 상설전시 및 특별전시 기획, 관리, 소장품연구, 관리, 교육 및 행사 프로그램 기획, 운영, 박물관 운영, 관리 지원 등
위 두 업무 규정을 살펴보면, 연구와 조사, 자료 수집과 관리, 보존, 전시, 교육 및 행사프로그램 기획, 운영, 박물관 특성조사분석 및 박물관 운영관리 지원 등으로 학예사의 업무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서 뮤지엄이 운영되고 관람객들에게 선보여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위의 두 규정에서 조사와 연구가 기본적인 바탕이 되어 크게 네 가지의 업무, 즉 1) 자료의 수집과 관리, 보존 2) 전시의 기획 및 운영 3) 교육 및 행사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4) 박물관 특성을 고려한 운영 및 관리를 제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학예 업무는 소장품을 비롯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예술을 포함한 문화유산과 시민을 매개한다. 예술을 포함한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밝히는 한편 이를 접하는 시민들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것이다.
결국 뮤지엄은 관람객 수, 언론의 주목, 작품의 가격 고하가 아니라 과거부터 미래까지 문화유산로서 가치 있는 소장품의 수집, 보존, 전시, 교육으로 그것들을 관람객들이 잘 향유할 수 있도록 충실히 매개하는 데에 나아가 문화예술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에 그 역할을 두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학예사 자격인정기준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박물관협회에서 발간한 학예전문인력업무 표준안을 바탕으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네 가지 학예업무를 각각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학예 업무의 범위와 과정 속에서 가능성과 한계를 검토해 보고 이를 통해 뮤지엄의 역할을 재고하고 그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뮤지엄 museum: 우리나라는 근대화과정에서 뮤지엄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들어오며 이미 일제 강점기의 영향을 받았고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미술관은 미술전문박물관으로 하위개념으로 분류된다. 이미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주제별 전문박물관과 종합박물관을 모두 아울러 공공재로서의 뮤지엄의 개념을 강조하고자 뮤지엄이라는 용어를 쓰고자 한다.
**2023, 박물관, 미술관이라는 키워드로 뉴스검색을 하고 그중에 가장 중요하게 반복적으로 다뤄지는 주요 뉴스를 타이틀 중심으로 정리했다.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에 따르면 박물관은 "문화, 예술, 학문의 발전과 일반공중의 문화향유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역사, 고고, 인류, 민속, 예술, 동물, 식물, 광물, 과학, 기술, 산업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 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 교육하는 시설을 의미" 한다. 더불어 미술관은 '문화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 향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 조각, 공예, 건축, 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 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하는 시설"이라고 다시 한번 명시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및 한국박물관협회의 발간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하면, 학예사는 전문적인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제반업무를 담당하여 수행하는 이들로, 뮤지엄의 소장자료와 관련하여 학술적인 분석과 관리를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과 실무능력을 갖추고 수집, 분류, 감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또 학술적인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출판업무부터 전시, 교육 등 뮤지엄의 운영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을 수행하는 핵심적인 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