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로서의 뮤지엄museum
1. 내가 원하는 대로 노니는 세계, 박물관
어느 전문분야든 그렇지 않겠냐만은, 박물관도 자리매김하고 성장해오면서 유기체 혹은 생태계와도 같은 하나의 전문적 분야가 되어 우리 사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이라는 분야는 어차피 우리가 발을 들이지 않는 한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을 뿐이다. 박물관을 처음 접하는 이라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너무나 드넓은 세계에 망설이고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뒤집어 보면, 드넓은 세계이기 때문에 어디서든 어떻게든 여러분 마음대로 발을 들이고 노닐 수도 있다.
참고로 나의 경험을 털어놓자면, 나의 시작은 초등학교(가 아직 국민학교이던) 시절이었다. 더운 여름, 아마도 방학이었던 것 같은데 혼자 무작정 길을 물어물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찾아갔다. 아직은 경복궁 근정전 앞에 구 일제총독부 건물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던 시절.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가면 책에서 보았던 오래되고도 아름다운 유물과 예술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앙의 고풍스러운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 유리장 너머 백자들을 들여다보았던 게 떠오른다.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중절모까지 갖춰 쓴 할아버지들 사이에 앉아서 그곳에 있던 작품들을 보고 또 보았더랬다. 그것이 나의 박물관에 대한 첫 기억이다. 이후로 관심은 또 다른 관심으로 또 다른 관심으로 이어지며 작품들에 박물관에 무언가를 본다는 것에 애정을 갖게 만들었다.
2. 나의 궁금증과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관람
우리나라의 박물관에 관련된 자료를 살펴보면, 박물관에 대한 인지도보다는 작품, 작가에 대한 인지도와 선호도가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의 관람객 유입현황과 국내에서 개최된 해외 블록버스터 전시의 관람객 유입현황을 비교해보면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GNC미디어의 자료를 참고해보면, 2000년부터 2012년까지의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반 고흐전(82만), 마르크 샤갈전(55만), 팀 버튼전(48만), 오르세 미술관전(46만), 클로드 모네전(40만), 루브르박물관전(39만) 순으로 많은 관람객들이 들었다. 가장 최근으로는 코로나가 터지기 이전 가장 많은 관람객이 들었던 전시로 2019년 데이비드호크니 전(37만5350명)을 꼽을 수 있다. 요컨대, 많은 이들이 무엇보다도 궁금해하는 화가나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 전시나 박물관을 찾는 셈이다.
사실 유명세를 타는 작품에 관심을 많이 갖고 그것을 보기 위해 평소에는 관심이 없었던 전시나 박물관에 가는 건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래 표를 보면 세계적으로 2019년 가장 인기를 끌었던 미술관과 박물관 전시 역시 마찬가지로 드림웍스, 아이 웨이웨이, 뭉크, 클림트 등 유명하거나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는 이들의 전시였음을 역시 확인할 수 있다.
*https://kreca-artindex.tistory.com/207 한국예술연구소 미술시장연구
가벼운 호기심이나 가십으로 시작한다 해도 어떤가? 어차피 관람이라는 건 관람객 자신이 기준이 되어야하는 행위이고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야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기에.
나는 작품에 대한 호기심때문이든, 작가에 대한 호기심때문에든, 전시에 대한 궁금증때문이든, 단지 데이트를 위해서 박물관을 찾든, 박물관을 찾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어떤 전시나 어떤 박물관이 더 선호되든 전시와 박물관을 찾는 전체 관람객 수는 증가 추세이기도 하다. 수많은 관람객들이 제각기 다른 목적으로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시와 박물관을 즐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공공시설로서 박물관이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3. 박물관, 나의 취향을 발견하는 출발점
전시장으로 들어섰다면, 다음으론 전시를 둘러볼 차례. 작품을 감상할 때의 기준은 철저히 나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다. 내게 와닿지 않는 작품을 다른 이들이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 때문에 혹은 미술사에서 유명한 작품이라고 하기 때문에 좋아할 수는 없기에. 마음이 가지 않는데 이해를 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둘러보고 나오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시선을 끄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들을 즐길 수도 있다. 혹 조금 더 궁금하다면, 조금 더 알고 싶다면 또 다른 작품들도 또 다른 전시들로 박물관으로 관심을 이어갈 수도 있다. 관심이 더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전시에서의 감흥이나 아이디어는 내 안에 남아서 뜻하지 않았던 순간에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또 그렇지 못해도 상관없다. 전시장에서 나의 기준대로 작품을 즐기고 나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아닌가.
덧붙여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그렇게 자신만의 기준과 속도대로 즐기다 보면 분명 자신의 마음을 빼앗는 작품을, 작가를, 전시를 만나게 되리라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자신의 미적인 취향을 알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박물관의 수많은 전시, 수많은 작가,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각자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 작품을, 전시를, 박물관이라는 공간과 문화적 공공자산을, 누리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
4. 다시, 우리에게 박물관이란 무엇인가
아래는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연구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노력했거나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사랑했던-작품을, 전시를, 박물관을 누리고 즐긴- 이들이 남긴 그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적어본다.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우리에게 박물관이란 과연 무엇인지 음미해본다.
박물관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장소
앙드레 말로
귀한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이
여기 교묘히 한데 모여
이 세상 만물을
보는 법을 눈에게 가르친다
마치 전에는 한번도 본 적 없는 것처럼
보물들에게 바쳐진 이 벽 안에
예술가의 능란한 손으로 빚어낸
작품들을 받아들이고 간직한다.
예술가의 손과 사유는 함께이기도 서로 겨루기도 하지만
그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완전할 수 없다.
누구나 모르는 새 무언가를 창조한다.
마치 숨쉬는 것처럼.
그러나 예술가는 알고서 창조한다.
그 행위에는 예술가의 실존이 오롯이 담겨 있고
예술가가 사랑한 고통이 이를 더욱 견고하게 한다.
내가 무덤일지 보물일지
내가 말을 걸어올지 입을 다물지는
지나가는 이가 누구냐에 달렸다.
친구여, 오로지 자네에게 모든 것이 달려있네.
욕망없이는 여기 들어오지 말게.
폴 발레리
위의 시는 관람객이 원하는 바를 충족하기를 바라는 기원으로
사요박물관(현재 인류학박물관과 건축문화유산박물관으로 나뉘어짐)
각 동 박공부분에 새겨짐
박물관은 '지식의 보고'이자 '제시자이자 해석자'
브루노 프레이
박물관 보는 법, 황윤
박물관의 탄생, 도미니크 풀로, 김한결 옮김
박물관 경영과 마케팅, 이보아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학 온라인강의록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