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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Jun 04. 2024

위대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 삶에 자부심을 느끼는

독일할머니와 한국아가씨, 편지로 삶을 주고받다.

사빈에게 답장이 온 것은 한 달여가 지나고 난 어느 날이었다. 나는 답장이 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왁 기쁨의 외마디를 질렀다.

처음 프로젝트 이야기를 꺼내고도 고민으로 몇 달을 허비한 뒤에 편지를 연달아 보낸 터였다.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한 설명에,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대한 안내, 첫 번째 질문까지 구구절절 보낸 터라 답장을 천천히 보낸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었다. 답장이 늦어지는 건 상관이 없었지만 내심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늘어놓아 사빈이 이해하기가 어려웠을까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답장이 너무나 반가울 따름이었다.

나는 사빈의 이야기를 읽기도 전에 우선 긴 답장에 너무나 고맙고 기쁘다는 메시지부터 보내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Moon,
나에게 상세한 메시지를 보내줘서 고맙다.
너에게서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항상 너무 기쁘고, 너에 대해 궁금해하며, 너와 너를 움직이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한단다. 나는 번역 프로그램이 내가 정말로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을 정확하게 번역하는지 확신할 수는 없단다. 이해되지 않거나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냥 물어보렴.
너는 프로젝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다시 많은 것을 계획했지. 나도 잠시 생각해야 했고 시간이 좀 필요했단다. 프로젝트에 대한 너의 생각은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게 했지. 어떤 조건에서 자라났는지, 어떻게 자신을 계속 발전시켰는지, 어떤 순간에 높고 낮은 곳이 있었는지?
지나간 삶에 대한 회고!
너의 첫 번째 부탁은, 나를 모르는 독자들에게 나 자신을 자신의 관점에서 소개하는 것이지. 내가 번역을 제대로 읽었기를 기대한다. 그럼 나를 소개하는 것을 시도해 볼게.
너에게 사랑의 인사를 보낸다. 나는 우리가 프로젝트에서 좋은 시간을 가지길 바라며, 모든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그렇길 바란다.
너의 Sabine.


나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사빈은 정확하게 나의 질문을 이해하고 있었다!

사빈의 편지를 읽기 시작할 때, 나는 어느 카페 구석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중간 정도에 이르렀을 때 이미 너무 기뻐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맞은편 자리에 앉은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사빈은 편지에 이어서 나와 독자들까지 생각한 그녀의 소개를 적어 보냈기에 나는 벌떡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다시 사빈의 자기소개, 첫 번째 답변을 읽어 내려갔다.

들꽃 ©김문성, 2024. 
내 이름은 Sabine사빈이고, 독일에 살고 있으며 현재 65세입니다.
Moon과 나는 특별한 방식으로 서로를 알게 되었습니다.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Moon으로부터 소식을 듣는 것은 항상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기쁘고,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궁금합니다.
자신에 대해 글을 쓰는 건 그리 쉽지 않지만, 65세는 충분한 생이죠. 내가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시작부터 보죠!

나는 농장에서 자랐고, 2명의 형제가 더 있습니다. 당시에는 상당히 현대적인 농장이었지만, 규모는 작았습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우리 농장에서도 많은 일을 했고, 동독의 국영 농장에서도 일하셨죠. 나는 1989년 벽(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까지 독일 동부에서 컸고, 이 31년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는 농장에서 함께 일하면서, 여유로운 여가 시간과 자유를 가졌습니다. 마을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어떻게든 잘 크게 되었고, 부모님들은 그 뒤에서 더 많은 일을 하셨죠. (그것이) 때로는 단점이 될 수도, 장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나 자신은 즐거운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두려움도 있었고, 부모님의 사랑을 담은 애정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삶에서 부모님들은 항상 우리를 위해 있었지만, 감정적인 측면에서는 부족했습니다. 부모님과 아이들 모두에게 말이죠. 우리는 빠르게 독립해야 했습니다. 14세부터 학교와 교육 기회 때문에 기숙사에서 살았죠. 하지만 (나는) 이 시기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나중의 삶에 많은 힘을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 나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농업 공학자가 되었으며, 남편을 만났고 2명의 아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1989년에 벽이 무너졌습니다 - 새로운, 다른 삶! 이 삶을 지금 35년이 넘게 살고 있죠. 31년의 동독과 35년의 서독이라는- 강력한 경험 - 이것에 대해 나는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나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더 큰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사회정치적 그리고 인간적으로. 인생에서의 한 조각의 행복이었죠!
나는 항상 열심히 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몇 년 동안 야채 재배에 종사하고 우리 도시의 정부 당국에서 34년 동안 일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도시의 녹지, 공원, 나무를 관리했죠. 부모님의 농장에서의 경험은 지금까지 나와 동반해 왔습니다. 퇴직 후에는 우리 집의 작고 아름다운 정원을 돌보고 독일 기상청을 위해 자원봉사로 계절학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푸른 자연은 행복을 주고 건강을 유지하게 해 주며, 우리 주변의 것들에 대한 좋은 시각을 유지하게 해 줍니다. 그것은 나에게 겸손함을 가르쳐 주었고,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푸른 것에 기쁨을 느끼고 만족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라는 사람, 적어도 나의 일부분입니다.
나는 위대한 사람이나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룬 것과 내가 살아온 방식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물론 더 잘할 수 있었던 것들도 있습니다.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한 문을 열지 않았죠. 하지만 그것은 65세의 여성의 지혜로 종종 나중에 알게 되는 것이죠. 나는 나의 특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쉬움으로 돌아보지는 않습니다.
사랑을 담은 인사를 보내며, 사빈


사빈의 자기소개를 다 읽었을 때,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은퇴 후의 삶까지, 간결하면서도 담담하게 적은 그녀의 삶이 그녀의 목소리로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글만으로 그녀의 삶을 다 헤아릴 수 없었지만 자신의 삶이 위대하거나 특별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이룬 것과 살아온 방식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말은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온 이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기에. 더불어 자신이 열지 못했던 문들이 있었음을 그걸 뒤늦게야 알게 되었음을 인정하는 통찰 그리고 그것들도 아쉽게 돌아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로움은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또 기쁘게 즐길 수 있는 이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기에.

그러니까 나는 내가 기대했던 걸 뛰어넘는 선물같은 답변을 받은 것이었다. 앞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왔고 이제 자신이 얻은 경험과 그 속에서 얻은 통찰을 다른 이들에게 기꺼이 나누어주려는 이를! 몇 번이고 다시 그녀의 소개를 읽으며 나 역시 기쁨을 느꼈다. 그녀가 이룬 것과 그녀의 방식에, 그녀가 보았을 푸른 자연과 그것에 얻은 기쁨과 만족에, 그녀가 전해준 그녀의 일부에. 이 글을 읽게 될 누군가도 사빈이 전하는 사랑이 담긴 인사에 한 조각의 기쁨을 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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