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정리하며 시작된 미니멀한 생활로의 지향은 식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가 바라는 미니멀한 식생활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즐거움을 누리는 식생활이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준비하고 먹고 정리하는 것이 최대한 건강에도 좋고 식도락도 줄 수 있는 식생활. 재미있는 건, 궁극적으로 미니멀에 다다르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전혀 미니멀하지 않다(?)는 사실. 먹는 건 좋아해도 요리는 어깨너머로 보거나 레시피를 따라 해보며 익힌 게 전부인 데다 살림도 책이나 유튜브로 배우다 보니 하나씩 시도해 보며 시행착오를 겪는 -그러니까 찾아보고 시도해 보고 시도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돌아보며 검토해 보고 다시 새롭게 시도해 보며 개선해 나가며 내 생활에 맞게 만들어나가는- 게, 꽤나 품이 들어가는 일.
그래도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살림을 시작하던 순간의 나보다는 발전했음을 실감한다. 2020년 10월, 1인 가구로 본격적인 살림을 시작하고 2년이 지나 4계절을 두 번 보내면서 만들어먹는 즐거움과 꾸준히 요리하고 또 주방살림을 유지하는 것의 어려움을 반복해서 느끼다가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어서 미니멀한 삶에 눈을 뜨고 아이가 일어서고 넘어지고 또 일어나 한 발 한 발 떼듯 실수를 반복하며 주방관리, 식재료관리, 영향균형까지 고려하며 주방살림을 꾸려나가는 중.
예전에는 주방에 서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이제는 막막해하지 않고 우선 냉장고의 냉동실과 냉장실, 하부장의 팬트리를 열어본다. 가장 빨리 소진해야 할 재료를 확인하고 레시피를 검색해 보고 분량을 가늠해 요리를 하고 남는 건 다음 끼니를 위해 보관해 둔다. 물론 너무 피곤하면 요리는 레시피 검색도 귀찮아지고 여름의 덥고 습한 날씨에는 불 앞에 서기도 싫어지곤 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요리도 주방살림도 능숙해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느끼는 대견한 요즘. 이 맥시멀 한 하루하루가 누적이 되어 조금씩 요리의 속도도, 주방관리의 속도도 빨라지다 보면 언젠가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를 누릴 수 있는 미니멀한 식생활을 누리고 있지 않을까.
2. 미니멀식생활 실험 2년 차 봄 식단 돌아보기: 세끼 루틴 만들기
처음에는 혼자 밥을 먹든 밖에서 먹든 사진을 찍는 게 어색하고 귀찮았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특히 내가 만든 음식은 사진을 찍어두면 뿌듯하기도 하고 모아놓고 보면 식생활을 검토하고 개선하는데 활용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웬만하면 잊지 않고 사진으로 남기려고 한다.
올해 2월 건강검진을 할 때 정상체중인데 의외로 콜레스테롤이 높다는 지적을 받고는 어리둥절했는데 1월부터 4월까지의 사진들로 탄수화물 파티를 벌이는 식단을 확인하고 나서는 단박에 납득하고 말았다. 지난 글에서 사진을 모아 검토하며 권고받은 대로 단백질과 야채, 과일을 보충하기로 마음먹고 5월, 6월, 7월 초까지 두 달이 지났으니 여름의 초입에서 그간의 기록을 검토해 볼 차례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충실하게 찍어둔 사진들을 모아 보면서 내 나름대로 세끼의 루틴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보였다.
우선 아침은 원래 먹지 않았던 터라 부담이 되지는 않는 정도로 먹되 단백질과 야채가 들어가는 메뉴를 고르려고 했다. 당근라페를 만들어 크림치즈와 함께, 사과와 삶은 달걀, 오이와 삶은 댤걀이나 닭가슴살 등, 주로 삶은 달걀을 가벼운 단백질원으로 그리고 야채나 과일을 요구르트를 드레싱 삼아 곁들여 토스트 한쪽에 얹어 먹었더니 간단하면서도 점심시간까지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해 주었다.
점심과 저녁도 역시 단백질과 야채를 넣으려고 노력했다. 점심이 탄수화물 위주라거나 과식이라면 저녁을 가볍게 먹고 점심이 가볍다면 저녁에 단백질과 야채를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메뉴를 정했다. 그리고 면을 너무 좋아하는 터라 면을 먹을 때는 단백질이나 야채를 보충하고 다른 한 끼는 반드시 잡곡밥이나 샐러드볼로 영향균형을 맞추려 했다. 확실히 지난 1월부터 4월까지의 식단에 비해서는 단백질도, 야채도 훨씬 더 자주 그리고 많이 섭취하고 있는 게 느껴져서 글을 쓰면서도 뿌듯해진다. 이렇게 세끼를 챙겨 먹으면서 물도 좀 더 자주 마시고 커피는 가급적이면 하루에 한잔 이하로 마시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확연히 느끼는 변화는 장의 운동이 활발해졌다는 것, 그리고 속이 불편하다거나 소화가 안된다고 느끼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
피곤하거나 바빠서 혹은 귀찮아서 요리하는 게 힘들 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끼니 대용식을 활용했다. 지금껏 잘 챙겨 먹겠다고 다짐을 했다가도 흐지부지 되었던 까닭은, 매번 요리를 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세끼를 매번 만들어먹는 건 시간도 에너지도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걸 몸으로도 머리로도 잘 알게 되고 나니 이제는 마음도 귀찮아하면서 미룬다는 걸 깨달았기에 아예 그런 순간을 대비해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을 준비해 두는 것이 낫다는 걸 깨달았기에 웬만하면 대체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을 상비해 두려고 애썼다.
특히 베트남에서 먹었던 요거트그래놀라볼이 이따금 떠올라, 냉동과일과 그래놀라, 요거트를 준비해 두었다가 너무 요리가 하기 어려운 날에는 넉넉히 볼에 덜어 식사대용으로 유독 단 게 먹고 싶을 때에는 적은 양을 덜어 간식으로 먹었다. 견과류를 많이 넣으면 고소하게, 과일을 많이 넣으면 상큼하게, 이따금 아가베시럽을 넣으면 달콤하게 먹을 수 있고 어떤 과일을 넣느냐에 따라서 맛도 달라지기 때문에 즐겁게 애용하는 메뉴이고 이제는 그래놀라를 만드는 방법도 아예 외우게 되었다.
3. 목록활용해서 식단 짜기: 냉파 연습하기
세끼 루틴을 만들어보려고 애를 쓰다 보니 세끼를 다 챙기는 게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세끼를 매번 새롭게 요리해서 먹는다는 건 하루이틀만 해봐도 소모가 큰 일이었다. 요리에 익숙지 못한 터라 매번 레시피를 검색하고 배우면서 익혀야 하는 데다 요리를 하고 먹고 치우는 것까지 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걸 더 정성스럽게 해 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세끼만으로도 하루를 잡아먹을 수도 있었다. 이미 몇 번이고 질려서 손을 놓고 결국에는 대충으로 귀결되었던 터라 지난 글에도 적었듯이 일주일 식단을 짜서 준비시간을 줄여보는 시도를 좀 더 본격적으로 해보았다.
특히 목록이 도움이 되었던 건, 식재료를 체계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오랫동안 냉장고나 주방 하부장에 방치해 두었던 식재료들을 먼저 활용하는 것을 우선으로 두고 식단을 짜보려 했는데, 알고 있는 레시피가 많지 않다 보니 메뉴를 정해도 검색해서 레시피와 필요한 추가재료를 확인해야 해야 했다. 레시피앱과 구글검색, 유튜브를 활용하면서 최대한 있는 것을 활용하되 단백질과 야채 위주로 최소한을 추가하면 되는 그리고 되도록 간단한 레시피를 찾아 일주일치 식단을 대략 정하는 데에도 제법 시간이 들었다.
그래도 하루 그렇게 시간을 들인 덕분에, 냉장고에 잠들어 있던 라이스페이퍼로 약식 창펀, 계란부침을, 또띠야로 부리또, 샌드위치를 밀가루로 치아바타를 만들어 아침용 토스트, 샌드위치 등을 만들며 고민 없이 식재료를 다루는 법도 익히고 새로운 맛을 즐길 수도 있었다.
4. 식단 짜기 업그레이드: 재료소분과 밀프렙으로 식단 변주하기
한편으로는 의문이 생겼다. 매번 이렇게 시간을 들여야 하나? 이렇게 식재료들을 반복해서 다루며 익숙해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걸까? 똑같은 음식을 반복해서 요리하는 건 지겹기도 하고 먹기도 질리는 데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분명 요리 그것도 살림 고수들의 방법이 있을 것만 같았다.
도서관에서 요리책들을 뒤지고 그동안 참고 했던 요리유튜버들의 채널에서도 참고할 만한 것들이 있는지 뒤지고 뒤져 보았다. 마침내 내가 찾아낸 것은, 단순히 레시피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다듬고 손질하고 관리하는 법을 알려주거나 하나의 재료를 다양하게 변주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 그리고 유튜버 중에서는 재료를 소분해서 보관하거나 밀프렙으로 요리과정을 단축해 주는 법을 알려주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깨달은 건, 냉파를 하더라도 다른 식재료가 필요하고 가장 좋은 건 저렴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제철의 식재료를 사서 쓸 수 있게 준비해 두는 과정 그리고 음식을 하고 나서도 먹을 때나 보관할 때에도 이후를 위해서 정리하는 과정을 내가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초여름 식재료와 재료소분법, 레시피들을 즉시 시도해 보았다.
깻잎도 새송이도 닭가슴살도 한 끼 먹을 분량으로 나누어두었다가 메밀면샐러드, 들기름비빔국수, 깻잎파스타에, 짜장덮밥, 비빔국수, 새송이덮밥으로. 번갈아가며 시도해 보니 지루하지도 않고 물리지도 않았다. 여름이 시작되며 한층 내려간 채소값에 내친김에 제철 식재료를 사서 소분과 밀프렙을 좀 더 본격적으로 시도해 보았다. 오이를 여러 개 사면 결국은 마지막 한 두 개는 냉장고에서 물러지곤 했는데 냉국으로 넉넉히 만들어두었더니 일주일은 끄떡없었고 매 끼니마다 식사가 심심하지 않게 해 주었다. 청경채도 감자샐러드도 일 인분만 요리하지 않고 한꺼번에 넉넉히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여러 끼니로 나누어 먹었더니 요리하는 시간이 확실히 단축되고 간편했다.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에 제철 재료를 더해서 재료를 씻고 다듬어 요리할 수 있도록 소분해 두거나 아예 요리로 만들어 한 끼니 분량으로 소분해 두면 메뉴를 고민할 필요 없이 매 끼니마다 번갈아가며 꺼내어 십여분 내에 간단히 준비하고 식사를 마칠 수 있다니. 더 나아가 두부를 사서 강된장도 넉넉히 만들어보고 야채들을 추가해서 샐러드 밀프렙도 해보며 확인한 건, 식구가 있는 2인 가구나 4인 가구를 기준으로 한 요리책이나 유튜버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서 넉넉히 했다가는 또 금세 같은 메뉴에 질리거나 다 먹기도 전에 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1인 가구라 두 가지의 재료로 서너 차례 먹을 양 정도만 만들어도 충분했다. 요리에 많은 시간을 쏟지 않아도 걱정 없이 끼니를 챙길 수 있어서 여유로웠고 혹 약속이 있거나 바빠서 거르더라도 냉장고 안에 음식을 비워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었고 새로운 요리를 해보고 싶다거나 군것질을 하고 싶을 때에도 시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게 좋았다.
5. 실험, 기록, 검토, 피드백으로 계속되는 미니멀 식생활 업그레이드
냉파 연습과 식재료 소분, 밀프렙을 두어 주 반복하고 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품을 들일 수밖에 없겠군. 이 과정을 거쳐야지만 시행착오 속에서 응용하고 체득해서 나의 것이 될 테지. 그렇게 베어 들어야만 불필요한 군더더기들 없이 꼭 필요한 것들만으로도 충분해질 수 있겠지. 문득일을 하면서 마주했던 장인선생님들, 간결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알려주셨던 그들의 작품, 그리고 작품을 만드는 그들의 손길을 촬영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지극한 그들에 경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떤 계에서 성장한다는 건 당연히 노력이 필요한 일이란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새삼 이 과정을 더 즐겁게 보내야겠다 싶었다.
냉장고 속 재료와 새로운 재료를 다루어보고 새로운 레시피를 시도해 보아야지. 소분하고 밀프렙 하는 분량도 방법도 실험하고 기록하고 또 기록을 모아 검토하고 다시 적용해 보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니멀 식생활을 지속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