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 moon song Jul 20. 2024

너희 세대에게, 지금 도달한 상황은 극적이라고 생각해

독일할머니와 한국아가씨, 편지로 삶을 주고받다.

사빈의 답장은 한 달이 넘고서도 도착하지 않았다. 신중하게 생각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걸까 혹시라도 너무 많은 질문이 그녀에게 부담을 준 건 아닐까 슬슬 걱정이 피어올랐지만 답을 재촉하는 것처럼 여겨질까 싶어 우선은 기다리기로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어 주쯤 지났을 때, 사빈에게서 소식이 왔다. 내용이 무엇인지 아직 읽기도 전에 우선은 반가운 마음에 인사부터 건네고 혼자 차분히 글을 번역해 읽을 수 있는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몇 번의 번역을 거쳐가며 그녀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Moon,
너의 자세한 글과 생각들에 감사한다. 나도 너에게 답장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단다. 나는 아팠고, 그 후에 정원을 돌봤으며, 오늘은 멋지게 비가 오는 날을 이용해 너의 요청에 답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너의 최근 Whats-App 메시지들도 나에게 매우 흥미로웠단다. 지금 우리는 햇빛과 비가 어우러진 멋진 여름을 보내고 있어. 모든 것이 푸르고 꽃이 피고 있지. 너도 알다시피, 나는 정원 일을 좋아하고 매일 내 작은 정원에 나가서 아름답고 건강한 식물과 꽃들을 보며 기뻐해. 이제 우리는 첫 번째 오이를 수확할 수 있고, 토마토도 잘 자라고 있어. 우리의 곤충 호텔과 나의 작은 곤충을 위한 꽃밭도 큰 성공이었어. 벌과 말벌이 자주 우리 정원을 방문해.
나는 개인적으로는 잘 지내고 있단다. 다만 세계와 독일이 정치적으로 도달한 상황에 대해 걱정이 된다. 우리는 지방과 EU 선거를 치렀어. 그 추세가 나를 매우 불안하게 하고 내 미래에 대한 생각을 불확실하게 만들어. 우리는 65세 이상이고 오랜 평화 속에서 살아왔지만 현재에 이른 상황은 나를 두렵게 하는구나. 특히 너희 나이대의 세대에게, 지금 도달한 상황은 극적이라고 생각해. 너희는 아직도 많은 삶이 앞에 있지. 젊은 독일 시민들에게서도 이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듣고 있으며, 나도 그걸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단다.
이제 다시 우리 프로젝트로 돌아가자. 네가 선택한 5가지 주제는 잘 선택된 것 같구나. 그것들이 한 사람으로서, 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반영하고 있으니, 그것들을 통해서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질문에 최대한 잘 답하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그것들이 복잡한 질문들이기에, 생각과 감정을 잘 정리해야 하지. 만약 텍스트가 너무 많다면 중요한 내용으로 줄여야 할 것 같다. 질문이 있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연락해 주기 바란다.
사랑을 담아, Sabine
먹구름 아래에서 ©김문성, 2024.

사빈 역시 그간의 공백이 걱정되었는지 말미에 코비드 19에 걸렸고 회복이 되는데 시간이 걸렸노라는 설명을 편지의 말미에 덧붙여둔 것을 읽고 걱정과 고마움이 밀려들었다. 지금은 컨디션이 괜찮은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무리해서 답을 하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되면서도 그럼에도 우리의 대화가 진전하고 있다는 기쁨에 글을 다 읽자마자 곧바로 한 번 더 안부를 묻고 지금은 괜찮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사빈은 건강을 바란다는 나의 말에 그녀가 준비해 둔 답변들을 보내주었다. 오랜 시간 돌아보고 생각하고 또 신중하게 고려해서 답한 것이 분명한 그녀의 이야기들을.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일상을 어떻게 견디어 왔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