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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Dec 18. 2024

2년 차 미니멀옷장  여름정리와 가을맞이

"의"식주일상실험

아빠가 돌아가시고 계엄이 발령 되었다가 해제되고 내 인생에서 겪는 세 번째 탄핵소추안의 향방을 지켜보며 오랫동안 멈추었던 의식주일상실험의 글을 다시 이어가기로 한다.


엄마와 아빠의 유품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부모님의 집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을 멈추었다. 여력이 없기도 했고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무의미의 의미와 싸워온 내 안의 나는 다시금 의지를 잃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지식소매상' 유시민이 어느 강연에서 이야기했듯, 우리 삶은 처음부터 의미 없이 주어진 것이고 다만 우리가 그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일 뿐임을. 이렇게 시간을 죽이는 나를 이후에 내가 돌아본다면,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내려다본다면, 자문하며 나는 스스로를 일으켰다.

모든 것을 멈추고 잠시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 스스로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생활의 감각을 되찾았다. 그러다 12.3. 계엄령이라는  도 안되는 대통령 포고문 발표를 보고 여행에서 돌아와 집회에 참석하기까지 다시 일상이 멈추었다. 탄핵소추안 가결을 보고 추위에 얼었던 쑤시는 몸을  감당하다며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소박하고 단정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다시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그 바람을 나의 방식대로 차분히 실현하려고 시도해 온 일들, 여기 의식주일상실험의 기록을 차례대로 적어본다. 기록으로 더 나은 나의 의식주를 그리고 다른 이들의 의식주에 아주 작은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1. 2년 차 미니멀옷장 여름 정리와 가을맞이

옷장을 정리한 것은, 장례식이 끝나고도 두어 주가 지난 추석연휴 즈음이었다. 올여름 최장열대야를 갱신한 기록적인 폭염을 보냈기에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아침저녁이 선선해지고 나서 더는 여름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는 확신이 든 어느 주말, 여름옷장을 정리했다.

2년 차가 되어서인지 어디서부터 무얼 해야 할지 고민하거나 뜸을 들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다만 주말 내내 화창한 날씨를 확인하고 부지런히 움직일 필요만 있었을 뿐. 우선 미니멀옷장-행거와 커튼으로 만든 아주 작은 워크인 클로짓과 서랍장-에서 정리할 여름옷들을 모두 꺼냈다. 가을에도 외투와 함께 입을 옷들을 제외하고 상의와 하의, 원피스와 외투류를 침대에 모두 쌓아두고 적어도 한 번 이상 입어 빨아야 하는 옷들과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을 구분한 다음 빨아야 하는 옷들을 들고 세탁기 앞으로.

다음으론 흰 옷들과 이염이 될 우려가 있는 옷들을 분류해서 미리 미지근한 물에 과탄산소다로 담그고 나머지는 세탁기에 넣어 세탁 시작. 세탁이 다 될 무렵 담가두었던 옷들을 함께 넣어 (헹굼과 탈수를 진행하거나 먼저 세탁한 옷들을 꺼내고 나서 급속) 마무리. 모양을 잡아주며 널어두면 나중에 다림질할 것들이 거의 없기에 옷들을 탁탁 털어 옷걸이를 활용해 널어준다.


저녁에 해가 기울어질 즈음 걷다 보면 바삭하게 마른 옷들에 햇살과 바람내음이 묻어난다. 가지고 내려와 입지 않았던 여름옷들과 함께 침대 위에 쌓아두었다가, 침대 아래 서랍장에 보관해 두었던 가을겨울 옷들을 꺼내고 그 빈자리에 넣어둘 차례. 다시 하나씩 살펴보며 내년 여름에도 입을 옷인지 아니면 더는 입지 않을 옷인지 혹은 낡아서 폐기해야 할 옷인지 점검하고 깔끔히 접어 차곡차곡 보관박스에 담는다.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나니 여름옷은 수납장 보관박스 하나로 충분했다. 수납장 가장 안쪽에 여름옷을 넣어두고 그 앞으로 편히 꺼낼 수 있는 위치에 한겨울용 두꺼운 내의와 라운지웨어, 한겨울용 패딩과 코트류들을 넣어두었다. 다음으로 내년 여름에 입지 않을 옷들도 차곡차곡 개어 에코백에 넣어두었다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 그리고 가을겨울 상의와 하의, 가을 외투를 꺼내어 니트류는 서랍장에 나머지는 여름옷을 꺼내어 빈 행거에 거는 것으로 주말 이틀간의 여름옷 정리와 가을맞이가 끝났다.


2. 2년 차 미니멀옷장의 여름 회고와 가을 계획

7월부터 8월, 9월, 10월 초까지 여름은 3개월을 가뿐히 넘길 지경이었기에 여름옷을 충분히 활용한 건 분명했다. 내 옷장의 대부분이 여름옷인 데다 원피스류와 상의는 특히나 대부분이 여름옷이었기에 같은 옷을 반복해서 입기보다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들을 다양하게 골고루 입으려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몇 벌은 손대지 못하고 고스란히 다시 수납장 속으로 넣어야 했다.

Acloset 옷장활용 데이터를 틈틈이 확인해 보곤 했는데, 그래도 초반에는 활용률이 80%에 머물던 것이 85%까지 늘어난 상태였다. 데이터는 손이 가지 않는 옷들 그중에서도 불편함을 느끼는 옷들을 기증하기로 결심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내가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 옷이 충분히 활용할 만한 상태일 때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이 낫다는 것을 명확한 숫자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손이 가지 않았던 옷들 그래서 한 번도 입지 않아서 빨 필요도 없었던 옷들 중에서 기증하기로 한 옷들이 특히 무엇이 불편했는지 확인했다. 입고 벗을 때 불편해서 손이 가지 않는 타이트한 블라우스, 어깨선이 흘러내려 불편한 티셔츠, 한 여름용이지만 펀칭디테일에 반드시 속옷과 함께 입어야 해서 더 덥게 느껴지는 블라우스, 시스루이지만 바람이 통하지 않아 더운 셔츠, 산뜻한 노란색이 상쾌하지만 재질이 너무 섬세해서 살짝 긁히는 것만으로도 올이 나간 티가 그대로 나고 다리길이를 애매하게 만드는 7부 바지, 선물 받긴 했지만 도저히 입을 엄두가 나지 않는 비키니 위에 입는 비치원피스.

손이 가지 않는 옷들은 분명 이유가 있었다. 입고 벗을 때를 포함해서 입고 있을 때 불편하거나 옷을 관리하기가 어려운 옷들은 옷장에 걸려있는 걸 보아도 그 불편함이 먼저 떠올랐고 당연히 다른 옷들과 비교해서 뒤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이미 다른 옷들로도 매일을 다른 옷차림을 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 옷들을 입을 리가 만무했다. 이번에 정리한 옷들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정리해나가다 보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그리고 좋아하는 옷들만 남겠구나 다시 한번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을에도 그리고 겨울에도 봄, 여름처럼 손이 가지 않는 옷들부터 꺼내고 입어보며 생활에 불편하거나 어울리지 않는다면 정리하며 줄여나가기로 했다.


3. 2년 차 미니멀옷장 만들기 프로젝트 진행상황 

- 옷(신발, 가방, 액세서리까지 포함) 한 벌도 사지 않았다.

- 언니들에게,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옷, 신발, 액세서리들보다 더 많은 아이템 정리, 현재 251

- *Acloset앱 스타일 통계 중 옷활용 통계 결과, 현재 옷장(신발, 가방, 액세서리까지 포함)의 아이템 85% 활용, 2024년 초 대비 10% 증가


*2024 2년 차 미니멀옷장 만들기 프로젝트 규칙
 
1. 일 년 동안 옷 사지 않기
    (속옷, 잠옷, 기능성운동복 제외)
 2. 새로운 옷이 들어온 만큼 있는 것 정리해 상한선 유지
     (총 264벌=계절당 66벌 X4계절 상한선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들이면 그만큼 나눔이나 기부로 줄이기)
 3. 가지고 있는 옷 즐기는 재미 찾기
     (내가 가지고 있는 옷 파악하기, 데일리룩 사진 찍어 나의 선호 알아보기,
      이미지검색으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스크랩해 두고 갖고 있는 옷들을 최대한 활용해 보기)
4. 현재 활용하지 못하는 옷 줄이기
    (매 계절이 지날 동안 옷을 최대한 활용 후 그 계절동안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옷들 정리하기: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 디자인이 몸에 맞지 않아 불편한 옷, 컬러나 재질이 잘 어울리 않는 옷,  
     활용도가 떨어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 손이 가지 않는 옷, 세탁이나 보관과 같이 관리유지가
     어려운 옷들 정리하기, 비슷한 디자인과 용도라면 가장 내구성이 좋고 활용도가 좋은 것,
     잘 어울리는 것으로, 점차 개수 줄이기. 일차 목표는 옷장의 80%만, 약 234벌 남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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