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보내고 장례절차를 마무리할 즈음에 두 번째 기고와 관련한 스케줄 안내 문자를 받았다. 7월 칼럼이 발행되고 나서 링크를 받은 지 두 달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던 순간부터 나의 일상은 완전히 뒤바뀌었고 돌아가시고 나서는 아빠의 부재에 거의 모든 것들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집어삼켜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있었지만 당장 음식이 썩을까 봐 병원을 가실 때 두었던 그대로 방치해 둘 수도 없었기에 마음을 돌볼 새 없이 아빠의 집정리부터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문자를 받은 것이었다.
첫 번째 기고글을 쓰면서 좋았던 순간이 떠올랐지만 한편으로는 그때 적어 내려 갔던 나의 일상적인 경험들이 손 닿을 수 없이 아득하게 먼 무언가처럼 여겨졌다. 내가 썼던 말들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의 일처럼. 그래도 약속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고 이미 주제논의도 끝낸 상황이니 다시 이전의 과정들을 짚어보고 써보기로 했다. 어쩌면 기고글을 통해서 사라지고 없는 것만 같은 나의 일상을 되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2.
이전에 발행하며 보내준 링크를 타고 가서 내가 쓴 글을 읽고 다시 여기 브런치의 "의식주일상실험" 매거진에 기록해 온 나의 의식주기록을 훑어보았다. 몇 년 간의 일인가구 생활 끝에 의도 식도 주도, 결국은 단순하고 소박하게 정리되어 왔음을 확인했다. 미니멀리즘 혹은 미니멀리스트라는 수식어를 목표로 삼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삶을 지향하고 있는 나 자신을 기록 이전의 경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와 같은 지향을 가장 분명히 깨달았던 건 공유와 나눔을 행동으로 옮기는 나 자신을 보면서였다. 물건을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거나 기부하고 기증하고 무료로 나눔 하면서 그와 같은 행동 이후에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다는 홀가분함과 그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보탬이 되었다는 뿌듯함, 심지어 그로 인해 더 쾌적한 시간과 공간 그 안에서 누리는 희열을 얻는다는 것을 느끼며 계속해서 공유와 나눔을 반복하게 그리고 그 품목을 넓혀가게 했다. 중독적인 그 희열을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 싶어서 기록까지 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바로 의식주일상실험의 글들이었다. 기록을 돌아보니 지나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소유보다는 공유를 택하던 순간의 자유로움을 맛보던 순간들 그리고 나에게는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들에 다른 이들이 기뻐하며 물건을 받아가던 모습들이 이어서 떠올랐다.
3.
사실 기고를 위해 브런치를 뒤지는 그 순간에도 나는 나눔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 물건이 아니라 아빠의 물건들로. 정확히 말하자면 아빠가 가정을 이루고 엄마와 함께 우리를 키우고 또 노년을 맞이하기까지 쌓아온 세월만큼의 당신들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남겨야 하는 것들과 간직하고 싶은 것들 혹은 버려야 하는 것들 외에 나나 언니들에게는 필요 없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필요하거나 유용히 쓰일 물건들을 기부하거나 기증하거나 당근으로 나누고 있었다. 아빠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 집안을 둘러보며 무수히 많은 물건들 속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눔 할 물건들을 분류했고 품목별로 계속해서 기증하고 기증이 안되면 기부하고 기부가 안되면 나누기를 반복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런데 몸에 밴 습관처럼 반복하고 있는 나눔 속에서 나는 이전처럼 희열도 뿌듯함도 홀가분함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감정들 이전에 아빠의 물건들 속에서 아빠의 고통과 떠나감 그리고 아빠의 부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까지 깨닫고는 자문했다. 나는 어째서 아빠의 물건들을 거의 반사적으로 내가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큰 형부가 엄마의 물건들을 정리할 때처럼 내가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며 유품정리업체를 불러서 한꺼번에 해결하라며 걱정을 해주었음에도, 돈으로 해결하자고 다른 언니들도 찬성했음에도. 본능적으로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눔 해야 한다고 느꼈던 순간을 그리고 물건들을 정리해 온 과정을 찬찬히 복기했다.
4.
물건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그 물건을 고르고 사용하고 보관한 이를 보여준다. 아빠가 사용한 물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빠의 물건들이 한꺼번에 수거하는 이들에 의해서 무작위로 들려나가게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빠가 가정을 이루고 가장이 되어 평생을 살아온 시간들을 함께한 그 물건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정리하는 것으로 당신의 인생을 존중하고 배웅하고 싶었다. 아빠가 급박히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그 순간 그대로 멈춰진 집에서 아빠의 물건들을 챙겨 아침 일찍 병원으로 나서며 다시 돌아와 한밤중에 간호사의 호출을 받고 택시를 불러 새벽의 텅 빈 도로를 가르며 이미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병실에서 다시 돌아와 아빠의 침대에서 거실에 늘 아빠가 앉아있던 의자에서 아빠의 물건들을 정리해 나가며 실제로 나는 아빠의 삶을 남은 자식으로서 그리고 당신의 입장에서 돌아보고 있었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 노쇠해지는 몸에 손이 닿는 주변에 최근에 쓰는 물건들을 늘어놓았던 아빠. 당신의 일과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동선에 따라 놓여있던 물컵, 손수건, 돋보기, 보청기, 핸드폰과 충전기, 식탁의 물병과 간식들, 서재의 성경책과 필사를 하던 노트들, 서랍 속의 처방전과 복약안내서, 안방 침대 곁에 엄마의 사진과 엄마가 쓰던 성경책과 손수건. 침대 곁 트레이에 언제라도 쓸 수 있게 둔 수건과 손수건, 속옷들, ······. 아빠, 당신의 긴 시간 살아내느라 수고가 많았다고 이제는 편안히 쉬라고, 그 물건들을 정리하며 나는 아빠의 눈으로 아빠의 생활을 되짚고 아빠와 마음으로 인사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정리의 과정을 나의 생활을 기록해 왔던 것처럼 기록하기로 나의 나눔 기록과 함께 마저 기고로 글쓰기로 마음먹었다.
기고글에는 자연스레 내 물건 그리고 아빠의 물건들만이 아니라 엄마의 물건들을 정리했던 경험들까지도 함께 적어내려 갔다. 글을 쓰며 쓰기 직전까지 만났던 이들을 떠올렸다. 엄마 그리고 아빠를 간병하며 썼던 물건들을 나누었기에 그 물건들을 나눔 받은 이들 역시 간병하는 이들이었다. 치매 걸린 할머니를 간병한다는 이, 뼈암으로 수술한 친정아버지를 위해서 받으러 왔다는 이, 돌아가신 부모님의 묘소에 놓을 조화를 나눔 받으러 온 이, 그들이 활짝 웃으며 기뻐하고 고마워하며 물건을 가져가는 모습들 속에서 비로소 나도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다니 기뻐요 이야기를 건네며 웃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상실은 나눔 속에서 나와 비슷한 상실의 과정 속에 있는 이들의 인사 그리고 웃음에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나눔의 기록은 다시 한번 기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