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남긴 구옥을 리모델링하다
일상실험연구실
반복되는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경험이 사유로 전환되는 과정을 질적, 경험적 차원에서 탐구한다. 주거, 소비, 돌봄, 상실 이후의 삶을 살아가며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나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주거, 소비, 돌봄, 상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시도이다.
1. 자개장을 부숴야 했던 기억
가구를 들이는 것을 신중하게 여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엄마아빠의 자개장이었다. 엄마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 엄마 아빠가 아끼던 물건들 중에 가장 아름답고 튼튼했던 것. 가장 비싸고도 견고했던 것. 수리를 위해서 옮기는 데에도 보관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어 몇 주간을 가져갈 사람을 찾았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장롱. 결국은 철거업체에서 부숴서 내려야 한다는 설득에 허락하면서도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순간. 어쩌면 두 분 인생의 유일한 사치품이자 80년대를 상징하는 문화적 산물이 그렇게 사라진 그날,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그 기억이 너무 무겁게 남았다. 이전에도 섣불리 물건을 사지 않았지만 이후로는 더더욱 가구를 사는데 신중해졌다. 이것을 들이면 어떻게 될까. 이 집을 떠나야 할 때, 이사하며 옮겨야 할 때, 나는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필요한가 아닌가 보다 먼저 그 질문이 앞섰다.
2. 생활을 통과하며 드러난 필요 속에
이사를 마치고 셀프인테리어를 이어나가면서도 몇 달이 넘도록 가구를 들이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쓰던 보일러와 세탁기, 냉장고. 자개장을 포기하는 대신 보관해 두었다가 다시 가져온 자개장과 세트였던 경대와 수납함, 이사하며 가져온 침대와 책상, 부엌의 수납장. 그게 가구의 전부였다. 자취하던 공간의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공간은 거의 비어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비어있는 공간에서 생활하며 나는 무엇이 진짜로 불편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없는 가운데 생활하며 진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싶었다. 엄마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며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떠난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던 엄마아빠의 물건들 중에 필요한 물건은 별로 없다는 것을. 언니들이 자라며 썼던 물건들, 더는 쓸 필요 없는 물건들, 아직 새것이나 다름없는 물건들, 채 뜯지도 않은 물건들까지 쌓여서 동선을 막고 생활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물건이 삶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잠식하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불편함이 분명해질 때까지. 필요를 미리 정하지 않고,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먼저 고민하기보다 무엇이 없어서 불편한지를 살피고 있었다. 생활을 통과하며 반복되는 불편이야말로 가장 확실히 필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3. 선택의 기준, 혹은 배제의 원칙
가구는 생활의 흐름을 따라 들였다. 몸을 돌보는 시간을 위한 자리를 만들고, 옷을 입고 나가는 동선이 끊기지 않게 정리하고, 식사를 위한 자리를 따로 두었다. 번잡하게 혹은 번거롭게 보내는 시간을 멈추고 활동에 오롯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거나 모아둔 것들을 쌓아두기보다 다시 꺼내어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더불어 가구를 들이기 시작하며 고려한 기준은 세 가지였다. 가벼울 것. 옮길 수 있을 것. 필요하다면 해체해서 들고 갈 수 있을 것. 실용적인가 아닌가를 따진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물건의 끝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떠나는 순간 정리하거나 함께하지 못할 물건을 만들지 않고자 한 것이었다. 우리 집은 재개발 구역 안에 있고 재개발과정은 지지부진한 듯 보여도 꾸준히 진행 중이었다. 결국 이 집은 언제 가는 사라질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도 남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기 위해 택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들이는 것들은 처음부터 이별을 전제로 선택한 것들이었다.
가장 먼저 들인 것은 화장대였다. 화장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돌보기 위한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좌식생활에 익숙했기에 좌식경대를 마주 보며 화장을 하곤 했었다. 무릎이 안 좋아지고 나서는 화장대 앞에 앉는 것도 일어서는 것도 힘들어하던 엄마가 늘 마음에 걸렸다. 나는 스스로를 돌보는 행위에 제대로 된 자리를 주기로 했다. 아침에 씻고 나와 앉아 준비하거나 자기 전에 씻고 나와 잠들 준비를 하는 시간. 그 시간을 위한 자리, 화장대가 첫 번째 가구 선택이 되었다.
두 번째로 가벽을 세워 만든 워크인클로짓에 둘 얇은 트롤리 둘을 들였다. 이어서 거울 옆에 둘 조립식 서랍장도 들였다. 역시 가볍고 해체해서 이동할 수 있는 것으로 골랐다. 속옷과 양말, 니트를 넣고 나머지 소품들은 이미 있던 바구니와 선반을 재배치해 정리했다. 새로운 것을 더하기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제자리에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행거에서 옷을 고르고 가방과 액세서리를 챙기고 거울을 보며 나갈 채비를 마치는 동선. 작은 배치 하나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을 흐트러지지 않게 잡아주었다.
테이블은 그보다 나중이었다. 싱크대 옆에 의자를 두고 식사를 하거나 책상에서 작업을 하다가 음식을 차려 먹던 어느 날, 문득 이제 테이블을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주함 속에 끼니를 때우듯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밥을 먹는 시간에도 정성을 들이기로 했다. 가벼워서 옮기기에도 부담이 없고, 다리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어서 의자나 소파와도 함께 쓸 수 있는 것으로 골라 싱크대 옆에 기억자로 배치해 두고 상황에 따라 이동하기로 했다. 작업을 하다 말고 식사시간이 되면 부엌으로 와서 식사에 오롯이 집중하기도 하고 생각을 돌리고 싶을 때 잠시 앉아 차를 마시기도 했다. 테이블 하나가 식사시간을 바꾸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당근에서 부엌에 추가할 원목의자 둘과 팔걸이와 스툴을 분리해서 다양하게 배치할 수 있는 모듈소파, 그리고 일인용 윙체어를 들였다. 나머지는 불편에서 필요를 확인하고 공간의 용도를 더해주었다면 윙체어는 사실 필요보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침대에 곧바로 눕거나 작업을 하던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보기보다는 창밖을 보며 잠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자리를 갖고 싶었다. 아마도 나는 쉬는 방식을 바꾸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가구가 하나씩 들어오면서 생활의 루틴도 함께 자리를 잡았다. 가구가 생활을 정돈하고, 정돈된 생활이 다시 다음에 무엇이 필요한지 혹은 무엇이 충분한지 드러냈다. 물건과 생활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루틴을 만들고 있었다.
4. 남겨진 것들의 자리
나는 취향을 더하기로 했다. 인테리어 후 남아있던 자재들에 철물점에서 한 장에 천 원 하는 벽돌을 사서 거실 창 아래에 선반을 만들었다. 아래 두 칸에는 어린 시절부터 모았던 테이프와 CD, LP, 엄마 아빠가 남긴 테이프, LP들, 언니들이 남기고 간 오래된 테이프, CD, LP들까지 정리해 넣고 제일 위 칸에는 멀티플레이어를 올려두었다.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던 것들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쌓아두는 대신 언제든 꺼내어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배치했다. 유품을 정리한다는 말은 종종 처분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기억을 버리지 않으면서 생활 안으로 들이는 것. 때때로 꺼내어 다시 마주할 수 있는 자리에 두는 것. 그것이 내가 유품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액자를 만들었다. 괴산에서 찍은 버드나무 사진을 캔버스천에 인화해 남아있던 인테리어 자재로 프레임을 만들어 씌웠다. 화분을 키울 자신은 없었지만 집 안에 푸르름을 두고 싶었기에, 살아 있는 것을 들이는 대신 살아 있던 순간을 걸어두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거실에 앉아서 혹은 식탁에 앉아서 시선이 제일 먼저 가는 자리 싱크대 위에 두고 마주할 때마다 기쁘게 그 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엄마아빠의 과거, 나의 기억, 현재의 시간이 한 공간에서 흐르며 나는 비로소 이곳에서의 새로운 날들을 만들어가며 감각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떠나겠지만 그전까지는 매일매일을 기쁘게 채우고 또 기억할 수 있으리라고.
5. 떠날 것을 알면서, 그러나 정성을 담아
보통 이사를 하면 새로이 인테리어를 하고 새로운 물건들로 채운다. 비슷한 규격과 비슷한 구조의 공간에 유행하는 스타일을 찾아 클릭 몇 번만 하면 배송이 오는 편리한 요즘 얼마나 쉽고 빠르게 공간을 완성할 수 있는지. 하지만 그 방식은 내 생활이 만들어내는 필요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기성의 공간과 물건에 내 삶을 맞추는 일에 가깝다.
아마도 재개발 구역 안에 산다는 것은 그 반대편에 서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공간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완성을 목표로 가구를 들이지 않았다. 대신 지금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필요해진 순간에, 떠날 것을 고려해 선택했을 뿐. 나는 가구를 들이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순간을 기준으로 물건을 선택하고 있었다. 가구 배치는 공간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생활의 조건을 설계하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설계에는 처음부터 끝의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여전히 나는 공간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라질 것을 전제로 지속적으로 다시 배치한다. 지금도 윙체어의 위치는 계절마다 달라지고, 소파의 각도도 생활의 변화를 따라 움직인다. 선반 위 물건들의 순서도 계절에 따라 날씨가 달라지며 바뀌어 간다. 생활이 바뀌는 만큼, 시간이 흐르는 만큼. 실험은 언제나 잠정적 과정속에 있고,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