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수리: 떠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

엄마아빠가 남긴 구옥을 리모델링하다

by 문성 Moon song Kim

일상실험연구실

생활을 하나의 실험처럼 다루며, 일상의 선택과 반복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주거, 소비, 돌봄, 상실 이후의 삶을 살아가며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각자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시도이다.



1. 비가 시작되면서 드러난 것들

내부 인테리어를 마치고 생활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 마른장마와 폭우가 반복되며 비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물벼락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뉴스가 반복되던 7월 어느 날, 계단실 앞이 젖어있었다. 누수였다. 완전히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에도 몇 년에 한 번씩 폭우에 젖은 천장과 떨어지는 물을 보곤 했다. 매년 봄이 중반을 넘기면, 근심에 찬 표정으로 누수를 걱정하며 재료를 사고 옥상에 올라 방수작업을 하던 아빠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말려도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던, 아빠만의 여름을 맞이하던 방식이었다. 러닝셔츠 차림으로 온몸에 땀을 흘리며 그늘 한 점 없는 옥상에서 작업을 하다 내려와 푸념하던 얼굴, 지쳐 누운 어깨너머로 간간이 들리던 앓던 소리가 잊히질 않았다.

나는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 눈앞의 누수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급히 땜질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제대로 보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비가 멈췄다 쏟아붓는 사이 문제는 우리 집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아래층 세입자의 집에서도 누수가 되고 있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때 문득 이 집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왔으니 제대로 살피고 돌봐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동네도 기어이 재개발은 진행되고 있었지만, 실제 집을 떠나게 될 시점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비는 점점 잦아졌고 방치할수록 새로이 손을 본 내부까지 망가질 게 분명했다. 결국 가족들과도 상의한 끝에 외부 보수공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내부 인테리어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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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테리어에서 엑스테리어로, 선택의 기준

작업은 자연스럽게 내부에서 외부로 넘어갔다. 기와보수와 옥상 방수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업체들을 찾아 연락을 돌리고 그중에서 몇 개의 업체와 현장 미팅을 잡았다.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들은 예상보다도 더 판단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같은 현장을 보고도 업체마다 다른 이야기를 했고, 해결책도 조금씩 달랐다. 당연히 그에 따라 사용하는 자재도 공정도 가격도 달라졌다. 경력이 오래되었다는 이들조차 일치된 판단을 내리지 않으니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업체들과 현장을 여러 차례 돌아보는 동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비가 그치지 않으면 공사를 시작할 수 없기에 비가 오지 않는 가을이 최적의 시간이었다. 겨울이 오면 급격한 기온차가 미세한 균열을 만들고 추위가 이어지는 동안 균열이 커지며 더 큰 누수로 이어진다는 것을. 검색을 통해서도, 현장에 온 업체들을 통해서 유일하게 반복해서 들은 이야기였다. 결국 선택은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기준을 세웠다. 견적서를 요청했을 때, 간이 금액이 아니라 자재와 공정, 인건비가 분리된 형태로 제시되는지, 특정 자재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을 때, 그 판단의 근거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주는지, 그리고 공사 이후의 책임범위에 대해서 법적인 근거로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계약서에 명시할 수 있는지. 사실 이 기준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전시를 기획하고 제작과 설치, 시공을 여러 업체와 진행해 오면서 경험해 본 것들이었다. 결국 작업의 결과는 작업의 기술뿐만 아니라 작업을 대하는 태도와 소통방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기준으로 업체를 추리고 결정하는데 몇 주가 걸렸고, 그 사이에도 비는 간헐적으로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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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장에서 감당해야 하는 시간

공사는 날씨와 조건을 맞추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비가 멈춘 시기를 기다려 일정을 잡고, 옥상이 충분히 마르고 옥상 위에 방치되었던 물건들의 철거와 자재운반이 가능한 시간, 공정이 끝나고도 방수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해 인테리어를 했을 때보다 더 여유 있게 시간을 계획했다. 그러나 집 위치는 또 다른 변수가 되었다. 골목의 가장 안쪽, 경사지에 담이 위치한 구조 탓에 스카이차를 들이는 것부터 쉽지 않았고, 골목에 주차된 차량마다 연락을 돌려 양해를 구한 뒤 차가 들어오도록 스케줄을 맞추어야 했다.

첫 작업은 지붕교체였다. 작업 당일에는 새벽부터 현장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정리하고, 기와를 내리고 폐기물을 철거하며 기존 구조를 드러낸 뒤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내가 작업자는 아니었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에 떠나 있을 수 없었다. 전시 설치를 진행할 때처럼 전체 흐름을 확인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현장에 있는 덕분에, 작업자분들에게 작업의 순서를 듣고 자재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도, 이후의 유지나 관리에 대해서도 귀동냥을 할 수 있었다. 더불어 계획과 다른 부분은 없는지, 예상과 달리 생긴 돌발변수는 없는지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해가 기울어질 무렵에야 하루의 작업이 끝났고, 작업자들이 돌아가고 나서도 업체 대표님과 함께 남은 자재와 폐기물을 정리했다.

모두가 돌아간 뒤, 혼자 남자 긴장이 풀리며 묵직한 피로가 밀려왔다. 몸도 고됐지만 긴장 속에 판단과 결정을 이어가야 했던 정신적 피로도 만만치 않아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새로운 지붕이 자리를 잡고 다음 주 옥상방수과정이 이어졌다. 하도, 중도, 상도로 이어지는 며칠의 작업 역시 쉽지 않았다. 철거 및 자재 운반, 청소와 샌딩, 기초작업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쌓아나가야 했기에 쉽사리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둘째 날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마음을 졸였지만 오후에는 다시 기온이 크게 올라 다행히 작업과 건조에는 문제가 없었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양생도 완전히 자리를 잡기를 기다려준 듯 며칠이 지나고서야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안도의 숨이 트였다.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이 지나고 빗줄기가 굵어지는 초여름이 되어야 방수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터였지만, 우선은 모든 일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만큼 현장을 감당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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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겨진 것들을 정리하며, 남은 시간을 선택하는 일

옥상 공사는 옥상에 남겨져 있던 것들을 마주하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빠가 남긴 수많은 화분과 항아리,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자재들을 얼기설기 쌓아두어 어설프게 비바람을 막으려 했던 흔적들. 사용이 가능한 것들은 기부나 나눔으로 비우고 엄마아빠를 기억하고자 남겨둔 몇 개의 화분과 물품들을 꺼내 간직하기로 한 것 외에는 사실상 버려야 할 것들이었지만 그동안은 차마 손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대로 두고 있었던 것들이었다.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하나씩 비워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치우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들이 쓸모없음에도 아빠의 흔적과도 같았기에 차마 치우지 못하고 있었던 나 자신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보며 이상하게도 비어있다기보다는 충분하다는 느낌이었다. 아빠는 끝까지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스스로 옥상보수를 해결하려 했었다. 그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늘 고통스러웠었다. 아빠의 흔적들을 정리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견디기 고통스러웠던 것은 누더기 같은 집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을 갉아먹으며 버티던 아빠의 방식이었다.

이 집에서 얼마나 더 머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언젠가 떠날 것이 정해진 공간에 이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분명해진 것이 있다. 내가 사는 동안 이 공간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 나뿐 아니라 이 집에 머무는 이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돌보겠다는 것.

내부 인테리어가 생활을 만들어가는 일이었다면, 외부 보수는 그 생활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나는 단순히 지붕을 고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집을 아껴주는 사람을 찾아 그가 가진 기술과 정성을 더해 함께 집을 돌본 것이었다. 그 선택들이 모여 결국 내가 이곳에서 보낼 시간의 질을 좌우한다는 것을, 수리를 다 마친 집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실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전문가에게 보수를 맡겨 내가 아빠 대신 근심 어린 마음으로 몸을 혹사해 가며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아빠가 기뻐하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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