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문화예술프로그램기획: 남양주어린이비전센터 어린이날프로그램
기획과 실행의 현장 기록
문화예술 프로젝트의 기획·실행·조정 과정을 현장 기록으로 남긴다. 문화예술 실천이 어떻게 판단과 지식을 만들어내는지, 아이디어가 현실과 만나 기획이 되고 실행이 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그 속에서 얻은 것을 기록한다.
2025년 첫 번째 문화예술프로그램 기획은, 사실 전시 기획 프로젝트들 보다도 앞서 4월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5월 남양주어린이비전센터 어린이날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물론 전시뿐만 아니라 박물관·미술관에서 그리고 문화재단이나 지역의 공공기관에서 수차례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 보았기에 자연스러운 제안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어린이를 위한 기관에서 어린이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뛰어난 작품 혹은 천재적 작가라는 결과적인 호명에 주목한다. 하지만 문화예술기획자로서 보기에, 작품 혹은 작가의 뛰어남만으로는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을 지켜보고 알아주고 즐길 줄 아는 향유자가 있어야 비로소 예술이 존재할 수 있고 창작과 향유의 활발한 상호작용과 같은 문화적 저변 위에서 비로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을 제대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안목이 필요하고 그 안목을 갖기 위해선 일상 속에서 친근하게 경험하며 쌓아 올린 문화적 소양이 필요하다. 부모의 문화적 교양이나 조부모의 재력과 같은 사회적 자본이 없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을까. 나는 바로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공공기관의 문화예술프로그램이 평범한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출발점 혹은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기에, 특히 어린아이들을 위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다.
흔쾌히 프로그램을 맡기로 하며 염두에 둔 것은 문화예술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이었다.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전시든 문화예술프로그램이든 주제와 소재, 경험을 설계한다는 것은 같았지만 전시를 기획할 때와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참여하게 할 것인가”에 있었다. 프로그램 기획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참여의 조건을 설계하는 일에 가까웠다. 사람들의 움직임, 경험의 흐름, 공간의 분위기, 관계가 형성되는 순간까지 함께 고려하며 조직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참여를 설계한다는 추상적인 질문은 남양주어린이비전센터라는 실제 공간과 환경을 마주하며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형태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어린이비전센터는 개관 10주년을 맞고 있었다. 어린이날 프로그램을 구상하며 비전센터의 연혁과 발전과정을 조사하고 미션과 비전을 정리하며 센터를 하나의 ‘열 살 어린이’로 상상해 보았다. 태어나고 성장해 이제는 어린이와 곁을 나란히 하는 어린이비전센터. 그렇게 어린이날의 주인공인 아이들과 함께 공간의 생일을 축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더불어 남양주의 생활환경 역시 중요한 조건이었다. 아파트 중심의 도시 구조 속에서 지역 공동체 경험이나 생활문화 기반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동은 자가용 중심이고, 동네에서 머물며 관계를 만드는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은 듯 보였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목표는 분명해졌다.
아이들이 이곳을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각 세부프로그램들 역시 감상 중심이 아니라 몸으로 참여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경험하는 구조로 설계하기로 했다. 공간이 프로그램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놀이와 만남이 일어나는 장면이 되기를 바랐다.
기획 과정에서 계속 붙들고 있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는 프로그램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를 위해 프로그램은 만들기 활동, 놀이 프로그램, 공연, 자유참여 활동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작동하도록 구성했다. 직접 만드는 그림책 인형극, 원예놀이, 전래놀이 같은 체험형 프로그램을 중심에 두고, 마술 공연과 버블·벌룬쇼, 페이스페인팅 같은 축제적 요소를 더했다.
센터에서도 돌림판 이벤트, OX퀴즈, 바람개비 만들기, 청소년 버스킹 공연을 준비하며 프로그램은 점점 풍성해졌다. 개별 프로그램의 완성도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 경험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흐름을 만드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손으로 만지고 발로 뛰고, 부모와 함께 웃고, 낯선 사람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놀이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경험 자체를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삼았다.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하루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였다. 영유아부터 초등 고학년까지 연령대가 넓었고, 부모 참여 여부에 따라 경험 방식도 달라졌다. 재료 준비와 집중 지도가 필요한 프로그램은 독립된 공간에 배치하고, 많은 사람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활동은 로비와 야외 테라스로 확장했다. 오전과 오후의 참여 대상과 인원 흐름을 가정하며 공간과 프로그램을 나누었다.
프로그램의 시간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참여 밀도와 동선을 설계하는 작업에 가까웠다. 센터 측 프로그램이 후반에 추가되면서 공간 배치를 다시 조정해야 했고, 실제 방문 인원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도 변수였다. 프로그램 기획이 언제나 그렇듯 계획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조정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린이날 당일, 예상보다 훨씬 많은 가족들이 센터를 찾았다. 프로그램을 알고 온 사람도 있었지만,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왔다가 우연히 들른 가족들도 많았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마술사의 버블과 벌룬쇼가 시작되던 순간이었다.
마술사의 동작에, 공간의 공기가 달라졌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입을 벌리고 탄성을 질렀다. 음악에 맞춰 떠오르는 커다란 비눗방울과 형형색색의 풍선이 공간을 채우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원을 이루며 공연을 둘러쌌다. 공연 중간 마술사가 함께 참여할 사람을 찾자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두가 손을 들었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웃었고, 아이는 부모보다 더 크게 반응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장면을 보며 동시에 웃는 그 순간,
공간 전체가 하나의 놀이 경험으로 전환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장면을 보며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물론 예상치 못한 상황도 있었다. 이벤트 참여자에게만 제공되는 경품을 받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가 있었고, 난처한 표정으로 사정을 하다 설명을 듣고 돌아서는 부모도 있었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부모도 있었고, 센터 직원들에게 민원을 제기하는 부모도 있었다.
그 순간마다 프로그램 운영은 결국 사람의 감정과 마주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다. 참여의 기쁨만큼이나 실망과 기대, 오해와 요구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현장에서 마주했다. 마음은 복잡해졌지만, 그럼에도 공간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이 프로그램이 남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행사 전체를 총괄하며 입구에 앉아 로비를 지나는 모든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볼 수 있었고 감사하게도 기획했던 프로그램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있는 줄 몰랐다며 아쉬워하는 사람들, 다음에는 언제 하는지, 어떤 걸 하는지 프로그램의 후속 여부를 묻는 사람들, 프로그램 내용을 더 자세히 알고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참여 경험은 관심의 정도와 정보 접근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이날의 특별프로그램이라 일회성 기획이었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경험이 다른 문화예술프로그램 참여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랐다.
어떤 가족에게는 오늘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처음 경험하는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이 남아 다음에 비슷한 프로그램을 찾아보거나, 다시 문화공간을 방문하거나, 새로운 예술 활동을 시도해 보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문화예술은 거창한 형식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경험될 때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편안한 경험이 쌓이면 안목이 자라고, 스스로 찾고 누릴 수 있는 힘도 생긴다. 프로그램은 그 시작을 여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번 프로그램 기획을 통해 다시 확인한 것은 프로그램 기획이 단순히 콘텐츠 제작과 발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참여와 관계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공간과 사람, 운영과 감정, 놀이와 배움이 함께 작동할 때 프로그램은 살아난다는 것.
그리고 질문이 함께 남았다.
하루의 참여 경험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지역 문화공간은 어떻게 공동체의 경험이 될 수 있을까.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행사에서 배움으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