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문화예술행사기획: <다산, 다시 태어나다> 봉안식 기획·운영
기획과 실행의 현장 기록
문화예술 프로젝트의 기획·실행·조정 과정을 현장 기록으로 남긴다. 문화예술 실천이 어떻게 판단과 지식을 만들어내는지, 아이디어가 현실과 만나 기획이 되고 실행이 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그 속에서 얻은 것을 기록한다.
2025년 4월 남양주 시에서 공공행사 기획을 요청받았다. 6월에 있을 다산 정약용 선생의 영정과 동상을 새롭게 봉안하는 기념행사였다. 이번 영정은 다산 선생의 후손들의 용모와 문헌 기록, 조선시대 의복과 관습에 대한 고증을 바탕으로 새롭게 제작된 것이었고, 동상 역시 함께 제작되어 시민들에게 처음 공개되는 자리였다.
이 행사는 과거 인물을 기리는 의례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상징을 시민들과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미 형식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지만, 그 형식 안에서 어떤 경험을 만들어낼 것인지는 여전히 기획의 영역에 남아 있었다.
과거의 인물을 기념하는 자리를 현재의 사람들이 머무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남양주시는 이미 다산을 도시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삼아 다양한 콘텐츠를 축적해 온 상태였다. 정약용도서관을 비롯해 다산 관련 교육과 커뮤니티 사업, 도시 브랜드와 연계된 사업들이 시민과 만나고 있었다. 나는 이들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면서, 단지 과거의 인물을 그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 속에서 그의 유산을 이어가려 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념식의 형식을 살피면서, 관련 유적지를 찾아가고 연구서를 읽으며, 다산과 관련된 남양주시의 지금까지의 브랜드 사업들을 조사하고 정리하는 과정은 이 작업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과거 유적과 자료 위에 축적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삶과 사상은 단지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도 유의미한 존재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하여 이번 행사는 그런 확인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이기를 바랐다.
과거 인물을 기리는 의례가 아니라, 다산을 현재의 시간 속에서 다시 만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행사의 제목은《다산, 다시 태어나다》로 정해졌다. 영정과 동상이 새로 제작된다는 사실만으로 ‘다시’라는 말이 완성되는 건 아니었다. 상징의 갱신이 현재의 감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형식의 반복에 머무를 수도 있었다.
동상과 영정은 시간을 고정하는 상징이지만, 선생은 삶과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던 실천적 사상가였다. 그렇다면 기념이라는 형식 안에서 현재성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시민들이 다산을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지금의 삶과 연결된 존재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기념식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 있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이번 기획의 핵심 문제였다.
다산 관련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특히 주목했던 것은 ‘다산화사’였다. 선생이 자연을 사랑하고 스스로 삶을 꾸려가는 선비의 태도를 담아 사계절의 꽃과 나무를 노래한 시였다. 그는 귀양살이 중에도 사랑해마지 않는 꽃과 나무로 정원을 가꾸었다고 했다. 남양주시는 마침 브랜드 사업일환으로 남양주 지역 작가가 그린 다산화사 일러스트를 만들어 둔 상태였다. 그 이미지를 행사의 시각 요소로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다산화사의 꽃과 나무에 둘러싸인 선생의 실루엣 이미지는 권위적 초상 대신 남양주의 자연 속을 거닐 듯 자연 속 친근한 인물의 이미지를 만들어 주었다. 공간 역시 같은 방향으로 구성했다. 정약용 유적지의 초여름 신록이 더욱 싱그럽도록 하얀 천막을 설치하고, 아이들이 색칠하고 꾸민 그림을 가랜드로 만들어 유적지의 소나무 사이에 걸었다. 선생의 노래가 아이들의 손을 거친 그림으로 다시 태어나 행사 공간을 장식하도록 한 선택이었다.
기념의 자리에 현재의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더하는 것.
상징을 전시하는 대신 관계의 장면을 만드는 것이 기획의 뼈대가 되었다.
행사 당일, 비 예보로 긴장 속에서 준비가 진행되었다. 다행히 시작 직전에 비가 그치고 해가 나자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합창단 공연과 축사, 제막식이 이어졌다. 아이들의 그림으로 꾸민 가랜드과 장식들은 공간을 축제의 분위기로 바꾸어 놓았다.
영정을 그리고 동상을 새롭게 제작하는 과정을 시민들에게 보고하는 시간이 이어졌고,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을 함께 감상했다. 정약용의 7대손 인터뷰와 초상화 및 동상 작가의 작업 현장을 담은 장면들이 이어지자 참여한 이들과 유적지를 찾은 방문객들은 조용히 숨을 죽인 채 화면을 바라보았다. 제막의 순간에는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휴대전화를 들어 그 장면을 기록했다. 공식 행사가 끝나고도 사람들은 새 영정과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머무르고 또 다른 이들이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고 머무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세팅부터 운영, 철거까지 이어진 긴 하루 속에서 기념식은 의례라기보다 하나의 장면처럼 흘러갔다. 사람들의 움직임과 공간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시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행사의 앞뒤로도 사람들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부대행사였던 유생복 체험과 다산차회 다과 체험에 참여하는 모습, 사당 안에서 진지하게 봉안식을 올리는 장면, 유적지를 산책하듯 오가며 머무는 사람들의 모습이 서로 다른 리듬으로 겹쳐졌다.
기념의 형식 속에서 관계의 시간이 만들어지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행사가 끝나고도, 동상과 영정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들의 모습이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 남았다.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누군가는 축제처럼 북적이는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운영으로 몸은 지쳐 있었지만, 동시에 뿌듯함과 벅찬 감정이 남았다. 선생이 후대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형식적인 절차로서 그를 기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유적지를 오가며 자연스럽게 사당을, 묘지를, 생가를, 선생의 다양한 공간들을 현재의 시간 속에서 함께하고 있었다.
동상과 영정은 상징을 고정하지만, 사람들이 그 앞에서 머무는 시간은 현재의 경험으로 만들지는 것이었다.
기념은 형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사람들과 공간, 기억과 현재의 시간이 겹쳐지는 그 장면 속에서, 사람들이 다산 정약용 선생을 떠올리고 생각하며 그와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이 지켜보는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것을 지켜보는 일 자체가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그리고 어쩌면 기념은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사람들과 다시 만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을 기리는 방식은 동상과 영정을 세우는 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과 사유가 지금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번 작업은 그 질문을 조금 더 또렷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기념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상징은 어떻게 현재의 삶과 연결될 수 있을까.
행정의 의례와 시민의 경험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