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공간-큐레이션] 글로벌갤러리가 제시하는 감각방식

[리뷰] 2023- 2024 페이스갤러리 서울의 전시 넷

by 문성 Moon song Kim

감각과 사유의 기록

감각이 아직 판단이 되기 전의 상태를 기록한다.
이 글은 이해보다 먼저 도착하는 질문들의 기록.




* 성북에서 시간을 따라 걷고, 송파에서 제도의 방향을 지켜보고, 잠실에서 소비의 동선 속 전시들에 이어, 이번에는 2023, 2024년 이태원 페이스갤러리에서 관람한 전시들을 정리해 본다. 페이스 갤러리의 전시는 글로벌 갤러리라는 점에서 이전의 공간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치기보다, 의도적으로 찾아가게 되는 공간. 산책의 흐름 속에서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보기 위해 목적을 가지고 이동하게 되는 장소였다.

**페이스갤러리 서울은 페이스갤러리의 서울지부로, 그 자체로 하나의 명확한 성격을 갖는 공간이다. 세계적인 작가들을 전속으로 두고 전시를 구성하는 글로벌 갤러리이기에, 이곳에서의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작가와 작업을 동시대 미술의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하나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잠실에서의 전시가 감정을 환기하는 경험에 가까웠다면, 이곳에서의 전시는 감각을 구성하고 배열하는 방식을 읽어내는 경험일 수밖에. 관람자로서 갤러리 안을 거닐며 자연스럽게 작품들, 전시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감각하며,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다.


풍경을 다시 구성하는 방식들

《Landscape 관련 그룹전》 2024.05.11 – 2024.06.15
참여작가: Thomas Chapman, Alejandro Garmendia, Louis Jacquot, Lucy Mullican, Milko Pavlov
큐레이터: Cy Schnabel

* 이번 전시는 큐레이터 Cy Schnabel의 기획 아래, ‘풍경’을 공통의 출발점으로 삼은 다섯 명의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있었다.


Review

하나의 주제로 묶이는 다양한 작가들의 그룹전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동일한 대상이 얼마나 다른 감각으로 변주될 수 있는지를 비교하며 감상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전시 역시 풍경이라는 익숙한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지만, 화면 속 풍경들은 현실의 재현이라기보다 오히려 감각 속에서 재구성된 공간에 가까웠다. 소재와 구성, 컬러와 터치는 구체적인 장소를 지시하기보다,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안에서 관람자 역시 자신의 공간에 대한 감각을 돌아보고 자신이 경험하는 감각과 공명하는 작품들을 찾는 것도 감상의 재미를 더하게 했다.

그중에서도 나를 특히 오래 머무르게 한 작업은 Milko Pavlov의 풍경이었다. 그의 화면은 분명 자연을 닮아 있으면서도, 경계가 부드럽게 흘러내리며 형태를 고정시키지 않아서 풍경화라기보다는 사실은 추상화에 가까웠다. 오일페인팅의 선명하고도 산뜻한 색감과 질감 속에서 산과 하늘, 물과 대지의 이미지들은 서로 스며들며 하나의 명확한 풍경으로 환원되지 않았고, 오히려 감각의 상태처럼 남았다. 마치 꿈에서 보는 풍경처럼. 리플릿에 적힌 큐레이터의 비평을 다리 삼아, 그림을 다시 보며 화면 속에서 산과 숲, 물과 공기의 이미지를 더듬어가며 그의 조국 불가리아의 먼 하늘과 산과 숲, 암석과 대지, 깊고 푸른 물줄기를 머릿속에 펼쳐보았다. 작업의 소재, 방식, 변천에 대한 정보와 작가의 배경까지 간략하지만 풍부한 설명은 딱 큐레이터가 제공해야 할 만큼의 맥락을 부여해 주고 감상을 펼쳐낼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특정한 해석을 제시하기보다, 감각을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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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되는 풍경, 그리고 그 안의 인간

Richard Misrach 개인전 2024.05.11 – 2024.06.15

*Richard Misrach(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주로 활동하며 미국사회의 사회, 정치, 환경적인 문제를 포착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사진이미지로 유명한 작가로 1970년대부터 컬러사진으로 자연과 인간으로 인한 영향들을 포착해 왔으며 이번 전시는 그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으로 기존의 시리즈와 최초 선보이는 작업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갤러리 1층은 1990년대 초부터 2019년까지의 작품들 중에서 On the Beach, Desert Cantos, Icarus Suite시리즈의 일부를 소개, 자연, 인간, 자연 속에서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모습들을 포착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갤러리 2층은 코비드 19 팬데믹기간 제작한 작품들로 하와이의 대나무숲을 다양한 방식으로 포착, 색과 조형적 이미지로 미학적 탐구하는 작품들 선보였다.


Review

같은 시기, 갤러리의 1층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던 이 사진전은 위층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그룹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다. 이태원의 플래그쉽스토어와 고급 상점들이 즐비한 대로에 위치한 통창을 지나 갤러리로 들어서자, 여름처럼 무더웠던 도심의 열기를 잊을 맞큼 서늘하고도 차분했다. 갤러리 내부를 가득 채운 대형 사진들은 단순히 ‘보는 대상’을 넘어, 그 안으로 관람자를 끌어들이는 크기와 밀도를 갖고 있었다. 검은색의 묵직한 기둥과 바닥, 서늘한 질감의 화이트벽면에 걸린 작품들은 그 앞에 선 사람이 그 사진의 풍경 속에 휩싸인 듯 느껴질 정도로 큰 사이즈였다. 아마도 광활한 그리고 인간 존재의 왜소함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자연의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그가 보여주는 자연은 광대함과 더불어 지극히 단순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맑은 바다, 붉게 물들어가는 낙조, 어떤 것이든 자연의 색과 풍경이 보여주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곱씹게 했다. 특히 Icarus Suite 시리즈는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파도 속으로 들어가는 인간의 찰나를 포착한 이미지들은 그 유명한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를 떠올리게 하며, 자연 속에 놓인 인간의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했다.

* 갤러리의 설명에 따르면, 작가는 피터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그리스 신화 이카루스의 추락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거대한 자연과 그 속에 적응해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 그 안에서 마치 자연 질서의 일부인 듯 묻히는 개인의 비극까지도 담담하게 그려냈고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다-에서 영감을 받아 이카루스 시리즈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더불어 그의 작업에서 자연은 위협적이기보다 오히려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바다, 빛과 색의 단순한 구성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지를 인식하게 했다. 그러나 그 감각은 불안이나 공포로 이어지기보다, 오히려 차분하고도 우아한 거리감 그리고 묘한 위화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보려 애쓰다가, 작품 표면의 유리가 나와 같은 관람자의 모습을 희미하게 반사하며,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나’ 역시 이미지 속에 포함시키는 장치처럼 작동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완전히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면서도, 동시에 감상이라는 행위를 자각하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https://www.pacegallery.com/exhibitions/richard-misrach-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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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그리고 하나의 이름

Yoshitomo Nara 《Ceramic Works》2024.05.11 – 2024.06.15

*일본의 저명한 작가 요시토모 나라(b.1959)의 개인전으로, 이번 전시는 2005년 이후 한국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이자 140점의 도자기 작업과 30점의 드로잉을 선보인 자리였다. 작가의 공간, 사유, 감정, 창작열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는 설치 환경이 전시장 내부에 조성되었고, 작가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작업 및 사물들 일부가 그의 작품과 함께 전시됐다.


Review

이 전시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고유의 특징적인 세계를 다시 확인하게 하는 자리였다. 나라 요시토모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캐릭터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하나의 인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회화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그 얼굴은 세라믹이라는 새로운 매체로 옮겨져서도 여전히 동일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매체의 변화는 그 이미지를 더욱 물질적인 대상으로 고정시켜, 하나의 ‘소유 가능한 대상’으로서, 콜렉터들의 소장욕구를 강화할 듯 보였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작가의 작업은 감상의 대상인 동시에, 동시대 미술시장에서 어떻게 작가의 캐릭터가 하나의 브랜드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처럼 느껴졌다. 반복되는 캐릭터는 곧 작가의 이름이자 서명이 되고,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로 유통되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었다.


https://www.pacegallery.com/exhibitions/yoshitomo-nara-ceramic-works/


확장되는 감각, 물질과 공간

Kohei Nawa 《Cosmic Sensibility》 2023.11.22 – 2024.01.06

*페이스 갤러리서울에서 열린 나와 코헤이의 첫 개인전으로, 신작 ‘스파크(Spark)’ 시리즈를 포함한 다섯 개의 연작에서 엄선된 회화와 조각 작품들을 선보였다. 다학제적인 작업을 통해 탐구한 과학 및 디지털 주제를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전통적이고 비전통적인 여러 재료를 활용해 그 고유한 특성을 이끌어내며 물리적 공간과 가상공간, 인공적인 힘과 자연적인 힘, 그리고 개인과 집단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었다.


Review

이번 전시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Spark’ 연작은 물질을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공간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로 공간 전체에 밀도와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작업은 더 이상 개별적인 오브제로 머물지 않고, 공간 전체를 하나의 감각으로 인지하도록 조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점점 더 미시적인 재료에서 거시적인 스케일로 확장되며,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요컨대, 전시에서 느껴진 것은 작품 각각의 형태들보다는, 물질이 만들어내는 상태와 흐름 그리고 그것들이 구성하고 있는 세계에 가까웠다.


https://www.pacegallery.com/exhibitions/kohei-nawa-cosmic-sensibility/


감각을 조직하는 공간

성북에서는 지역의 미술사가 시간을 따라 축적되는 과정, 송파에서는 지역의 제도가 방향을 만들어가는 과정, 잠실에서는 소비의 동선 속에서 감정이 환기되는 순간들을 마주했다면 이태원의 페이스갤러리는 미술시장의 주도적인 관심사들을 마주하는 경험이었다. 이곳의 전시들은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되고 축적되기보다, 서로 다른 감각과 방식들을 통해 동시대 미술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서 큐레이션은 단순한 배열이 아니라, 감각을 조직하는 하나의 언어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우연히 마주하는 경험이 아니라, 의도된 맥락 속에서 감각을 따라가게 되는 경험. 각각의 전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배치는 동시대 미술의 다각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관람은 단순히 작품을 ‘보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미술이 어떤 방식으로 제시되고, 읽히고, 유통되는지를 체감하는 일이기도 했다. 2025년의 전시들은 관람할 기회를 놓쳤지만,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들의 대표작과 신작들, 국내 미술사의 주요 작가들의 대표작과 신작들을 이어갔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아 이 공간을 찾게 된다면, 전시를 보기 위해서 기도 하겠지만, 더불어 동시대 미술시장에서 주목하는 감각을 구성하는 방식을 확인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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