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말의 뿌리를 찾아서

by 명경수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들어올까?


학자도 아닌 내가 우리말의 뿌리를 찾는다는 것이 황당무계한 일이다. 그렇지만 말이 지어진 배경을 알고 무릎을 치며 느꼈던 기분과 평소의 생각을 적은 메모장을 중심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함께 나누려 한다.


지구별에는 약 500만 년 전부터 인간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중 현생 인류가 집단생활을 하며 살아온 것은 약 20~30만 년 전이며, 동굴이나 묘지에서 글자가 확인된 것은 약 6,000년 전쯤이라고 한다. 이 글자들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말보다 글이 훨씬 일찍 있었다. 글자가 생기기 전에는 끈이나 돌멩이, 또는 다른 도구를 묶거나 쌓거나 나부끼게 하여 의사를 표시했을 것이다.


어른이 된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말은 하지만 글씨를 못 쓰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라는 책에는, 6,000년 전에 타이완에 살던 오스트로네시아인들에게 돼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해결책은 이미 사라진 조상 언어에서 파생된 현대어를 비교함으로써 규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의 뿌리를 따라가면 조상들의 과거 행적이 밝혀진다니 놀라울 뿐이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 주는 중요한 인간 여정의 중심이라고 여겨진다.


아기들이 말을 익히는 습관은 어떨까? 미국 워싱턴 대학교의 패트리샤 컬 박사는 아기들의 뇌를 관찰한 결과, 아기가 돌이 되면 ‘엄마’나 ‘맘마’처럼 의미 있는 단어를 말하는데, 이를 위해 아기들도 머릿속으로 말하기 연습을 한다고 밝혔다. 아기는 “안녀엉!”이나 “어엄마아!”처럼 천천히, 그리고 과장된 발음과 소리로 말할 때 더 잘 알아들었다. 그리고 아기는 모국어를 더 잘 배우는 것으로 연구 결과 나타났다.


아이가 부모 손에 이끌려 스킨십을 하며 또박또박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면 바로 동화된다 하니, 사랑은 어디에도 없는 최고의 명약이다. 이렇게 늘어나는 낱말 수는 2세 때 약 300개, 4세 때 1,500개, 5세 때에는 약 2,000개의 단어로 이야기를 할 줄 안다니, 인체의 신비를 실감하게 된다.


우리말의 신비와 유래


명상가이자 뇌 교육자인 이승헌의 책 『우리말의 비밀』에서는 ‘얼’, ‘얼굴’, ‘어린이’, ‘어른’, ‘어르신’이라는 말이 모두 ‘얼’의 변화된 말로 설명된다. ‘얼굴’이란 얼이 드나드는 굴이고, ‘어린이’, ‘어른’, ‘어르신’은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점차 나이 들어 감에 따라 각 시기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어린이’는 얼이 아직 여린 사람, ‘어른’은 얼이 익은 사람, ‘어르신’은 얼이 완숙하여 신과 같은 존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기를 뜻하는 사투리 ‘얼라’도 같은 의미이며, 말의 근원을 찾는 데 사투리는 값진 역할을 한다고 한다.


‘얼간이’는 얼이 간 사람, ‘어리석다’는 얼이 익지 않은 어설픈 상태, ‘어리둥절하다’와 ‘얼떨떨하다’는 얼이 흔들려 정신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말의 중심에 정신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유라시아 대륙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나라, 인구도 많지 않으면서 침략과 전쟁으로 국토가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고유한 말과 글을 잃지 않고 지켜온 것도, 결국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약 6,000여 개의 언어 중 인구 절반이 겨우 10여 개 언어만 사용하는 현실에서, 우리말의 생명력은 놀랍다. 『사랑의 온도』(이기주)라는 책에서는 ‘사랑’, ‘삶’, ‘사람’이라는 말이 모두 같은 뿌리에서 왔다는 흥미로운 설명도 있다.

나는 쉽지 않은 길을 나섰지만, 흥미진진하다. 어떤 언어학자나 인류학자라도 최초의 언어를 찾으려 시도하고 있겠지만, 아무리 탁월한 연구라도 결국 숙명적으로 가설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한다. 말의 원천을 상식의 수준에서 캐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호기심을 충족하는 데 그 좌표를 맞추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고(故) 이어령 교수는 “언어란 보이지 않는 상상의 실로 짜인 직물과 같다”고 했다. 백 번이고 공감한다.


장님 제 닭 잡듯 한 우리말 찾기 산책이지만, 자료를 더 들추어 재미를 더하고자 한다. ‘말’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말’은 ‘마’ + ‘알(얼)’이니 ‘마음의 알맹이’라는 뜻이다. ‘베개’는 ‘베다’에서, ‘봄’은 ‘보다’, ‘여름’은 ‘열다’, ‘돈’은 ‘돌다’에서 유래했다. ‘숲’은 ‘수풀’에서, ‘도시락’은 찬합 ‘도슭’에서, ‘노래’는 ‘놀다’에서 나왔다. ‘땅거미’는 ‘땅 + 검 + 이’의 합성어이며, 해가 지면 어두워져 땅이 검어진다는 뜻이다.

‘나비’는 ‘날다’에서, ‘돌산(여수)’은 돌이 많은 산이라는 뜻이고, ‘화랑대(서울)’는 신라 시대 화랑의 훈련장에서 유래했다. ‘가마골’은 가마솥처럼 생긴 지형에서, ‘마중물’은 우물이나 펌프에서 물을 끌어올릴 때 처음 붓는 물을 말하며, 작은 노력이 큰 결과로 이어지는 상징적인 표현으로도 쓰인다.

‘기러기’는 ‘기럭’이라는 울음소리에서, ‘마누라’는 마루 아래에 있는 사람이 마루 위에 있는 왕족 여인을 부르던 말 ‘마루하’에서 유래했다. ‘떼돈’은 강원도 정선에서 나무를 뗏목으로 서울까지 운반하고 두둑한 수고비를 받은 데서 비롯되었고, ‘떵떵거리고 산다’는 말은 장구 치며 여흥을 즐길 정도로 여유 있다는 뜻이다.

‘사랑’은 ‘사량(思量)’이 변한 한자어라는 설도 있고, 우리말과 뿌리가 같은 만주어 ‘사라’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아름답다’는 ‘알음답다’에서 나왔으며, 지식이 있을 만하다, 보기 좋다는 뜻이다. ‘쪼르륵’, ‘반짝반짝’ 같은 의성어·의태어는 소리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설레다’, ‘아스레하다’ 같은 단어는 한자어나 외래어로는 대체하기 어렵다.


어떤 작가는 우리말의 형용사나 부사가 워낙 정교해서 외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워, 아무리 훌륭한 문학 작품이라도 노벨문학상 받기는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한강 작가가 그런 우려를 잠재웠다. K컬처의 힘과 아픈 역사에서 오는 풍부한 글감, 국력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낸 성과다.


지명에도 말의 유래가 살아 있다. 경북 의성군 간장리는 ‘골짜기(澗)’가 ‘길다(長)’는 의미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간장 공장 투어’로도 유명하다. 전북 무주군 무풍면 만취리는 술에 취한 마을처럼 들리지만 ‘모두 이루어진다(萬就)’는 뜻이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월드컵리는 원래 ‘월곡리’였지만, 2002년 월드컵 열기에 감명받은 주민들이 개명했다.

충남 공주시 반포면 엉뚱리는 ‘엉뚱한 사람’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 ‘엉뚱’은 제주 방언으로 ‘언덕 위 돌무더기’를 뜻한다. 실제로 ‘엉뚱마을축제’도 열려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의 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조양강을 이루는 합류 지점으로, 두 물길이 ‘어우러진다’는 데서 유래했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도둑골은 전설에 따르면 도둑이 숨어 살았던 골짜기지만, 실제로는 범죄율 0%에 가까운 평화로운 마을이다.


내 경험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협력 업체 대표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식사 후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대표의 사모님과 악수를 나누며 내 이름을 밝히고 존함을 여쭈었더니 “유감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깜짝 놀라 죄송하다고 사과했더니, 사모님은 웃으며 “뭐가 죄송해요, 제 이름이 유감인걸요”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다섯 번째 딸로 자신을 낳고는 “아들이 아니라서 유감이야”라는 말 한마디를 남겼고, 이름을 유감으로 지었다고 한다. 파안대소하며 위로의 말을 전했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고두현 시인의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시를 읽었다. 남해 물건리의 경치와 가을 정취를 멋지게 묘사한 시였다. 물건리라는 지명이 특이해 그 유래가 궁금하여 남해군 삼동면 사무소에 전화해 보니, 여직원이 알려준 내용은 이렇다. 섬의 생김새가 마치 선비들이 바둑 두는 모습 같아, 예전에는 아낙네들이 머리에 수건을 못 쓰게 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물건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방조 어부림(천연기념물 제150호)도 있는데, 조수 피해를 막기 위한 인공 조림이 너무 아름다워 그 숲의 푸른빛이 물고기 떼를 부른다 하여 ‘어부림’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말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름 하나에도 기가 서리고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말대로 된다는 건 단순한 징크스가 아니다. 가수들도 노랫말대로 된다는 속설 때문에 함부로 지은 불길한 가사는 개사하기도 한다.


말에는 힘이 있다. 이름에도 운명이 서린다. 우리는 더 좋은 말, 더 따뜻한 말로 세상을 불러야 한다. 그래야 우리 정신과 육체는 더욱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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