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힘을 주는 말

by 명경수

이야기 하나


우리 동네 백년가게 현판이 달린 빵집이 있다. 이 가게는 매달 5일까지 현금으로 빵을 사면 빵값의 30%에 해당하는 할인권을 발급한다. 이 할인권은 같은 달 20일까지 사용할 수 있으며 산 빵값에서 할인권 금액만큼을 제하고 나머지만 내면 된다. 맛있는 빵을 착한 가격에 팔아 아침부터 항상 가게는 북적댄다.


이번 달인 4월 21일 월요일 아침에 아내가 “빵집 할인권을 안 썼네” 한다. 여주인에게 전화하면 안 해줄 거라고 말하며 평소에도 틈이 없는 분이라고 주인의 성격까지 집는다. 한참을 통화한 후 20일이 자기들이 정한 기준일인데 날짜가 지나 안 된다는 말을 한다고 했다. 아내는 상기된 표정으로 “관공서 납부금도 만기일이 휴일이면 뒷날까지 유효하며 또 일요일은 문을 닫는 휴일인데 안 된다니 한 동네에서 너무하다”하면서 할인권을 찢으려 한다. 여보 내가 가서 여주인과 이야기 한번 해보겠다고 하며 8300원짜리 할인권을 가지고 할 말을 미리 가다듬고 집을 나섰다.


빵집에 들어서니 조금 전 아내와 통화한 여주인은 바쁘게 빵을 포장하며 나를 힐끔 쳐다본다. 나는 조금 전에 사장님과 통화한 사람이 제 아내라고 말하니 어색하게 “예” 하면서 인사를 건넨다. ”아내에게 내가 가서 여쭤볼게요, 그런 정도 가지고 안 된다고 하실 분이 아닌데 내가 가면 인사도 잘 하시고 또 좀 많이 사면 덤으로 빵이나 쿠키도 주시던데“ 했다. 표정이 온화해지면서 “내가 안 된다고는 말 안 했는데요” 하신다. 꼭 마지막 날 와서 해달라는 분이 많아 혼란하기는 하다며 필요한 빵을 골라보라고 한다. “그렇지요 한 동네에서 오래 보고 지냈는데 이런 일로 멀어지면 서로 뭐가 좋겠습니까.”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평소 먹을 양보다 좀 많이 사서 돌아왔다. 8300원 할인을 받고 빵을 산 것보다 아내와의 관계가 회복되어 해방감에 즐겁게 샌드 위치를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였다.


이야기 둘


내가 회사에 근무할 때 인사노무 파트에서 주로 일하였다. 과장 시절 회사 노동조합소속의 근로자들이 소송을 제기하여 노사 관계에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런 갈등이 생기면 생산성도 떨어지고 기강도 무너지기에 빨리 그리고 근본적인 해결을 하여야 한다. 나는 법률고문을 찾아 상담을 하며 대책을 논의한 후 2주일이 지나서 다시 소송에 필요한 답변서를 준비해서 방문하였다. 나는 법률고문과 고문을 도우는 협력 변호사와 함께 변론 준비 회의를 하였다. 준비한 답변서를 보며 집요한 질문과 법적 근거를 확인하고 수정을 거쳐 법원에 제출할 답변서를 여직원에게 타이핑하라고 지시하였다. 완성된 답변서를 같이 읽어보면서 또 수정을 하였다. 사실은 내가 준비해 간 내용과 크게 달라진 것은 별반 없이 법적인 전문 용어로 수정된 정도인데 법률고문이 소송의 내용을 파악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법률고문은 완성된 답변서를 보며 내 이름으로 답변서를 제출할 게 아니고 “변호사 황 ㅇㅇ으로 해야 되는데, 내가 한 게 없는데” 하신다. 법률고문은 그 당시 사법고시를 볼 때는 노동법은 1차 고시에 객관식 몇 문제 정도 출제되기에 거의 다른 공부에 집중하여 노동법은 잘 모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암울한 군사 정권 때이므로 노동법이 홀대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 당시를 회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상대방을 칭찬하는데 익숙한 분은 일찍이 만난 적이 없었다. 소송이 한참 진행된 후 법률고문은 나에 대하여 우리 회사 회장을 만날 기회에도 잘 말씀을 드렸다고 하였다. 나는 법률고문의 말에 한껏 고무되어 더욱 업무에 정진하였다. 칭찬에 부합되는 사람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하여 더 중요한 일을 맡아 회사에 헌신한 기억이 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라는 말이 있다. 제임스 스톡데일(James stockdale)이라는 해군 장교의 경험에서 유래되었다. 그가 베트남 전쟁 중 포로로 붙잡혀 포로 수용소에서 8년 동안 극심한 고문을 겪었다. 다른 포로들은 매년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이 지나면 풀려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풀려나지 못하면 좌절하여 죽는 미군들도 많았다. 이와 반대로 스톡데일은 현실의 가혹함을 받아들이면서 이번이 아니라 언젠가는 석방될 것이라는 믿음을 간직하였다. 많은 수용소 군인들에게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불러주었다. 스톡데일은 포로 생활 중 동료들과의 소통이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험하였다. 그는 독방에서 종이에 기호를 적어 다른 포로들과 의사소통을 했다. 미래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과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함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야 말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하겠다.


용기 있고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국면을 바꾸는 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조금만 시각을 바꿔서 말 한마디만 상대의 입장에서 건네면 관계가 회복된다. 우리는 허황된 인기 영합의 태도를 벗어나 정직하고 선한 양심으로 힘을 주는 말하기를 일상화하면 얼마나 삶이 풍요해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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