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반만 따라가라!
이번에는 멀리 말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이 수치를 무릅쓰고 내 주변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의 자식농사는 딸과 아들 둘을 두었다. 나는 직장생활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고 자녀 교육은 아내가 맡았다. 딸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뜻대로 잘 따라 공부도 잘 하였고 영어 과외나 예체능 과외도 좋아하여 많이 시켰다. 반면 세 살 어린 아들은 공부보다 장난감, 게임기로 노는 것과 만화영화와 맛있는 패스트푸드를 즐겼다. 특별히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하여 복장을 갖추고 흉내도 내고 나중에는 동아리 활동도 즐겨하였다.
학교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학원 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다. 아내는 딸만큼의 학업 성적을 내려고 더 많은 과외로 학원을 다니게 하였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제발 ‘누나 반만 따라가라!’ 누나는 성적이 이런데 너는 왜 이러냐, 누나한테 물어봐라 하며 아들을 공부시키는 모든 기준이 누나를 모델로 삼았다. 아들은 그렇게 하면 할 수록 더욱 누나에 대한 반감과 부모의 교육 방법에 표정이나 행동으로 거부감을 나타내었다. 학교를 안 가거나 가출을 한 적은 없지만, 학교 성적이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학원도 건성으로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려 그들의 관심사인 컴퓨터 게임과 좋아하는 연예인동정에 빠져 있었다.
한 번은 누나가 동생을 타이르며 공부를 가르치며 나눈 대화 중에 “우리 집에 나는 없고 누나만 있지 않냐.”하며 누나에게도 불만을 실토하였다고 아내가 전해주었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 각자 가정을 가진 지금 되돌아보면 각자의 특성에 맞는 공부나 특기를 키우는 게 맞지 않았나 싶다. 첫 자식에게 부모의 모든걸 쏟았고 결과가 나쁘지 않으니까 둘째 아이도 같은 교육 방법을 택한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된다. 수많은 날 누나와 비교해 질책을 받았으니 얼마나 상처가 컸을까! 지금도 부모의 이야기에 순종하는 것 보다 자기 방식대로 판단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걸 보면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들은 말이 칭찬보다는 누나에 대한 편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트라우마라고 생각하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자식농사에는 시행착오는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해당되는 자식은 부모의 희생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자식의 특성과 좋아하는 것을 잘 관찰하여 선택을 하여야 한다고 본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갖는 요즘은 더욱더 중요한 판단을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형 만큼만 해라
사위도 형제간의 갈등을 안고 있다. 장인인 나에게 자기 집안의 약점을 말하기보다 사위의 고민을 나에게 물어 현명한 답을 구하려는 취지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사돈 어른이 2년 전 몹쓸 병환을 얻어 갑자기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며 큰 아들인 사위에게 재산의 분할 계획을 유언으로 남기고 하직하셨는데, 사후에 재산을 분할하는 과정에서 사위의 동생이 아버지의 유언대로 할 수 없고 법적인 기준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이유는 성장하면서 아버지한테 많은 상처를 받았고 성장 후인 지금은 아버지 뜻대로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 상처의 중심에 형인 사위가 있다. 아버지는 항상 “형만큼만 해라”는 말을 수 없이 하였고 형이 없을 때 아버지로부터 너무 심한 말을 들어서 평생 가슴에 못이 박혀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즉답은 피하고 화목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만 하였다.
결국 사위는 딸과 상의하여 자기몫을 동생 쪽으로 상당히 넘겨주며 아버지의 뜻은 어느정도 지켰다고 하였다. 본인들의 뜻은 아니지만 딸과 사위는 결혼 전에 각자 동생들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된 셈이다. 지금 그들에게는 아들 둘 딸 하나를 키우고 있다. 손주들도 공교롭게 장남인 큰 손주가 제일 명석하고 부모 말을 잘 따르고 있다. 이들은 둘째나 세 째 에게 최소한 형이나 오빠같이 하라고 하지는 않고 각자의 특성대로 키우고 있다. 두 사람이 의도치 않게 동생에게 준 상처를 되새기며 자식들 교육에 선용하는 그들에게 안심과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