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국면(판)을 바꾸는 말 1

by 명경수

30년 넘게 한 직장에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인사업무에 오랫동안 일을 하였기에 때로는 사람의 이면과 속으로 들어 가기 위해 많은 노력과 준비를 하였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회사 수준에 맞는 사람을 찾거나 만들어 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한 회사가 특별한 목적이나 인간 군상들만의 집합체가 아니기에 나의 이 이야기는 10-20년 전의 한국의 보통사람들의 단면쯤 된다고 봐도 손색없는 추측이다.


불청객의 등장


A는 부장으로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는 회사의 적법하지 못한 일을 물고 늘어져 줄다리기를 심하게 하며 나갔기에 퇴직 후에도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평소 말 하는 태도나 자세도 불만으로 가득하다. 묻는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그렇게 묻는 이유나 배경을 궁금해한다. 나중에 자기에게 돌아올 책임을 줄이려는 피해 의식인지는 몰라도 심사가 꾀 복잡하다.

기획, 총무, 공장 관리 등 여러 업무를 맡아 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상급자는 같이 일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분류하여 전출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청소년기를 잘못 보냈는지? 부모 형제와의 성장 과정도 의심스럽다. 부정적인 한 사람의 입사는 회사의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적으로 쓰게 되어 회사의 경쟁력과 사기에도 큰 손실을 입힌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정말로 맞는 말이다.


형님 덕분에 약 잘 먹고 있습니다


A 부장이 퇴직 간부 모임에 참석하였다. 그만 둔지 1년 가까이 지난 뒤였다. 그동안 통 소식이 없다가 왜 나왔냐고 묻지는 않았지만 웬일인가하기도 하고, 분위기도 싸늘하다. 문제를 일으키고 퇴직한 간부는 나오지 말라는 기준은 없다. 겉으로만 봐도 모임에 나온 20 여 명과 편하게 담소하며 정감 넘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퇴직 후 현역이나 퇴직자의 경조사에도 일체의 발품을 팔지 않았으니 냉랭한 기류인 것은 당연지사이다. 잊힌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서먹서먹한 분위기에서도 일반적인 회사 안팎의 이야기에 반주를 곁들이며 모처럼 화기애애한 시간이 제법 흘렀다.


결국 화제를 바꾼 사람은 모임의 좌장인 B 부사장이다.

“A부장! 그동안 통 연락이 없더니, 어떻게 지냈어?” 하신다.

“형님 덕분에 약은 열심히 먹고 있습니다.” A부장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온 식당이 정전이 된 것 같은 침묵이 흘렸다.

“이 사람이 내가 언제 당신 같은 동생을 두었나? 어디다 대놓고 형님, 형님 하는 거야!”

A부장은 작심한듯 “형님 덕분에 열 받고 죽은 사람도 있는데, 알건 좀 알아야 죠.”한다.

사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띠 동갑도 넘는다. 그리고 이 자리가 퇴직자들의 간부모임 자리니 현역 시절의 직함을 부르며 대화를 이어 나가는 자리인데 친밀감이 제로인 상태에서 형님이란 호칭은 의도된 비아냥거림으로 들린다.

분위기를 감지한 B부사장은 “저런 친구가 계속 나온다면 앞으로 나는 이 모임에 나오지 않겠다.”하며 서둘러 자리를 뜬다.


실은 현역으로 있을 때 A부장은 B부사장에게 회의 석상에서 자기 치적을 늘어 놓는 보고를 듣다 말고 서둘러 중단을 시키며 “자기가 잘 한 것을 보고하려고 전임자를 물에 잡아넣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태도다”고 힐난한 바 있다. 그리고 근거 없이 둘러대는 보고를 하는 간부들은 사실관계를 잘 따지고 확인하는 B부사장에게 크게 한 두 번 혼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부하들에게 싫은 소리 안하고 환심만 사려는 임원들의 스타일과는 정반대의 인물인 B부사장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명확하게 나뉘어 졌다. 그렇지만 친목단체가 아닌 일을 하는 조직에서는 이런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조직에서 내는 소리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화음부터 시끄럽고 화나는 소음까지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다. 누가 사람을 함부로 뽑아 만들어 쓰겠다고 하는가?

이날의 모임은 다음 일정도 잡지 못하고 서둘러 끝내고, 몇몇 사람들과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며 회의의 존속을 위한 궁리를 하며 득실이 없는 회의를 끝내고 무거운 걸음으로 귀가를 서둘렀다.

‘퇴직간부모임’을 ‘명예퇴직간부모임’ 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스스로에게 여기에 해당되는지를 묻기로 하며 실추된 명예를 곧추 세우는 최소한의 양심적 장치를 하였다.


유조선 충돌 사고로 인한 해양오염은 복원을 위하여 많은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는 심각한 것인 것과 같이 말의 오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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