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더운 여름이다. 싱가포르에서 온 딸 가족들도 헉헉댄다. 사위는 32도 정도면 조깅도 40분은 거뜬하다고 했는데, 40도에 육박하는 염천에는 엄두도 낼 수가 없다. 적도에서 통상 경험하는 더위를 초월하는 느낌이라고 놀란다.
철새들이 와서 겨울에 보름, 여름에는 통상 달포 정도 거류하는데, 올해는 2개월을 계획하고 애들에게 맞춤 프로그램을 잤다. 아이들 병원 투어, 딸 사위의 정기 검진, 학원 공부에 드럼, 축구 실기, 예능 학원 등 숨 가쁘다. 외국에서 온 한국 아이들이 하는 통상의 과정이란다.
모처럼 빈 일정을 잡아, 7월 초에 2박 3일 양양을 다녀왔다.
거의 아이들 위주로 푹 쉬면서 물과 친하게 보내는 계획이다.
그런데 둘째 날 사위가 저녁에 노래방을 예약하였다. 17년 만에 사위의 노래를 들을 기회이자 애들이 부르는 노래가 무척 궁금했다.
나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 7명의 선수들에게 상금을 걸었다. 1등 5만 원, 2등 3만 원, 3등 2만 원의 상금이다. 그리고 1등에겐 앙코르곡을 부를 기회를 준다고 선포하였다. 그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바로 시합을 하지 말고 연습 시간을 주세요”
연습 때 100점 받은 곡을 본선에 해도 되는지? 변성기라서 고음이 잘 안 나오는데 참작해달라는 등 애착이 대단하다.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10대 들의 오빠들은 랩(rap)을 불렀고, 딸 사위는 학창 시절의 히트곡을 선택하였으며 나와 아내는 흘러간 3,40년 전의 애창곡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7살 막내 손녀의 상금에 대한 애착과 태도는 오빠들을 앞질렀다. 연습 때 86점을 받은 곡으로 본선에 나서서 100점을 받았다.
‘소향’이란 가수가 부른 ‘가슴만 알죠’였다.
그대 그리움에 또 하루가 그대 보고 싶어 눈 감아요
자꾸만 내 곁을 멀어지는 그대 모습
안 돼요 안 돼요 안돼
< 중략 >
사랑한 만큼 아픈가 봐요 사랑하면 안 될 사람이라서
눈이 멀어도 귀가 막힌 데도
그대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 가슴만 알죠
< 생 략 >
이런 노랫말을 지닌 노래였다. 소향이란 가수는 워낙 가창력이 뛰어나고 활동도 왕성하여 좋아하는 가수였지만, 솔직히 나는 그때 처음 듣는 곡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곡은 7년 전 모 방송국에서, 100년 전 조선 최초 소프라노 가수였던 윤심덕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드라마(사의 찬미)의 OST였다.
천재 극작가 김우진과의 비운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인데 가슴 절절한 가사가 드라마의 줄거리를 가늠케 하였다.
노랫말의 뜻도 알기 어려운 곡을 어떻게 알고 불렸을까? 궁금하여 딸에게 물었다.
기상천외한 답변이 돌아왔다.
손녀가 유치원 다닐 때부터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말레이시아 아저씨가 소향을 너무 좋아하여 등 하교 때마다 항상 소향의 노래만 틀어 놓는다는 것이다. 뜻도 모르고 항상 듣다가 집에서도 소향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 후 한 번은 엄마의 노트북으로 소향의 노래를 검색해 알고 난 뒤부터 제대로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하얀 백지 위에 검은 묵으로 그리면 수묵화도 되고 물감으로 그리면 채색화도 된다. 백지의 어린이에게 어떤 옷을 입힐까? 부모들은 많은 고민일 테다. 더군다나 피아노와 발레를 배우며 소녀의 감성과 균형 잡힌 성장을 모토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마냥 박수만 칠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짬짬이 여가를 선용한다고 여길지는 모르나 동요와 교회 찬양곡을 꾸준히 부르며 만화 주제가도 좋아하는데, 대중가요의 중독성은 순수음악을 압도하여 어린이들을 이렇게 사로잡는가?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 사이의 비무장 지대에서 발생한 일이다.
성장할 때까지는 동요나 가곡이나 클래식 소품곡들을 충분히 접하고 나서 그 위에 자기가 좋아하는 K pop이나 다른 분야로 가야만 감성의 올바른 이입(移入) 있다고 여겨진다.
어린이의 성대로 지나친 고음이나 꺾기 창법으로 기성 가수를 흉내 내는 것은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지양되어야 할 어른들의 숙제이다. 아마도 스쿨버스 안에서만 붙어사는 날파리도 이렇게 한 가수의 음악만 들으면 낮은 비상과 느린 선회로 음악에 익숙해 질지도 모를 일이다.
가요의 노랫말은 사별, 이별, 사랑 등 어린이들이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워 정서상 좋을 리가 만무하다.
잘하고 못하는 것을 떠나서 나는 놀랐을 뿐이며, 다만 도전 의식이나 용기는 가상하였다.
손녀가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반듯하고 당당히 서서 한 손으로 마이크를 움켜쥐고 느린 노래의 박자나 가사 전달에 혼신을 다하여 100 점을 받으니, 오빠들이 좋아하면서도 두 번 같은 곡을 불러서 나온 점수는 반칙이라고 불만이 터져 나온다.
아이들의 주장과 항변을 모두 반영하여, 한 번 불러 99점 받은 큰 오빠와 두 번 불러 100점 받은 작은 오빠와 손녀를 공동 1등으로 수상하며 상금은 똑 같이 3만 원으로 결정하는 운영의 묘를 발휘하고 수상자 모두 앙코르곡을 부르며 가족 노래대항은 열기 넘치고 재미있게 마쳤다.
그러나 감수성이 이렇게 일찍 발동하니 어른들도 긴장하여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도 K pop은 같은 버스를 탓 던 많은 외국 국적의 어린이들의 뇌리에 박혀 일상 속에서 흥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한국문화에 취한 버스 기사에게 감사라도 해야 할 일이지만, 수업의 연장인 스쿨버스 안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는 선별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류의 열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문제를 고민하는 결자해지의 정신이 필요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