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넘어서는 경지
# 며느리를 한 번 혼내 줘야겠다 고 단단히 벼른 시어머니는 가족들이 다 모이는 집안행사에 오면서 핸드백 한 편에 준비해 온 에이프런을 보았다. 모든 것이 눈 녹듯 다 없어졌다. 이기적이고 어른들은 안중에도 없이 거침없는 바른말과 앞서는 행동에 그동안 못 마땅하였다. 그러나 태산 같은 설거지에 당당하게 나서며 준비하는 마음이 너무 예뻤다.
“내가 이제껏 잘 참았다.” 시어머니의 자화자찬이다.
이건 친구와 편한 이야기중에 들려준 이야기다.
# 지구를 괴롭히는 인간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지구가 나섰다.
인간들끼리 잘 살아 보려고 석탄, 석유 같은 화학연료를 사용하여 전기를 만들고 거리에 자동차는 넘쳐나고, 육식이 가장 중요한 단백질원이라고 대단위 공장처럼 소를 키웠다.
그 결과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가 온실효과를 만든다. 기온은 상승하여 늘 에어컨을 켠다. 프레온가스 또한 온실가스의 주범이다.
고온과 폭풍우로 산불과 홍수를 세계 곳곳에 선사한다. 지난 100년간 바닷물의 높이가 약 10~20cm 높아졌다. 극지의 빙하가 다 녹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자연은 혹사하지 말고 신이 주신 본래의 모습으로 가라고 크게 노하신다.
폭풍우나 회오리바람은 하늘과 땅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천지의 말도 절실할 때 짧게 말할 뿐이다. 인간이 바로 알아듣고 자연을 본래 모습대로 유지 보존하는 것뿐이다.
# 사람과 항상 붙어 생활하는 동물들도 최고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무언의 신뢰와 교감이 우선이다. 아라비아 상인이 낙타를 대할 때도 한낮에 주인을 사막에 내동댕이치고 달아나지 않게 입장이 바뀌는 저녁 시간부터 버릇을 길들여야 한다.
‘레트리버’라는 시각 장애인 안내견은 온순하고 사람을 좋아하지만, 일반인들은 무관심하게 대하고 마음으로만 격려하고 지나가야지 하네스*를 만지거나 푸는 행위를 마음대로 하면 위험하다.
* 하네스(harness) 동물의 어깨와 가슴에 채우는 줄
경주마는 두말할 나위 없다. 기수와 숙식을 같이 할 정도가 되어야 최고 기량으로 경주에 임할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기수의 감정이 말의 행동과 상태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고 한 몸같이 교감할 때 말은 기수를 기쁘게 해 주려고 전력 질주하는 본능을 발휘한다. 영리한 말과는 한 가족처럼 지내야 한다. 스킨십, 영양식, 마사지, 휴식과 운동 등 세심한 배려가 절대적이다.
#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새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어떤 종류의 새는 주기적으로 머리에 기생하는 진드기를 제거해야 한다. 진드기를 제거해 달라는 다른 새의 부탁을 조건 없이 들어주는 선심파 유형과 다른 새에게 부탁만 하지 막상 자신은 베풀지 않는 이기파가 있다. 마지막 유형은 처음에는 누구의 부탁이든 들어주지만, 다음부터는 자기에게 보답을 하지 않는 새의 부탁은 무시하고 꾸준히 보답하는 새에게만 자신도 진드기 잡기를 해주는 나이스파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도 나이스파가 번성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이른다 내가 한 번 베푸니 너도 한 번 갚아주는 팃포탯(tit- for- tat: 앙갚음)의 생존 전략이 그들의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다는 것이다.
주고받음이 없을 때의 현상
# 경기도 포천시의 국립 광릉 수목원에서 ‘전생치수(前生稚樹)’라는 생소한 말을 접하였다. 어린 나무가 숲 속에서 자라면서 주변 큰 나무와의 경쟁이 불리하게 되면, 스스로 광합성을 해서 얻어지는 에너지와 호흡을 통해 소비되는 에너지를 일치시켜 나무가 크지도 죽지도 않고 일정 기간 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는 단계를 전생치수 단계라고 한다. 즉 큰 나무 옆에서 양분이 부족하여 살지도 죽지도 않고 성장을 멈춘 단계이다. 오죽하면 성장을 멈추었을까? 고뇌에 찬 처절한 결정이다.
도움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는 대대로 이어온 기억의 유전자를 동원하여 변신 밖에 방법이 없는 것이다. 곰이나 뱀의 동면과도 같은 생존 전략이라고 하겠다.
니체는 기억은 놀라울 만큼 힘을 가졌다고 했다. 또 기억은 인간이 가진 성질이며, 세상 만물도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대 철학자의 통찰에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 벌은 꽃에서 꿀과 꽃가루를 얻어 자신의 먹이를 만들고 꽃은 벌이 옮겨주는 수분(꽃가루 전달)을 통해 번식할 수 있다. 세계 식량 작물 87종은 약 75%가 수분 활동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이 자연현상에 경종이 울렸다. 지나친 농약 살포, 기후의 변화, 서식지 감소로 인해 꿀벌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하루에도 수 천 송이의 꽃을 찾는 꿀벌의 역할을 사람이 할 수 있을까? 꿀벌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인간이 조성하여야 한다. 씨 맺는 야채나 과일을 먹는 행위는 인간의 원초적인 습생이다. 이 숭고한 공생(mutualism) 관계를 청산하고 인간이 혼자의 힘으로 독야청청 살아갈 수는 없다. 가장 자연스러운 관계가 인위적으로 바뀔 때 인간의 건강과 수명에도 적신호가 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너 살고 나 사는 가장 아름다운 생존의 등식인 공생이 위기를 만난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첫 문장이 생각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문장을 주고받음의 이치에서 ‘안나 카레니나 법칙’을 친구(대인) 관계로 적용해 보자면, “원만한 친구(대인) 관계는 모두 엇비슷하고 모난 친구(대인) 관계는 제각기 이유가 다르다.”
원만하지 못하고 모난 친구 관계를 이루는 사람들의 제각기 이유는 이렇다.
자기 자랑이 많은 사람,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중간에 끊거나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우위에 있다고 착각을 한다.
인색한 사람, 금전 관계가 불확실한 사람, 남의 말을 많이 하며 편을 가르거나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과는 가까이하는 것을 꺼린다.
이것 말고도 불필요한 정보를 누설하여 모두를 곤경에 처하기도 하고 약속 시간을 예사로 어기며 변명이 장황하다. 이런 것을 본인이 모른다는 게 더욱 안타깝다.
이런 사람과는 주고받음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억지로 연관이 된다 해도 아름다운 공생 관계는 기대할 수 없다.
주고받음의 관계는 받기를 전제로 하면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저 베푼다, 봉사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해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갈수기에 제 논에만 물 대기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의 농심으로는 답이 없다.
남의 논부터 물꼬를 돌려야 한다.
말이 필요 없는 주고받음의 생존 질서를 위해 내가 가야 할 길을 정립하자.
공자는 날 때부터 아는 사람(生而知之)은 으뜸이요, 배워서 아는 사람(學而知之)은 그다음이라고 했다. 누가 앞서 가는 자이며 기브 엔 테이크에 맞는 사람인지는 일러 무엇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