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아내의 충고

입에 쓴 약이 명약

by 명경수

아내가 남편을 챙기고 충고를 늘어놓는 것은 크게 보면 사랑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충고인지 잔소리인지 구분이 모호하다.

말하는 사람은 잘못이나 허물을 충심으로 타이른다고 생각하고, 듣는 사람은 듣기 싫게 필요 이상으로 참견하거나 꾸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용어가 무엇인들 문제인가? 충고나 잔소리가 없어지는 것이 답이요 화목의 근원일 것이다.


아내는 공격자요 남편인 나는 방어자의 형태다.

깊게 불안의 골이 져 있다.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아내의 충고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재발을 없애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 일 수도 있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대체로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회사 안팎의 사람들과 만남도 많았고, 회식도 1차 2차는 기본이었다. 거기에다 운동이나 공부를 하고 돌아오면 거의 자정 가까울 때가 많았다. 지금 회상하면 끌려 다녔던 시간도 없었던 게 아니지만, 직장의 생태로 보면 팀워크의 중요성 때문에 개인행동은 극도로 지양되었다.


한참 일 할 때는 한 주의 빡빡한 스케줄로 연일 늦은 시간에 귀가하니 애들의 자는 모습만을 볼 때가 많았고, 주말에나 같이 놀기도 하고 외식도 하였다.


남편의 귀가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내가 다닌 직장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는 토요일은 모두 정상 근무를 하였고 일요일도 격주로 쉴 정도로 일에 묻혀서 살았다. 가사에 도움도 못 주고 교육도 당연히 아내 몫이 되었다.


아내는 퇴근 시간을 당기고 싶어서 나의 일정을 샅샅이 파악하고 확인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당연히 의견차이도 생기고 마찰도 생겼다. 개선을 요구하였고 나는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좁히기 어려웠다. 불필요한 활동을 자제하고 아이들의 방과 후 라도 책임지라고 강요하였다.

일을 하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기적인 가장이라고 치부하였다.


아내는 내가 책을 읽든, 그림을 그리든,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든 몰입하면 전화하는 것도 잊은 채 전후 좌우도 살피지 않는 게 큰 단점이라고 꼬집는다.

세상이 바뀐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며 평생을 갚아야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다.


이제부터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며 사랑받을 행동만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쌓인 불만도 내가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대부분 해소가 되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때의 남편으로부터 생긴 스트레스가 앙금으로 남아 지금도 모든 일거수일투족에 충고를 일삼는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40년을 같이 살아도 서로에게 모르는 게 많다. 과거의 깊은 골에서 생긴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두 사람이 한 방향을 직시하며 살지 않은 결과라고 여겨진다.


“오늘은 참 그래”라는 흐리는 말 뒤에 무슨 말이 생략되었는지?

방향을 못 잡을 때도 있고,

“여보 오는 뭐 먹어?” 할 때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한참 읊어도 적중되는 게 없는 날이 많다. 주말에 집중되는 일을 가진 아내는 여유가 생기는 모처럼의 월요일을 보석처럼 소중히 아껴 사용한다.

브런치 메뉴로 창 넓은 카페테리아의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커피와 빵을 곁들인 이탈리안 음식이나 스테이크를 선호한다. 이것이 주말을 숨 가쁘게 보낸 보상이라고 생각 함이 틀림없다.

실상 같이 해 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식단은 아니다. 한 번도 혼자라면 그런 메뉴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무드가 없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여자를 몰이해하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나의 행동을 결정하는 바탕에는 성장기의 환경과 척박한 문화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이 투사(投射)된 것이 현재라고 일갈한다.



아내에게 실패한 이기적인 남자라도 항변거리는 없는 게 아니다.

성인이나 세인들에게 크게 이름을 떨친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보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고향 나사렛을 찾았다. 마을 회당에서 동네 사람들을 가르쳤다. 사람들이 듣고 놀라며 말하였다.

“저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어디서 얻었을까? 저 사람의 이런 지혜와 놀라운 힘이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이냐? 저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이며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 아니냐? 저 사람의 누이동생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않느냐? 그러고서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다.

예수님은 “예언자가 고향과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13장, 마가복음 6장, 누가복음 4장 참조)


우리가 흔히 잘 안다고 하는 것이 내가 과거부터 알고 있는 것(학력, 재력, 직업, 부모 영향력 등) 속으로 모든 것을 가두어 버린다.


예수님도 자기 동네 사람들의 태도를 이상히 여겨 아무 권능도 행하지 않고 소수의 병자에게만 안수를 하였다. 랍비 학교 출신도 아닌 목수 출신인 천민에 불과하다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그 권능과 지혜를 목격하고서도 예수를 멸시하였다.


하물며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욱 남편의 평소 밖에서 하는 말과 행동의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가장 가까이서 보는 사람은 이해하기보다 표리부동한 사람이라고 취급할 것이다.


그렇지만 가정이란 가족들이 가장 편하고 해이한 상태에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대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정죄의 대상일 순 없다. 직업상 다른 사람을 교육하고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의도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평소 불만이 쌓인 관계에서는 집 안 사람의 신뢰와 믿음을 얻기가 더욱 어렵다고 생각한다.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서 인정받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다.


흔히 세계 3대 악처라는 사람들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Xantippe), 오스트리아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베버(Constanze Weber),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Sofya Andreyevna Tolstaya)이다.


이 악처라는 프레임은 분명히 남자들이 씌웠을 것이다.

모두가 자기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인데 집안에서의 소소한 갈등이나 불만은 아내들이 감내하고 묵묵히 남편을 섬기지 못했다는 세인들의 판단이라고 믿는다.



못 생긴 소크라테스는 남루한 복장을 하고 아테네 시가지를 배회하며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 철학적 담론을 일삼았다. 그것도 자신이 생각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물고 늘어졌으니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석공 집안에서 물려받은 석공소 일은 아내에게 맡기고 생계를 위한 노동은 하지도 않았다. 강연과 담론을 하다가 갑자기 사람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기도 하였다. 30살 정도 어린 부인 크산티페는 귀족 출신이며 세 자녀의 양육과 생계까지 책임지는 부인의 말이 잔소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분노에 찬 절규라고 해야 맞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는 9년이라는 짧은 결혼생활 동안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네 아이가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결혼 후 오페라 두 편(피가로의 결혼, 돈조반니) 이 큰 성공을 거두지만 부(富)를 이루지 못하고 빚만 늘어났다. 4년 동안 유럽 각 도시를 돌며 연주회를 열었지만, 성공하지도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병마까지 찾아왔다. 돈이 없어 합장을 하였고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 체 지금의 묘는 기념비만 세워졌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작곡가로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실패한 모차르트가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내의 비협조와 잔소리로 돌려 곱게 보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민중에게 성자로 추앙을 받았지만, 소피아와 서른 두 해를 같이 살면서 자녀 열셋을 두었다. 톨스토이는 아이를 모성으로 길러야 한다고 하며 절대로 유모를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 아이들에게 물 한 모금도 먹이지 않았고 5분의 시간도 절약하며 육아와 교육을 책임져도 아내를 도운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천하의 악필인 톨스토이의 초고로 쓴 글을 반듯하게 적는 일도 아내 몫이었다. 아내의 결정적인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일은 아무 상의도 없이 어느 날 자신의 재산과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한 일이다.

소피아는 악처이기보다 남편의 성공에 크게 공헌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평하는 악처들은 남편의 출세와 성공에 희생양이 된 사람들인데 반하여, 나는 성공을 하는 과정에서 아내에게 육아와 교육과 살림을 다 맡긴 것도 아니기에 이유 있는 충고에 경청하고 달라져야 한다.


유럽 다수의 국가가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시기가 20세기 초반인 점을 감안하면 3대 악처라는 여성들의 주장은 무시됨은 말할 것도 없고 입 밖에도 꺼 낼 수도 없었고 인내하고 살았음이 옳다. 100년이 지난 지금은 여성인권이 제도화되고 많이 부각되었기에 내가 페미니스트는 아닐지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지금은 인생 후반부를 충고 없고 화목하게 가는 게 출세라는 인식이 절대적이다.

성공한 세 남자들이 여자의 충고 든 잔소리를 먹고살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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