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딸의 치사랑

by 명경수


그 절실하고 강력한 단행



이것은 말로 되는 일이 아니다. 엄마와의 수많은 통화와 교감의 산물이다. 띠 동갑의 딸과 엄마는 지나고 보니 잘 맞는다. 맞은 게 아니고 딸이 엄마의 요구와 계획에 잘 따른다. 엄마를 사랑하는 딸만의 방법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였고 강력하고 절실한 기도의 결과로 이룬 이적(異蹟)이 옳다.


엄마는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웨딩과 관련된) 일을 시작하였다. 딸은 동생을 돌보며 과외 공부나 엄마가 계획해 놓은 일과를 잘 따라야 했다. 나는 출근하면 회사에 메여 저녁이 되어서야 귀가하였다. 아이들은 엄마의 멀티태스킹(Multitasking)에 순응하며 하루하루에 충실하였다.


출근할 때 아이들의 점심 식사와 간식까지 챙겨 놓고 수시로 아이들과 전화하여 일과를 확인하며 원격 조정하는 1인 3역을 담당하였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기 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든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가족 지향적이 못한 나의 직장 생활 태도에 머리가 숙여진다. 내가 우직하게 한 길만 고집하지 않고 좀 더 아이들의 교육을 헌신적으로 담당했더라면 자식들의 오늘이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다.


정지는 곧 도태를 말하지만, 아내는 시행착오와 변화를 거쳐 이제는 전문가의 경지에 올랐다. 고객들이 일생에 한두 번 경험하는 대사(大事)에 정성을 다하였다.

세태의 변화와 함께 고객들의 요구나 패턴도 다양하게 바뀌었다. 사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오늘에 맞게 트렌드를 따라가며 사업을 이어왔다.


34년이 지난 지금은 자식들도 성장하여 2세를 보았고, 아내에게도 쉼이 절실한 시점이다.

딸은 엄마의 건강과 하루의 상황을 시간 날 때마다 살폈다. 매주 협력하는 일손들, 재료의 신선도와 원활한 조달, 결혼 당사자나 하객의 만족도나 반응 등 짚어야 할 일들이 산적하다.



지난 10월에는 막내딸만 데리고 엄마를 위로하겠다고 친정 나들이를 하였다.

한약과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위로도 하였고 가까이서 심경을 살피기도 하였다.

일을 내려놓으려니, 도우는 일손들도 눈치를 채고 불협화음이 늘어났다. 내일이 오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만만하지가 않아 직접 우리가 새벽까지 일을 완수하고 돌아오는 일도 잦아졌다.


나도 “여보 이젠 뼈를 깎는 열정으로 일 할 시점은 아니야. 어서 회사에 말하고 후임자를 정하라고 말해요.”

“그리고 덕분에 아이들도 잘 키웠고, 많은 혜택을 본 것에 감사한다고 말이에요.”


회사 경영 책임자에게 통보를 하였지만 후임자 결정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 또 보름이 흘렀다. 올 10월부터 마음은 어느 정도 정리를 하였지만 아내만큼 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매주 수 백명의 축하객을 모셔놓고 차질이 생기면 큰 일이다.

“11월까지만 하고 이제는 정말로 좀 쉬겠습니다.” 아내는 다시 힘주어 말했지만 반응은 신통하지 않았다.




玉 宗 美/옥 종 미로 온 딸


모든 상황을 내다본 딸은 사위와 상의하여 결정타를 날렸다.


“엄마, 오빠가 12월 20일 날짜로 비행기 표를 끊어 보냈어요. 12월이 되면 자석이 없어질 것 같아 미리 예약했 대요. 그동안 일 마무리 잘하시고 싱가포르에 올 준비도 하나씩 하세요.”

회사는 최후통첩에 맞춰 뚜벅뚜벅 인수인계가 진행되었다.


“때로는 논리적으로 풀어서 협상을 하거나 답이 안나 올 때는 그냥 지르고 봐야 돼!”

애들의 지혜로운 결정에 나의 독백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12월 가족 행사와 쉼을 위한 15일간의 여행에 돌입하였다.

보름 동안 먹을 음식과 재료, 까다로운 입국 심사를 통과할 만한 것들은 모두 가방에 넣었다.

엄마의 생일, 딸의 생일, 딸의 결혼기념일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있는 기간이다. 공항에서부터 온 가족이 흑장미 다발을 들고 우리의 쉼과 입국을 축하하였다.


감동의 시간은 연속되었다.


하루 걸러 진행되는 이벤트, 짬짬이 쫓기는 일없이 쇼핑과 담소를 나누며 차 마시는 것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인데 그것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딸은 작정한양 우리들이 필요한 것 외 입혀보고, 신겨 보고, 들려 보며 옷 신발 가방 등 가져갈 선물을 쟁여 나간다.

아직 시작에 불과한데 애들이 왜 이러나? 불현듯 야릇한 생각이 스친다.


특별히 잘한 것도, 훗날을 보장한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23일 크리스마스의 이브의 이브 날의 이었다.

새벽에 전능자가 보낸 천사의 이끌림으로 온 딸, 옥(玉) 종(宗) 미(美)라고 이름 지으며 이제 부모님을 위해 ‘옥같이 맑은 심성과 으뜸으로 미쁜 일’을 할 거라고 일러주고 불현듯 사라졌다.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하게 머리를 털고 일어났다.


미쁜 행동의 끝판 왕, 딸!

“나를 어떻게 키운 엄마인데.”

“…”

그동안의 한없는 내리사랑에 떨어져 살면서 또 제자식들이 더 성장하기 전에 지금 치사랑을 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구만리 같은 너희들만 챙겨도 바쁜데 이제 됐다.” 아내의 감격 어린 충고다.

“키워보니 엄마 심정이 이해가 돼.” 이 말 외는 없다.


엄마는 34년을 일하면서 자식에게 교육을 위해서라면 모든 정보를 동원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딸도 엄마를 돕는 일에 어린이 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세월이 흘러 손주들이 태여 났을 때도 2,3 개월씩 친정에 머물며 딸과 손주들을 위해 분골쇄신하였다.

한국에서의 방학 기간에도 몸소 음식을 지어 손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태산 같은 장난감, 운동 기구들, 물려준 옷, 기억의 영상들.

돌아갈 때는 산더미 같은 음식과 재료를 장만한다.



딸은 결혼 후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살면서 친정이 그리우면 다섯 가족을 다 데리고 한국으로 향한다. 그렇게 하기를 17년의 세월이 지났다. 대가족의 특성이 살아나며 함께 부대끼고 동고동락하였다.


주변에서 흔하게 찾을 수 없는 우리만의 풍습이 만들어졌다.


이제 엄마가 쉬어야 할 때가 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나서겠다는 것 말고는 달리 해석이 되지 않는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맞는가?

지금 우리에겐 그런 말이 무색하다.

벌써 헤어질 것을 아쉬워하며 엄마의 제2 인생에 대한 요강을 간추려 일러준다. 취미 활동도 운동도 여행도 믿음의 생활도 균형을 맞추기를 주문한다.


“아빠도 이제부터는 엄마를 위해 살아도 하나도 억울할 게 없어요” 힘주어 말한다.


나는 옥종미의 분신으로 아내의 여생 플래너(planner)로 임무를 다하리라.

말의 수사(修辭)나 언약 없는 행동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 아름다운 12 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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