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말의 어전(御殿)에 들 때에

by 명경수




님이여,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말은

절대로 절대로

하지 말게 하소서



말이 가벼워 부서지거나

아무데나 붙어

곁눈질하는

사생아(私生兒)가 되지 않게 하소서



처음에 가고자 하는 길도

만날 반가운 사람도

모두 잊은 체 표류하며 떠 내려가는

우수마발(牛溲馬勃)*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내 안에 참았던 말들이

질식할 때까지

천일염으로 염장(鹽藏)하여 꼭 필요한 때에

싱싱하게 꺼내 쓰게 허락 하소서



하는 말은 나를 분명히 들어내어

주변을 살피거나

우유부단에서 벗어나

정직한 말만 하게 하소서



헤어졌을 때는

‘그 사람 참 말이 무겁네!’하고

흉금을 터놓고

또 만나고 싶게 하소서



요변(妖變)**하는 상황에선

기치와 품격을 더하여

촌철살인의 유머로

날 선 공방을 무의미하게 화합케 하소서



죽을 때까지

밥 먹듯 해야 하는 말

나로 하여금 살맛나는

따뜻한 이웃 되게 만들어 주소서



말의 어전에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전장에 임하듯 엄숙히 나갑니다

님이여!

부족한 말버릇을 간섭하고 이끌어 주소서



* 소의 오줌과 말똥이란 뜻으로 가치 없는 말이나 글 또는 아무리 천해도 쓸 데가 없음

** 요망하고 변덕스럽게 행동함

***중요한 일을 앞두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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