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평범한 스물네 살 대학생이 여행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께.
여행이란 뭘까? 나에게 여행이란 일종의 강박 중 하나였다. 미리 다 손써 놓은 완벽한 계획안에서 나는 그냥 계획대로 움직이면 되는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계획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겨버리면 그 여행은 실패한 여행이 되곤 했다. 나에게 실패한 여행들이 수두룩하게 남은 이유도 이와 같은 강박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쉼’과 ‘여유’와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내 여행에 변화가 생긴 건 웃기게도 또 다른 나의 강박 때문이었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다고 2년의 휴학을 결정하고 작년에 2학년으로 복학을 했다. 2년의 휴학으로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었다. 뭐 그 정도야 괜찮았다. 휴학을 결심하기 전에도 딱히 친구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외로운 학교생활의 중간고사 고비를 넘기고 기말고사가 되었다. 조별 과제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나는 어쩌다 보니 모든 조별 과제를 혼자 하고 있었다. “제가 할게요” “이 부분은 그냥 제가 할게요.” 하던 것들이 눈덩이처럼 쌓이고 쌓여 그냥 나 혼자만의 과제가 된 것이다. 과제를 해치우고 나면 또 다른 과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스스로 자초한 생활 패턴이었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안 풀리는 것 같으면 그냥 혼자 처리하고자 했던 나의 강박이 나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기말고사 내내 나는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대며 시간을 보냈다. 웃긴 말이지만 이 지긋지긋하고 똑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짜 놓은 시간표에 맞춰 학교를 가고 마치고는 아르바이트 그리고 집. 이런 지긋지긋한 패턴. 그러던 와중 무심코 본 발리 행 비행기 표. 홧김에 사 버린 표가 내 여행 철학을 바꿔 놓았다.
한 달, 정확히는 28일이라는 여행 기간. 굳이 강박에 사로잡혀 계획을 짜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비행기 표만 달랑 사놓은 채 세 달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발리에 가기 하루 전 날이 되었다. 전과 달리 무엇 하나 계획해 놓은 것이 없었으며 심지어 생각해둔 것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여행을 가기 전 날 설렘과 걱정을 가득 안은 채 잠을 설치던 나는 매우 편안하게 잠들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걱정도 없었고 설렘도 없었다. 여행이 아니라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아무런 계획 없이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즉흥적으로 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음 기회가 있는 그런 여행. 그런 여행은 이전의 내 여행들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사실 발리는 전에 한번 가 본 곳이어서 걱정이 되지 않았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고 1년이 지났을 때 모아둔 돈을 가지고 간 발리. 그때와 다른 점은 혼자라는 것. 그때도 비행기를 예약하자마자 나는 계획 짜기에 몰입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간다는 생각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 하나하나 동행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건 계획에 넣을 건지 뺄 건지, 동선을 어떻게 짜야 효율적인지, 그리고 숙소는 어느 가격대로 갈 것인지 위치는 어디로 할 것인지 등, 많은 걸 양보하다 보니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정말로 가고 싶었던 곳은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보통 다른 사람들과 같이 여행을 가면 서로서로 양보를 하기 마련이고 그런 당연한 룰이 깨지는 순간 갈등이 생긴다. 그래서 이번 발리 여행은 ‘혼자’가 컨셉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계획은 없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살 곳은 있어야 했다.
그렇게 처음 맞닥뜨린 문제는 숙소. 모아둔 돈은 한정적이었다. 여행 경비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숙소는 내 골치를 썩였다. 혼자니까 뭐 마구간만 아니면 잘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리에 도착해서 즉흥적으로 그때그때 숙소를 예약하려던 생각이었다. 그때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슬기야, 내 친구들도 너랑 비슷한 날짜에 발리를 한 달 동안 여행 간다고 하던데 혼자 숙소 구하기 힘들면 같이 숙소를 잡아봐” 친구의 말은 그럴싸하게 들렸다. 세 명의 친구, 그리고 내가 발리 한 달 살기를 하러 간다니까 자기들도 도전해보겠다던 두 친구. 나, 이렇게 총 여섯 명이서 한 집을 쓰게 되었다. 각자의 계획을 가지고 집 하나를 공유하는 것도 참 흥미로운 일이었다. 친구가 미리 에어비엔비, 구글맵을 다 뒤져서 찾은 풀빌라는 한 달에 270만 원 정도면 빌릴 수 있었다. 결국 1인당 45만 원 꼴. 괜찮은 가격이었다. 마구간만 아니면 잘 수 있다던 내 생각을 비웃듯이 풀빌라는 너무 예뻤다.
그렇게 걱정하던 숙소 문제가 쉽게 해결이 되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짐을 풀었다. 전 같았으면 바로 내가 짜온 계획표와 노트북을 꺼내 들고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발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바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눈을 뜨니 따가운 햇살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무작정 오토바이를 불러서 시내로 나갔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꾸따 비치가 눈에 보이고 서핑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래 이거다.” 서핑을 해보고 싶었다. 당장 비치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비치 보이들에게 보드를 빌렸다. 서핑은 호주에서 한두 번 강습받아본 게 다였다. 그것도 2년 전에 말이다. 그런데 또 강습을 받자니 돈이 아깝고 ‘혼자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바다로 휘적휘적 나갔다. 파도가 날 감쌌지만 하나도 차갑지 않았고 오히려 따뜻했다. 그때 딱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동안 서핑 고수가 되어 보자.” 하고. 무계획 속에서 앞으로의 일정 하나가 추가가 되었다.
초보자인 나에게 파도는 만만치 않았지만 나 또한 만만치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 장작 한 시간 반 동안 파도에 엎어지다가 2년 전에 강습받던 내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이때다 싶을 때 벌떡 일어섰고 그 결과는 대단했다. 비록 바로 넘어지긴 했지만 나 스스로 보드에 일어섰기 때문이다. 그때의 감정은 아직도 말로 설명 못 할 정도다. 나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내고 싶다고 생각해 도전한 ‘보드에서 일어서기’. 첫 퀘스트를 며칠도 아닌 단 두 시간 만에 성공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음 날은 캐리어에서 책을 꺼냈다. 발리에 오기 일주일 전에 서점에 가서 산 책이다. 책 읽는 걸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하며 살아왔는데 아무 계획 없이 가는 발리행에서는 책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라는 책이 눈에 띄어 바로 꺼내드려고 하는데 그 옆에 영어로 된 원서가 보였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이면 원서로 된 책이 딱 맞지 않을까?’ 그렇게 풀장 앞의 선베드에 누워서 책을 펼쳤다.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모르는 단어들은 형광펜으로 긋고 천천히 읽어 나갔다.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 신기하게 영어에 젬병인 내가 대충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원 서 한 권을 끝내자는 목표가 생겼다. 일주일 만에 벌써 두 개의 목표가 생겼다. 계획이 아닌 목표가.
이전에 떠났던 첫 번째 발리 여행은 모든 액티비티, 입장권 그리고 숙소 등을 예약하고 갔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즉흥적으로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가는 것. 택시나 오토바이를 탈 때마다 영어가 가능한 기사님들에게 질문을 했다. “내가 발리에 한 달을 살아보려고 왔는데 아무런 계획이 없어요. 무엇을 하고 어디를 가는 것을 추천해 주고 싶나요?” 말해주는 모든 것들을 노트에 적었다. 대충 추린 곳은 ‘누사페니다’, 발리 스윙, 화산 트레킹, 래프팅 그리고 스노클링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누사페니다 섬 투어 말고는 다 해본 것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혼자 하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다 같이 협동하고 의지해서 올라갔던 화산을 혼자 올라가 보는 건?’ ‘물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얼굴을 물에 넣지도 못했던 스노클링을 혼자 다시 도전해본다면?’ 무언가를 혼자 도전해 본다는 게 이렇게 벅찬 일이었나? 그렇게 나의 홀로 도전은 시작되었다.
두 번째 발리 스윙인 만큼 저번과 다른 회사를 이용했다. 저번에 간 곳은 한 개를 탈 때마다 돈을 지불하는 곳이었는데 여기는 12개의 스윙을 다 타는 것이 40$ 정도 했던 것 같다. 두 곳 다 이용해보니 다음에 발리를 가는 사람한테 추천 정도는 해 줄 수 있겠더라.
저번에 발리에 왔을 때 애를 먹였던 액티비티 중 하나. 얼마나 힘드냐면 올라가다가 같이 갔던 일행 언니 한 명은 중도 포기를 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나는 정상까지 쉬지 않고 두 시간을 올라갔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 체력은 변함없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저번에 못 가본 곳이라서 설레는 맘으로 갔다. 세 포인트를 돌았는데 제일 마음에 들었던 켈링킹 비치. 사진 보정 없이 딱 저 색깔이다. 그림의 한 장면 같았던 곳
여기를 가기 전에 다른 택시 기사님이 폭포가 유명하다고 하셨다. 메모해 뒀다가 택시를 타서 유명한 폭포를 보러 가고 싶다고 말하니 기사님이 이쪽으로 데리고 오셨는데 내가 가고 싶어 하던 폭포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본 사진이랑 달라서 당황하긴 했지만 뭐 실패는 아니다. 나에겐 내일이 있고 남는 게 시간인데.
애증의 쿠타 비치. 서핑 성지인 쿠타 비치. 발리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제일 많이 거쳐간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래프팅 도중 사진 찍으라고 가이드가 내려 준 곳이다. 사실 정말 이렇게 예쁜 폭포를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너무 세차게 떨어져서 무서웠지만 손 벌벌 떨면서 사진 찍은 곳.
스미냑은 숙소로 잡기 딱 좋은 지역. 쿠타 비치 쪽은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잔다고. 발리 한 달 살기의 매력은 발리의 비치란 비치는 다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 똑같은 비치는 없다고 가는 곳마다 다른 느낌 다른 분위기라서 너무 신기했다.
같은 시간대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같은 시간에 다른 공간에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 레기안 비치.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발리의 해변들. 해산물의 성지인 이곳에서 배 터지게 먹고 1인당 3만 원이 채 나오지 않았다.
울루와뚜라는 절벽에 있는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밑에 저런 천을 둘러야 한다. 별 기대 안 한 발리 전통 공연 케챡댄스를 관람했는데 기분이 참 오묘했다. 본 적 없는 불을 이용한 공연. 그리고 불과 아름답게 조화되는 석양까지. 완벽했다.
유명하다고 간 곳인데 일단 돈을 내야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일몰을 볼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건 필요 없었다. 멀리서 봐도 일몰은 너무 이뻤으니까.
한 달을 살아보니 웃기게도 나는 현지인이 되어 있었다. 살이 타는 건 상관없이 매일매일 늘어가는 내 서핑 실력에 뿌듯함을 느꼈고 더운 날씨에 시도 때도 없이 뛰어들었던 풀장들은 나를 아주 구릿빛으로 물들여놨다. 한국으로 오기 일주일 정도 전에는 많은 오해도 받았었다. 택시를 고젝이라는 어플로 불렀는데 기사님은 내 닉네임을 보고 당연히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뻔히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인도네시아 사람인 줄 알고 지나쳐가는 기사님도 있었고 모르는 외국인이 식당에서 나를 점원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만나는 가이드들은 피부색이 자기들과 똑같다며 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한 달 살기를 제대로 실천한 내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여행과 살아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한 달 살기를 고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고민할 것 없이 살다 보면 살아진다고. 한 달이라는 시간은 여행을 사랑하게 만들고 즐기는 법을 알게 해 줄 거라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삼만 원을 주고 밥을 먹다가도 길거리에 파는 나시고랭과 미고랭을 천이백 원에 먹을 수 있고 오늘 주황색 노을을 보면 또 내일은 분홍빛 노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계획에 얽매여 여행에 지친 사람들에게 무작정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계획 없이도 많은 목표들이 만들어지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이렇게 나의 한 달은 발리로 시작하고 끝을 맺었다.
매우 평범한 스물네 살 대학생이 여행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께.
해외로 갈 때마다 기념품 사듯 한 개씩 새겨오는 타투
발리에서 내가 사랑하게 된 하늘과 야자수, 그리고 파도들.
2020.01.14 ~ 2020.02.10
'최슬기'님의 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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