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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멘션 Apr 27. 2020

나 홀로 남미 여행, 나 혼자 국경도 넘어봤어!

보고 있어도 현실 같지 않은, 믿어지지 않는 기분들

hooodo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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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값이라고 생각하고 당장 환불해”     





돌아오는 항공권도 사지 않은 채 편도로 출발했어요. 떠나기 2주 전에 에콰도르행 티켓을 62만 원인가, 64만 원인가에 샀죠. 숙박도 3박만 예약했어요. 여자애 혼자 가는데 계획도 없이 간다며 다들 걱정했죠. 진짜 무계획이었거든요. 조사도 안 했어요. 갈라파고스랑 빙하가 남미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어요. 결과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거 보니 도난당한 것도 없었고 잘 살아 돌아왔네요. 에콰도르,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이렇게 3개월 동안 다녀왔어요.     


사실 처음 떠날 때에는 ‘쉬자, 쉬면서 나를 돌아보자!’ 이런 마음으로 출발했어요. 근데 남미에서 느긋하게 지내지는 못했어요. 제가 원래 그런 체질이 아닌가 봐요. 저는 한 달 살기를 하더라도 알차게 해야 하는 스타일인가 봐요. 결국 엄청 돌아다녔어요. 남들 가는 곳은 다 가봐야 적성이 풀리더라고요.     




Insatgram : hooodo_




보통 길게 여행하면 속세에 초연해진다고 하던데 저는 오히려 현실적으로 바뀌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 있을 때에는 부모님이 주신 용돈으로 생활하다 보니 잘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거든요. 만 원을 더 내는지에 따라 도미토리가 4인실인지 8인실인지가 결정 났어요. 에어컨이 달린 방인지 안 달린 방인지, 위치가 중심지랑 먼지 가까운 지도 결정 났죠. 숙소뿐만 아니라 물 하나 살 때도 백 원이라도 싼 거 사려고 하게 되더라고요. 혼자 장기 여행으로 가지 않았다면 몰랐을 현실적인 의식주 문제들을 생각하게 됐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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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는 ‘지금이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이 정말 강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취업하면 정말 시간이 없다는 조언을 선배들한테 많이 듣기도 했죠. 지금 생각하면 잘한 선택 같아요. 3개월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볼게 정말 많이 남은 곳이에요.     


또 남미가 워낙 크기 때문에 처음부터 짧게 갈 생각은 더더욱 없었어요. 원래 일본이나 홍콩처럼 가까운 나라를 가더라도 최소 일주일은 갔었거든요. 일주일 이하로 짧아지면 실질적으로 그 나라를 돌아볼 시간이 없게 느껴지더라고요. 솔직히 체크인하는 날, 체크아웃하는 날 빼면 얼마 안 남잖아요.     


그렇게 떠난 남미는 ‘이때까지 나는 참 편한 여행을 했었다’라는 깨달음을 줬어요. 인터넷, 사람들, 모두 너무 달랐으니까요. 한 번은 버스를 탔어요. 창문이 깨졌는데 그냥 테이프로 붙어져 있었어요. 이런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처음 여행을 떠난 저에겐 어려움이 많았죠. 생각보다 영어는 통하지 않았고 스페인어를 하나도 모르고 갔던 저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스페인어를 익혔던 것 같아요. 나중엔 저도 모르게 계란, 버스, 몇 명, 학생이에요 등 일상 언어를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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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에서 좋았던 건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단점일 수 있어요. 남미는 땅이 커서 나라 간, 도시 간 이동시간이 정말 길어요. 버스로 이동시간이 5시간 걸린다고 하면 “오! 금방 가네!” 이럴 정도로요. 한국에서 버스로 5시간 가야 한다 하면 듣기만 해도 피곤해지곤 했죠. 남미에서 국경을 넘을 때면 12시간, 20시간씩 이동하기도 했어요. 12시간 동안 버스를 타면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요. 와이파이랑 데이터도 안 터지니까요. 그때 창밖을 보면서 하염없이 생각을 많이 했어요. 취업 준비를 시작하기 전이었거든요. 오래오래 생각한 결과, 역시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한국에 오자마자 진짜 원하는 직무로 준비를 시작했죠. 전공과는 달라서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그 용기를 남미에서 얻어온 것 같아요. 정말 생각할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제 선택에 후회가 없답니다.  


남미는 지하철이 없는 나라가 많은 반면 버스는 상대적으로 잘 되어있었어요. 노선도 많고 버스 등급도 다양해요. 비쌀수록 의자 쿠션이 좋고 뒤로 더 많이 젖힐 수 있답니다. 이만 원, 삼만 원에 젖힐 수 있는 의자 각도가 달라지는데 장시간 이동이다 보니 얼마나 고민이 되던지... 아! 그리고 버스 승무원? 분이 계시기도 하고 식사가 제공되기도 했어요. 그걸 저희끼리는 ‘버내식’이라고 불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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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여행을 후회했던 적이 1초도 없다 하면 거짓말이죠. 남미에는 환경이 안 좋은 곳들도 많았어요. 예를 들면 화장실이 지저분한 곳들이요. 전 제가 이렇게나 화장실 청결도에 예민한 사람인지 몰랐거든요. 그런 상황이 없었으니 아예 모르고 살아왔던 거죠. 화장실 변기 커버 부분 뭔지 아실 거예요. 그 커버가 없는 경우가 진짜 많았는데 정말 불편하고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숙소 중에서는 샤워실이랑 화장실이 야외에 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전기는 2시간만 되는 곳도 있었고요. 그럴 땐 한국이 많이 그리웠어요. 그리고 스페인어를 못한다고 바가지 씌우려고 할 때, 그럴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가격 흥정을 하느라 에너지를 정말 많이 소진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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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점도 분명 많았지만 좋았던 기억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우유니 사막을 꼽고 싶어요. 살면서 다시 그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싶어요. 끝이 안 보이는 하늘이랑, 땅, 노을까지 핑크색 보라색으로 물드는데 진짜 계속 거기 있고 싶었거든요. 보고 있는데도 현실 같지가 않아 믿어지지 않는 그 기분, 꼭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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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여행의 장점은 원할 때 가고 싶은 곳을 더 갈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는 기존에 콜롬비아에 갈 계획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갈라파고스에서 만난 분들한테 추천을 엄청 많이 받았어요. 사람들도 정말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다고요. 그래서 에콰도르로 떠날 때 육로로 콜롬비아에 들렀다 왔어요. 한국에 있을 때 생각도 안 했던 칼리, 메데인, 보고타까지 3개 도시를 다녀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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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살사의 고장 칼리에서 살사도 배웠어요. 처음 보는 한국인 언니랑 살사 클럽 가서 새벽 3시까지 놀며 배운 살사를 바로 현지인들이랑 출 수 있었죠. 보고타에서는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도 했어요. 동양인은 한 명도 없는 로컬 야경 포인트에 갔던 기억도 정말 좋았어요. 거기서 진짜 오랜 인연을 이어나갈 한국인 언니도 만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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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기 여행은 저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어요. 먼저 마음에 단단한 구석이 생긴 것 같아요. ‘내가 거기까지 다녀왔는데 이걸 못하겠어?’ 이런 마음이요. ‘내가 혼자 국경도 넘어봤는데’와 같이 긴 여행을 혼자 해냈다는 성취감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제일 큰 변화는 진로 선택을 확실히 한 것이에요. 여행을 하면서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고 하잖아요. 그 말을 처음에는 안 믿었는데 은근히 맞는 말 같아요. 혼자 딱 떨어졌을 때 제가 어떤 성향인지 알 수 있거든요. 저는 제가 학구파이기보다는 질문파라는 점, 낯을 안 가리는 걸 넘어 낯이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잘 이야기한다는 점을 더 잘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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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장기 여행을 간다면 저는 또 혼자 가고 싶어요. 혼자 여행 갈 때의 장점이 분명히 있거든요. 다른 사람이랑 가도 즐겁지만 신경 쓸 것이 많잖아요. 혼자 여행 가면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로 그 나라가 기억에 남아서 좋았어요. 칠레에선 이 사람들, 에콰도르에선 이 사람들, 이런 식으로 나라와 사람이 연결되어 기억에 남더라고요. 은근히 기억에 남는 순간들도 오로지 나 혼자 돌아다녔을 때였어요. 막막하기도 하고 살짝 두렵기도 한 그 순간들이요! 예를 들면 콜롬비아로 혼자 국경을 넘었을 때, 혼자 갈라파고스 해변에 가서 스노클링을 했을 때. 그런 순간들이 제 기억에 많이 남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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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여행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건 “가도 되고 안 가도 된다.”에요. 제 말은 본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알고 결정하시라는 뜻이에요. ‘뭐야, 너는 가놓고’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장기 여행이 안 맞는 분들도 분명 봤거든요. 그런 분들은 막상 여행을 와서 힘들어하세요. 장기 여행은 3주가 좋은 것 같다, 3달이 좋은 것 같다. 그런 건 워낙 천차만별 이어서요.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 정도만 여행하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돌아다니는 여행보단 여유롭게 쉬는 여행을 선호할 수도 있죠. 저는 그동안 25개국을 다녀왔는데요. ‘여행 무조건 가야 해!’ 이렇게 말하고 다니진 않아요. 저와 비슷한 스타일이라면 저와 같은 여행을 추천하죠. 그냥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잠시 ‘쉼’을 선택할 때, 너무 강박을 가지고 떠나진 마라고 말하고 싶네요.





2018.11 ~ 2019.02

'이후도'님의 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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