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터멘션 May 04. 2020

나의 동심을 지켜 준 뉴질랜드 여행

멈춰있는 시간을 누리며 온전한 ‘나’를 안아줄 수 있기를


"시절을 함께 해 줘서 고마워"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8시간이 넘는 대기시간을 보냈다. 공항에서 하루를 보낸 것과 다름이 없었지만 일부러 멈춰있는 시간을 선택했다. 2019년은 벅찬 한 해였고 목표가 있었지만 뉴질랜드 여행으로 밀려나기엔 매일 꿈을 이루는 나날이었다. 알록달록한 시간을 잘 정리해 뉴질랜드 여행과 함께 물들이고 싶었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뉴질랜드 필름의 첫 롤이 감겼다.      

작년은 뉴질랜드 여행을 위해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해였다. 새해의 소망이 ‘뉴질랜드에서 크리스마스와 연말 그리고 새해를 맞을 거예요!’였으니까. 1월부터 거실에 유난스럽게 캐리어를 열어 놓고는 짐을 챙겼었다. 뉴질랜드로 떠나던 날까지 한 번도 닫은 적이 없던 캐리어는 여행의 설렘으로 살아가기 위한 작은 자극제 같은 것이었다.     








스물아홉으로 가는 길이 설렘으로 가득하길 바라는 의미를 담아서 여행을 준비했다.     

내 여행의 시작은 항상 단순한 발상으로부터 시작했다. 스물셋, 즉흥적으로 기획했던 생에 첫 여행인 상해행 자매 여행과 스물다섯,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밥 먹듯이 하던 회사에서 고맙게 버텨준 나에게 주는 퇴사 선물이라며 끊었던 노르웨이행 티켓, 살아 보는 여행을 하고 싶다며 무작정 떠났던 한 달 호주 여행, 스물여섯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받았던 크로아티아 여행. 그리고 스물여덟, 틀에 짜인 삶을 아무렇지 않게 강요받는 지루한 일상이었지만 ‘나는 스물아홉이 기대돼! 얼마나 반짝반짝할지!’라는 말을 질렀고, 뱉은 말을 실천하기 위해 그렇게 뉴질랜드 편도 티켓을 끊었다.     

 하루살이 삶이 시작된 것이다. 도착지는 정해져 있었고 도착과 동시에 숨도 고르지 않고 다시 출발선을 그었다.      







오클랜드 공항에서 시티로 가는 버스를 타기까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심각한 길치여서 공항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과 무사히 공항버스를 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엄청난 일이었다. 뉴질랜드가 나를 반기는 것 같다며 싱글벙글 버스 창가를 구경했다. 안내 방송이 간간히 흘러나오는 것 같지만 ‘몸으로 말해요’가 익숙한 나에겐 배경음악과도 같았다. 그렇게 3시간가량 버스 여행을 했다. 오클랜드 여행은 첫날 다 하는 느낌이었다.     


퀸스타운에서 살고 있는 첫째가 무려 오클랜드까지 마중을 나왔다. 이른 자매 여행을 시작했다.     

약 1년 동안 챙겼던 짐은 트윈룩이 대부분이었다. 테마를 정해 여행하는 것이 취미인 나에게 적응된 언니는 제법 마음에 드는 호응을 했다. ‘뉴질랜드는 여름’이라는 글만 보고 여름옷으로 몽땅 챙겨 왔었는데 첫째가 분명 뉴질랜드는 여름도 춥다는 정보를 줬었다는 걸 오클랜드에 도착해서 알게 됐다.     







11월 뉴질랜드는 선선한 가을 날씨였다.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씨. 낮에는 선선한 날씨였고 밤에는 카디건을 걸치면 되는 초가을 온도였다. 페리를 타고 데본 포트로 가던 날은 청자켓을 구매했다. 우리는 쇼핑을 하며 가격 대비 합리적인 쇼핑이라고 입을 맞추었다. 그 덕에 사치스러운 3박 4일을 보냈고 후유증은 두 달 여행이 짊어졌다. 


데본포트 언덕을 올라 노을을 보며 청자켓을 샀던 우리를 칭찬했다. 탁 트인 데본포트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하는 데, 손이 떨렸다. 청자켓이 없었으면 우리는 감기에 걸려서 남은 날을 모두 숙소에서 보내게 됐을 거라는 뿌듯한 수다로 밤을 보냈다. 우연히 들렸던 데본포트는 오클랜드에서 보낸 날 중 가장 여운이 남는 장소였고 첫째와 데본포트에서 다시 노을을 보기로 다짐했다. 우리는 두 달 뒤 데본포트 언덕에 누워 낮잠을 잤고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에 안겨 페리를 타고 넘실거렸다.       







여행의 시작이었던 오클랜드에서는 24시간이 아까울 만큼 여행을 했다. 숙소로 돌아오면 씻고 침대로 몸을 던지기 바빴고 아침엔 무거운 몸을 모른척하며 부지런을 떨었다. 첫째는 뉴질랜드 항공에서 먹었던 키위가 이 세상 맛이 아니었다는 나에게 콧방귀를 뀌며 매일 마트에서 키위를 사주었고, 걷는 여행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2만 보는 기본으로 걸으며 캐시 워크 어플로 100원씩 저금했다. 퀸스타운에 가서도 틈만 나면 걸었다. 걸으며 마주할 수 있는 풍경들이 좋았다. 집 앞 10분 거리의 마트를 두고 2시간을 걸어 마트를 갔고, 신발에 구멍이 나도록 걸었던 걸음까지 보태어 여행의 말미에는 두둑한 잔고를 갖게 됐다.      


하루는 차를 렌트해 오클랜드 근교 여행을 했는데 첫째는 운전을 하며 틈틈이 내게 창밖을 보라고 했다. 하늘에는 별이 수 놓여 있었다. 고개를 젖혀야 볼 수 있던 별이 눈앞에도 있었고 옆에도 있었다. 흐드러진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갑자기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우물을 벗어난 세상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동심을 지켜주는 동화가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 그리고 반짝이는 길 위를 함께하는 첫째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시절을 함께 해 줘서 고마워’     







챙겨 갔던 필름 3 롤이 모두 감겼다. 빈 카메라를 챙겨 퀸스타 운행 비행기에 올랐다. 첫째는 들떠 있는 나에게 ‘여행이 끝나가는 것 같다’며 앞선 서운함을 내비쳤지만 두 달 여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헤어질 생각을 하는 언니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핀잔을 줬다. 실은 혼자 남게 될 언니가 걱정됐지만 앞서 걱정하는 성격이 아니라 창밖을 보며 떨쳐버렸다.     


퀸스타운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해질녘의 자애로운 풍경이 마중 나와 있었다. 공항의 풍경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노력 없이 마주한 피오르. 날 선 산의 대협곡이 노을빛에 잠겨 경이로움을 뽐내고 서늘한 공기가 청량감을 더해 현실감을 상실시켰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에게 첫째는 다시 한번 허세로운 걸음으로 앞장서며 벌써 놀라기는 이르다고 한참 내려간 턱을 닫아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얌전하지 못한 나를 싣고 첫째의 집으로 달렸다.      







두 달을 퀸스타운에서 보내면서 가장 여행 같았던 순간은, 집 거실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집은 3층 구조였고 층마다 방이 있었다. 3층에 거실과 첫째의 방이 있었고 아침이면 커다란 창으로 햇살이 쏟아졌다. 눈을 뜨면 노란 꽃이 풍경화처럼 창문을 가득 채웠는데, 노란색을 좋아하는 내게는 더없이 행복한 아침이었다. 


매일 거실로 나가 기지개를 켰다. 거실의 한 벽면을 차지한 창으로 와카티푸 호수가 담겨있다. 하루도 같지 않은 풍경을 보면서 기지개를 켜면 눈에 담기는 풍경을 모두 안고 있는 기분이 들어 하루가 풍요로워졌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습관처럼 하는 괴짜 같은 일과였다. 거실에 앉아 머리말과 마침표를 찍는다. 일기를 쓰고 핫초코를 마시는 사소한 일들에 특별함이 가미되었다. 오늘의 특별함은 무엇도 하지 않기에 소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바쁘게 무엇을 하며 살아가기에, 고요한 여행의 정체가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여행은 일상이고 일상이 여행이 되는, 한 달이 넘는 여행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개수를 늘려간다.   




  



퀸스타운에서 이틀이 되던 날, 카페에 앉아 언니가 추천한 당근 케이크와 함께 노트에 끄적끄적 아무 말을 쓰고 있었다. 오후 10시쯤 느지막이 해가 지는 것과 달리 모든 가게들은 오후 4시면 문을 닫았다. 시간이 흐른지도 모르고 멍하게 있다가 뒤늦게 시간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 문을 나서는데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섰다. 토끼 눈을 하고 놀란 것을 감추지 못하고 경계를 하는 데, 내게 쪽지를 내밀었다. 쪽지를 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는 쪽지가 놓여 있었고 발신자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정처 없이 타운을 걸었다.     


까막눈인 내가 보기엔 테두리를 아기자기하게 꾸민 것과 네모로 접힌 쪽지 속에 숨은 장문의 손글씨가 마냥 클래식하고 귀여웠다.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은 아름다운 단어로 이어진문장이 꽃다발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은 여행 안에서 드라마가 된다.     







두브로브니크 성벽에서 짧은 계단을 내려가는 나에게 팔을 내어주시며 조심히 내려오라는 할아버지와 손을 잡은 할머니의 귀여운 윙크, 노르웨이 트레킹을 하며 만난 롤업 바지를 입은 사람이 건넨 ‘조심해’라는 다정한 걱정과 첫 트레킹에 서툴러 간식을 챙기지 못해 배고픔에 기절하기 직전이었던 우리에게 찬란한 누룽지를 주시던 아저씨, 알고 보니 같은 숙소였고 한국인 부부동반 여행을 하셨던 아저씨, 아주머니가 닭다리만 골라 담은 따끈한 닭볶음탕 한 접시,  브리즈번 길가에서 5살 남짓 돼 보이는 꼬마에게 받은 꽃 한 송이, 오지에서 낙오가 된 우리의 간절한 히치하이킹에 응해 준 금발의 천사. 누군가에게 대가 없는 친절을 받았던 순간마다 언어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언어의 장벽에 막혀 고마움을, 내가 느낀 벅참을 전달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컸다. 영어를 못 한다고 해서 여행에 불편함은 없었지만 단지, 순간의 아쉬움을 해소하지 못할 뿐이다. 언어는 여행의 깊이를 다르게 하는 요소였다.     






뉴질랜드 여행에서 확실한 목표 하나가 늘었다. 여행에서 대화에 어려움이 없을 만큼 영어 공부하기.     

내게 여행은 무계획이 우선이 되어야 했다. 촘촘한 계획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여행이 주는 평화로움을 잃고 의무적으로 움직이는 행동 속에서 갑갑합을 느끼고는 했다. 매일 하고 싶은 것을 즉흥적으로 하는 것을 좋아했고 시간을 쫓기보다 누리는 쪽을 선호했다. 그런 나와는 정반대의 여행 성향을 갖고 있는 첫째와 함께하는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적당히 포기하고 적당히 욕심을 내며 ‘행복하자고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잃지 않았다. 계획을 첫째가 짜면 열 개 중 다섯 개는 포기를 하고 다섯 개의 계획 사이에서 만나는 ‘아무 곳’에서 나머지 다섯을 채워 나갔다. 


이를테면, 웰링턴에서부터 시작한 로드트립 중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차를 대 놓고 잠시 쉬고 싶다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를 찾았고 그림 속으로 뛰어드는 꿈을 꾸듯 ‘아무 곳’으로 뛰어들었다. 네이피어로 가는 길, ‘나무마을’이라는 귀여운 이름에 호기심으로 들린 곳은 해가 다 지고 난 밤에 도착했는데, 달보다 빛나는 은하수와 아득하게 높은 풍차가 있었다. 별빛에 의존한 밤에 풍차 소리는 겁이 많기로 소문이 자자한 나에겐 무섭게 들렸고 은하수를 찍고 싶은 마음과 내면의 싸움이 일어났다. 차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무서울 것이 없었지만 카메라가 트렁크에 실린 가방 안에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첫째는 그런 나의 혼란을 즐기는 듯 보였다. 드넓게 펼쳐진 까만 초원, 아득하게 높은 풍차와 사나운 바람을 모른 체하며 요란한 비명과 함께 트렁크까지 냅다 뛰어갔다가 포기하고 조수석에 타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카메라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첫째는 배꼽을 잡고 웃기 바빴는데 나는 그때 자매애를 잃을 뻔했다. 절망적인 건 오두방정을 떠는 사이 은하수가 사라지고 완전한 어둠이 하늘을 채웠다는 것이고 우리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이었다. 첫째는 겨우 숨을 고르며 시동을 걸었다.     


두 달 반의 여행을 모두 합쳐도 차에서 여행했던 날을 이길 순 없을 것 같다. 바닷가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차박을 감행했고 공용 화장실에서 눈곱을 씻고는 잠이 덜 깬 눈으로 바닷가에 앉아 해가 하늘을 밝히는 시간을 함께 했다. 파도가 발가락을 가르며 부서졌다. 우리는 해변을 걸으며 한 해의 바람을 띄우기도 했다.     




 



여행의 모든 날이 순조롭게 흐르지는 않는다. 분명 우리가 보내는 일상과 닮아 있는 날이 더 많았다. 하루 종일 집에서 보내기도 하고 퀸스타운에서 유명한 쿠키 타임 1+1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던 날, 길을 잃어 하루의 반나절을 날리고, 빈곤한 지갑 사정은 내 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만 굴었다. 급하게 구한 숙소는 창문 하나 없이 목이 따가울 만큼 먼지가 가득한 좁은 방일 때도 있었고, 공용 샤워실은 곰팡이가 없으면 허전할 만큼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샤워를 하다 물이 안 나와 따가운 눈을 감고 물이 다시 나오길 기다리는 일상도 있었다. 사실 별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그러나 포장되는 것이 달랐다. 우리의 마음이 달랐다. ‘그런 날도 있지’와 ‘오늘 왜 이래’는 교묘하게 다르니까. 여행을 하면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하루가 사소하게 바뀌어간다.     


내가 처음으로 길게 떠났던 14일간의 노르웨이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서 일상을 시작했을 때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일상을 여행같이 살자’ 여행을 일상같이 살아 봤으니 일상도 여행같이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경험에서 비롯된 믿음은 나의 하루에 조금씩 끼어들어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채워져 갔다.     







뉴질랜드에서 76일째 되던 날, 여행의 시작이었던 곳에서 여행을 마무리했다.     

스물여덟에서 스물아홉으로 가는 길을 함께한 뉴질랜드. 반짝반짝 빛 날 거라 오기를 부렸던 나는 당당함을 더 해 나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꿈을 꾸고 이뤄가는 것의 연속인 인생이 재미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 여행이었다.     


여행이 모든 것의 답이 되진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생을 하루라도 좋으니, 시작도 끝도 아닌 멈춰있는 시간을 누리며 온전한 ‘나’를 안아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홉수, 겁먹지 않아도 된다. 서른은 또 다른 나의 시절이 시작되는 것일 뿐이니까. 용기는 타인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믿는 자신에게서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겁 없이 꿈을 꿨으면 한다. 그리고 꿈을 이루는 쾌감을 사소하게 누리기를 바란다. 반짝반짝 빛나는 오늘을 위해서.  




   

2019.11 ~ 2020.02

'이하은'님의 쉼 이야기

Insta : mowol_moil_s


더 많은 '쉼' 구경하러 가기▶▶

작가의 이전글 나 홀로 남미 여행, 나 혼자 국경도 넘어봤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